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kids.hankooki.com/lpage/edu/200511/kd2005110313073377370.htm
[민족의 혼, 고구려 여행] 국내성
<30> 425년 동안고구려 수도로 견고한 방어 시설 갖춰
김용만 (우리역사문화연구소장) 입력시간 : 2005-11-03 13:10
1930년대에 찍은 국내성 성벽 사진. 돌 하나하나에 고구려 사람들의 호국 정신이 서려 있다. 오른쪽의 튀어나온 부분이 ‘적대’.
●집안시 청사·기단 등 발견
고구려 2대 유리명왕 때인 서기 2년의 일입니다. 하늘에 제사를 지낼 때 쓸 제물로 기르던 돼지가 달아나는 일이 생겼습니다. 그러자 제사 물품을 관장하던 ‘설지’가 돼지를 뒤쫓아가서 국내 위나암에서 잡았습니다.
그는 돌아와서 유리명왕에게 아뢰었습니다.
“국내 위나암은 산과 물이 깊고 험하며, 땅이 농사 짓기에 알맞고, 사냥과 고기잡이에도 유리합니다. 대왕께서 이 곳으로 수도를 옮기신다면 백성들이 살기 좋을 뿐만 아니라, 전쟁의 피해도 피할 수 있을 것이옵니다.”
이 말을 들은 유리명왕은 1 년 뒤 수도를 국내로 옮기고 위나암성을 쌓았습니다. 이 때 옮긴 고구려 두 번째 수도인 국내성이 길림성 집안시 중앙에 남아 있는 성입니다. 위나암성은 이 국내성에서 2.5 km 북쪽에 있는 산성이지요.
국내성은 평지에 만들어진 정사각형 형태의 성으로 그 둘레가 2686 m에 이릅니다. 1930년대만 해도 높이 9 m의 성벽이 잘 보존돼 있었어요. 하지만 관리 소홀로 국내성의 동쪽과 남쪽 성벽은 아예 사라져 버렸으며, 서벽은 집들에 둘러싸여 그 흔적을 찾아보기가 어렵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지난 2003년부터 중국이 국내성을 세계 유산으로 등록하기 위해 대대적인 정비 작업을 벌였지요. 이 때 서벽 주변의 300여 가구가 강제로 옮겨지고, 북벽과 서벽이 새로 발굴되면서 국내성은 조금이나마 옛 모습의 일부를 다시 찾을 수 있었습니다.
국내성은 장수왕이 427년 평양으로 도읍을 옮길 때까지, 무려 425 년 동안이나 고구려의 중심지였습니다. 당시 국내성 안에는 왕궁이 있었을 터인데 아직까지 확실한 왕궁 터로 밝혀진 곳은 없으니 안타깝습니다.
그러나 집안시 청사와 주변 운동장 터에서 돌 담장 바닥돌과 건축물의 기단 등이 발견되는 것으로 보아 언젠가는 왕궁 터도 찾아질 것으로 보입니다.
치·적대 등 안보 장치 탁월
국내성 북쪽 서문 성면. 앞쪽으로 깔려 있는 돌무더기가 '치'다.
국내성은 2000 년 전에 만들어졌다는 역사성과 함께, 견고한 방어력을 갖춘 고구려 성벽의 특징을 잘 보여 주는 소중한 유적입니다.
성문은 원래 성 안팎 사람의 출입을 위해 필요한 시설이지만, 적군이 쳐들어올 경우 가장 공격 당하기 쉬운 곳이기도 합니다. 고구려 사람들은 성문의 방어력을 높이기 위해 다양한 형태로 성문을 만들었음이 발굴 결과 드러났습니다.
최근의 발굴로 새롭게 드러난 북벽 서쪽 성문은 문 밖 양 옆에 사각형으로 튀어나온 적대를 만들어 ‘凹’ 자형이 되도록 지어졌습니다.
일반적으로 직선상의 성벽에 그냥 문을 만들어 놓게 되면 적군이 성문을 공격할 때 방어하는 쪽에서는 정면에서만 방어를 할 수밖에 없지요. 하지만 적대를 양 옆에 만들어 놓게 되면 성문을 공격하는 적을 세 개의 면에서 막을 수가 있게 되고, 적이 성문을 공격하는 범위를 좁혀 주는 이점이 있습니다. 이런 형식은 수원 화성의 남문과 북문에서도 볼 수 있어요.
한편, 서벽에서는 어긋문이라고 불리는 성문이 나왔습니다. 즉, 북쪽으로 이어진 성벽이 남쪽으로 이어진 성벽과 일직선으로 만나지 않고, 성문 앞에서 더 앞쪽으로 나가 뻗어 있습니다.
또 성문은 서쪽이 아닌 남쪽을 바라보며 열려져 있습니다. 앞쪽으로 뻗은 성벽은 동쪽으로 꺾어졌다가 다시 북쪽으로 꺾어져서 성문과 다시 만납니다.
이렇게 툭 튀어나온 부분이 자연스럽게 적대가 돼 성문을 방어하게 되는 효과를 가지는 것이지요. 적군이 만약 성문을 공격하려고 해도 툭 튀어나온 부분을 돌아서 공격해야 하기 때문에 쉽게 성문에 접근할 수가 없습니다.
성벽에는 또 곳곳에 ‘치’라고 부르는 사각형 형태로 툭 튀어나온 것을 세워 놓았습니다. 치가 설치되면 적을 세 방향에서 방어할 수 있게 됩니다.
이처럼 고구려 사람들이 나라를 지키기 위해 얼마나 많은 연구와 노력을 했는지 국내성의 성벽을 통해서도 우리는 확인할 수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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