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kids.hankooki.com/lpage/edu/200512/kd2005122913162577370.htm


[민족의 혼, 고구려 여행 38] 후세에 길이 빛날 유물·유적 소중히 보존해야

김용만 (우리역사문화연구소장)  입력시간 : 2005-12-29 13:19


국립중앙박물관에 전시 중인 고구려의 집 모양 토기. 높이 8 cm의 작은 토기지만 고구려 집의 형태를 알려 주는 귀중한 자료다.


올 1 년 동안 ‘민족의 혼, 고구려 여행’을 통해, 고구려인이 남긴 유적과 유물 가운데 세계 유산으로 등록된 것과 앞으로 등록되어야 할 것들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런데 이 고구려 유적들이 대부분 고분 벽화ㆍ무덤ㆍ성ㆍ비석 뿐이라는 것에 실망한 어린이들도 있었을 것 같습니다.


고구려에는 세계 기록 문화 유산인 조선왕조실록이나 훈민정음처럼 값진 책들은 없었을까요? 또 그리스의 파르테논신전이나 신라 석굴암같은 좋은 조각품은 없었을지 궁금하기도 하지요?


고구려인들이 남긴 유물 가운데 고분 벽화와 무덤이 주로 남은 건 그 이유가 있답니다. 고구려에서는 100 권에 이르는 ‘유기’라는 역사책을 만들었으며, 600년에는 이문진 태학박사가 이를 정리해 ‘신집’ 5 권을 펴내기도 했습니다.또 학문 수준도 높은 나라였으니 당연히 책도 많이 저술했을 게 분명합니다.


하지만 그 기록 물들은 무도 불타거나 썩어서 사라졌던 것입니다. 고구려가 외적에 의해 멸망했던 탓에 책들이 보존될 수가 없었던 것이지요.


고구려인이 만든 건축물도 마찬가지랍니다. 그리스의 파르테논신전은 돌로 만들었으므로 외형이 일부 남아 있지만, 고구려에서 건국 시조를 모셨던 주몽사당이나 사찰은 주로 나무로 기둥을 한 건축물이기 때문에 불에 타면 형체가 남아 있을 수가 없습니다. 따라서 고구려의 건물은 돌로 쌓은 주춧돌과 흙을 구워 만든 기와 정도만이 겨우 남아 있을 뿐이지요.


중국에는 운강석굴처럼 산을 파서 만든 굴 안에 불상 등을 조각해 놓은 유물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그와 같은 고구려의 유적이 전혀 남아 있지 않습니다.


집안박물관 바깥에 모아져 있는 고구려 당시 건축물의 주춧돌.


불교가 상대적으로 덜 활발하기도 했지만, 지형이 단단한 화강암이라서 사람들이 굴을 파기 어렵다는 이유도 있었습니다.


고구려 무덤 안에는 또 신라 황남대총 등에서 나온 금관이나 옥기 등이 남아있지 않습니다. 그것은 무덤 입구를 쉽게 찾을 수 있고, 땅 위에 석실이 있어 도굴이 쉬웠던 게 그 원인이 아닐까 여겨집니다.


중국의 진시황릉처럼 무덤을 땅 속에 만들고 입구를 철저히 숨겼다면 도굴이 힘들었겠지만, 고구려 무덤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따라서 무덤 안에는 벽화 정도의 유물만 남은 것입니다.


그리고 습기, 산성 토양, 바람 등도 유물을 원형 그대로 보존하지 못하게 만드는 적입니다.


백암성 성동. 사람들의 무관심으로 성의 돌들이 민가의 담장으로 사용되고 있다.


이렇듯 여러 나쁜 조건과 숱한 역사의 변화를 거쳤음에도 고구려 사람들이 남긴 유적과 유물이 남아 있다는 것만으로도 다행한 일입니다. 더욱이 세계 최고 수준의 고분 벽화와 광개토 태왕릉비가 남아 세계 유산이 된 것은 고구려인의 문화 능력이 뛰어났기 때문에 가능한 일입니다.


고구려인이 남긴 이러한 유적이 없었다면, 지금 우리가 고구려를 알기란 무척 어려웠을 것입니다. 고분 벽화 덕택에 우리는 고구려인의 속살까지도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습니다.


고구려인의 역사적 경험의 산물인 문화 유산들이 우리에게 전달되고 있다는 것은 참으로 소중합니다. 현재의 우리가 먼 과거의 고구려와 만날 수 있음으로 인해, 고구려의 역사적 경험과 지혜를 얻을 수 있고, 또 그들이 남긴 예술 작품을 감상하는 기회를 얻게 되었습니다. 인류가 발전해 온 것은 현재의 경험을 후세에 전해 주는 역사를 남겼기 때문입니다.


옛 고구려의 유적과 유물을 잘 보존하는 건 현재의 우리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후손들을 위한 것이기도 합니다. 작은 유물 하나라도 더 이상 훼손되지 않게 잘 보존해서, 고구려 역사가 먼 훗날까지 오래오래 전해질 수 있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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