출처 :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510523


지상욱 의원님, 영화 '암살'도 이적표현물입니까

[주장] 김원봉 서훈이 보훈 농단? 그가 왜 북으로 갔는지 모르는가

19.02.11 07:43 l 최종 업데이트 19.02.11 07:43 l 글: 서부원(ernesto) 편집: 이주영(imjuice)


생각에 잠긴 지상욱 의원  지난 1월 9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새누리당 초선의원 모임에서 지상욱 의원(현 바른정당)이 잠시 생각에 잠겨 있다. 2017.1.9

▲  바른미래당 지상욱 의원 ⓒ 연합뉴스

 

일면식도 없는데 이렇게 불쑥 글을 올려 송구합니다.


요즘 바른미래당 하면 떠오르는 인물이 연일 극우적인 발언을 거침없이 쏟아내는 이언주 의원뿐이어서, 애석하게도 의원님의 존재감은 사실상 거의 없다시피 합니다. 정치인들에게는 '무명'보다 차라리 '악명'이 낫다더니 이를 두고 하는 말 같습니다. 아무튼 이번 일로 의원님 이름 세 글자는 확실히 각인될 게 분명합니다.


바른미래당 지상욱 의원님. 국가보훈처가 김원봉을 독립유공자로 서훈하려는 계획을 세웠다고 반발하며, 이를 '보훈처의 보훈 농단'으로 규정하셨더군요. 김원봉은 '북한 정권 수립과 유지, 발전에 혁혁한 공을 세운 인물이라면서, 독립유공자 서훈은 어불성설'이라는 구체적인 이유까지 덧붙이셨습니다. 일각에서는 부화뇌동하며 김원봉이 북한의 '개국 공신'이라는 말까지 스스럼없이 해대는 형국입니다.


처음엔 '빨갱이'라는 말만 들어도 자다가 벌떡 일어나는 재향군인회나 해병전우회 골수 회원의 발언인 줄로 알았습니다. 하다못해 요즘 들어 대통령 탄핵까지 운운하는 자유한국당 소속 의원이 내뱉은 거라면 그럴 수 있겠다 싶지만, '개혁 보수'를 자임하는 바른미래당 의원의 주장이라니 순간 당황스러웠습니다. 두 당 통합의 명분이 될 수도 있겠구나 싶기도 했습니다.


김원봉이 북으로 간 이유


김원봉은 자타가 공인하는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의 대명사입니다. 설문조사를 할 때마다 대한민국 국민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 손꼽히는 백범 김구보다, 당시 일제가 내건 현상금의 액수가 훨씬 컸던 거물이었다는 건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중고등학교 검인정 한국사 교과서에서도 모두 다루고 있고, 근래에는 영화 속 주요 인물로 심심찮게 등장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몇 해 전 개봉해 대중적 인기를 끌었던 영화 <암살>과 <밀정> 등은 김원봉의 업적을 은연중에 기리는 영화라는 후문입니다. 그래서인지 이미 그의 이름은 대다수 국민들에게 '빨갱이'가 아닌 독립운동가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특히 젊은 세대의 경우엔 김원봉에 대해 생소해 하는 사람은 있을지언정 그를 '빨갱이'로 내몰아 치도곤 하는 이는 거의 없습니다.


백 보 양보해서, 그가 북한 정권 수립에 기여했다고 해도 그의 60년 생애 중에 고작 몇 해에 불과합니다. 그나마 한국전쟁 직후 김일성에 의해 숙청됐습니다. 단지 그것만으로 청사에 빛나는 그의 독립운동 전부를 욕보일 수는 없습니다. 북에서도 쫓겨나고, 남에서도 배척당한 그의 초라한 위상이 어쩌면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을 대하는 우리의 현주소가 아닐까 싶습니다.


영화를 보셨다면 의원님께서도 잘 알고 계실 테지만, 김원봉은 '밀양 사람'입니다. 경남 밀양에서 태어나 3.1운동 직후 약관의 나이에 만주로 건너가 항일의거단체인 의열단을 조직한 인물입니다. 김익상, 김상옥, 나석주, 박재혁 등 우리가 배워 알고 있는 숱한 독립운동가들은 죄다 의열단원입니다. 고향 친구와 후배들, 나아가 이 땅의 장삼이사들은 그를 따라 속속 독립운동에 투신했던 겁니다.


오로지 조국의 독립을 위해 일제와 맞서 싸운 그가 자진 월북을 감행한 이유 또한 잘 알고 계시리라 생각합니다. 그는 김구가 이끌고 있던 대한민국임시정부의 군무부장으로서 해방 뒤 임정 요인들과 함께 귀국합니다. 더욱이 의열단원이자 그의 부인이었던 박차정 의사가 일제에 맞서 싸우다 순국하자 그의 유해를 거두어 모신 곳도 꿈에 그리던 남쪽 고향입니다. 당시 그가 스스로 북으로 넘어갈 하등의 이유가 없었다는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해방된 조국의 현실은 암담했고, 미소 냉전의 혼란 속에 좌우의 대립이 극심했습니다. 이 틈을 타 친일 반민족 세력들은 미 군정과 결탁하며 생존을 모색했고, 되레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을 좌익으로 몰아 탄압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집니다.


이 와중에 김원봉 역시 미군정을 등에 업은 친일 반민족 세력에 의해 굴욕적인 취조와 고문을 당했습니다. 억울함과 분함에 사흘 밤낮을 통곡했다는 그를 고문한 자는, 다름 아닌 악질 친일 고등경찰의 대명사인 노덕술이었습니다. 당시 독립운동가가 '역청산'당한 참담한 현실은 영화 <암살>에서 마지막 장면의 모티프를 제공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  영화 <암살>에서 약산 김원봉 역을 맡은 배우 조승우 ⓒ 쇼박스


그렇듯 미군정을 등에 업고 친일 반민족 세력들이 활개를 치는 남쪽을 그는 어떻게 생각했을까요? 고문을 당하지 않았더라도, 그는 해방의 감격은커녕 죽 쒀서 개 준 꼴이 되고 만 통한의 피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을 겁니다. 만약 거물급 정치인이었던 그가 계속 남쪽에 머물렀다면, 모르긴 해도 당시의 정국 상황에서 암살의 위협을 피하긴 힘들었을 테고요.


자유한국당이 아닌, 바른미래당의 지상욱 의원님. 바야흐로 남과 북의 정상이 만나 종전과 상생을 확약하고, 불구대천의 원수처럼 으르렁거렸던 북한과 미국이 비핵화와 평화협정 체결까지 논의하고 있는 요즘입니다. 아무리 정치판이 정권을 빼앗기 위한 이전투구의 장이라지만, 애먼 독립운동가까지 끌어들여 갈등을 부추겨서야 되겠습니까. 이는 영화 <암살>을 이적표현물이라고 못박는 것과 별반 다를 바 없습니다.


과거의 영화가 그리워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시대는 변했습니다. 이젠 '친일파보다 빨갱이가 더 나쁘다'는 망언에 휘둘릴 국민들은 얼마 남아있지 않습니다. 해방 이후 수십 년 동안 사람들의 입을 틀어막고 눈을 멀게 했던 '빨갱이'라는 서슬 퍼런 말도, 분단과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친일 반민족 세력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라는 사실을 국민들은 시나브로 깨달아가고 있습니다.


여전히 '빨갱이'라는 낡은 이념의 잣대를 들이밀어 사상을 검증하려는 이들의 모습이 황당하면서도 참담합니다. 그런 주장을 대서특필하는 일부 언론과 부화뇌동하는 이들이 되레 측은할 지경입니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소련이 붕괴된 지가 언젠데, 아직도 '공산주의 하자는 것이냐'며 입에 거품을 무는 모습을 보니 이들이 과연 동시대 사람인가 의심스럽기까지 합니다.


보훈은 한쪽만의 전유물이 아닙니다 


부러 '보훈'이라는 단어를 국어사전에서 찾아보았습니다. '보훈 농단'이라는 의원님의 말씀을 듣고, 보훈의 정확한 의미가 갑자기 궁금해졌습니다. 제 책상 위에 놓인 낡고 헤진 국어사전에는 보훈이라는 단어가 수록돼 있지 않아서, 국립국어원 홈페이지에서 찾아봤습니다.


'국가 유공자의 애국정신을 기리어 나라에서 유공자나 그 유족에게 훈공에 대한 보답을 하는 일.'


사전적 의미를 그대로 따른다면, 빼앗긴 나라를 되찾겠다고 목숨을 바친 독립운동가들이야말로 첫손에 꼽힐 보훈 대상자 아닐는지요. 의원님을 비롯한 재향군인회나 자유한국당의 반론을 종합하면, 보훈이란 건국 과정에서 자유민주주의 체제 수호를 위해 싸웠던 국군 장병의 희생에 보답하는 것으로 한정시키고 있습니다. 흡사 군인이 보훈을 독점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하긴 저 역시 어릴 적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에 대한 묵념'을 할 때면 국군 아저씨들만 떠올렸습니다. 현충일엔 어김없이 국군 아저씨들께 위문편지를 썼고, 호국보훈의 달 기념 그림 그리기 대회에서는 도화지 위에 예외 없이 비장한 모습의 군인들이 등장했습니다. 어린 마음에 나라를 지키는 사람은 자랑스러운 우리 국군뿐이라고 믿어온 것입니다.


우리의 인식 속에 보훈의 의미가 전쟁 중 산화해간 군인들로 한정될 때,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와 민주화 과정에서 희생된 이들의 설 자리는 좁혀질 수밖에 없습니다. 국립묘지에 잠들어 있는 수많은 우리 국군들의 숭고한 희생을 폄훼할 순 없지만, 그렇다고 그들만이 국가의 존립과 주권 수호에 이바지했다고 말하긴 어렵습니다.


우리나라의 두 곳 국립묘지에는 악질 친일파 출신 군인과 경찰들이 적잖이 묻혀 있습니다. 대개 한국전쟁 당시 '빨갱이 소탕'의 공을 세웠다는 이유로 친일 반민족 행위의 죄를 슬그머니 털어내고 당당히 국립묘지에 안장된 경우입니다. 그들로 인해 동족상잔의 한국전쟁이 정작 친일파들의 해방 전쟁이었다는 주장이 꽤나 설득력을 얻고 있습니다.

 

▲  약산 김원봉 장군 ⓒ 위키피디아


의원님의 주장이 몇 해 전 벌어졌던 소모적인 '건국절 논쟁'과도 맞닿아 있다고 하면 억측일까요.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 수립을 건국으로 삼는다면, 일제 강점기 김원봉을 비롯한 숱한 독립운동가들의 희생은 대한민국이 보훈할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엄연히 대한민국의 헌법은 3.1운동과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고 못 박고 있습니다.


헌법을 부정할 게 아니라면, 부디 '빨갱이' 운운하며 일제강점기 사회주의 계열의 독립운동가들을 욕보이는 짓을 멈춰 주십시오. 그보다 국립묘지에 버젓이 안장돼 있는 악질 친일파 김창룡의 무덤을 파서 국가 기강을 바로 세우도록 법을 개정하는 것이 의원님의 할 일입니다. 김원봉조차 받아들일 수 없다면, 그건 '보수'가 아니라, '극우'일 뿐입니다.


사족 하나 덧붙여도 될까요. '보훈 농단'이라는 의원님의 지적 때문인지, 국가보훈처는 '국민적 공감대 형성이 필요한 사항'이라며 꼬리를 내렸더군요. 여기에 현행 독립유공자 서훈 기준에 북한 정권 수립에 기여한 인물은 선정이 어렵다는 조건을 달면서 말이죠.


입만 열면 '촛불 혁명으로 탄생한 정권'이라고 떠들어대지만, 국가보훈처 역시 정작 적폐 중의 적폐인 '레드 콤플렉스(Red Complex)'의 망령은 떨쳐내지 못한 것 같습니다. 이게 2019년 대한민국의 현실이라고 생각하니 그저 착잡할 따름입니다.



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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