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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百濟)의 성립과 발전에 대한 이견(異見)

오태진의 한국사 이야기

오태진 아모르이그잼 경찰 한국사    |  gosilec@lec.co.kr 승인 2014.11.12  12:39:07


1. 백제사에 대한 이해와 시기 구분 


백제는 한때 지금의 서울, 황해도 일부, 경기도, 충청도, 전라도, 제주도까지 그 영역을 확장하면서 약 7백 년의 역사를 구가한 고대 국가의 하나였다.  


이러한 백제사를 어떤 관점에서 바라보는가에 따라 여러 가지 시대구분이 있을 수 있지만, 대부분은 왕도의 변천에 따라 한성시대(BC. 18~475), 웅진시대(475~538), 사비시대(538~660)로 나누는 구분이 통용되고 있다.  


2. 백제의 건국 시기 


백제의 건국 시기와 주체 세력의 문제는 서로 맞물려 논의될 수 있는 주제이다. 주체 세력을 어떻게 파악하는가에 따라 건국의 시기가 설정될 수 있기 때문이다. 


1) <삼국사기> 백제 본기 비판론 

구한말까지, <삼국사기>에 기록되어 있는 건국 연도인 전한(前漢) 성제(成帝) 홍가 3년(BC. 18)을 의심하지 않았다. 


① 일본인 학자, ‘쓰다’  

<삼국사기> 초기 기록의 신빙성을 부인하는 경향이 생기면서, 백제의 기원을 <삼국지> 한전에 근거하여 3세기 말경으로 파악하려고 하였다. 


② 이병도 

중국 사서에 백제의 시조로 나오는 구태(仇台)의 고음(古音)이 고이(古尒)와 같다는 사실에 착안하여 고이왕(234~286)이 백제의 실질적인 시조라고 보았다(1936).


③ 이기백 

백제 왕실 계보의 검토를 통해 늦어도 3세기 중엽에는 백제의 국가 형성이 이루어졌다고 보았다(1959).  


④ 이기동 

고이왕 때인 3세기 중엽에 마한족의 백제국이 성읍 국가에서 연맹 왕국 단계로 비약했고, 4세기 무렵에는 다시 고구려 계통의 온조 집단이 남하하여 백제국을 정복했을 것으로 추론하였다(1981). 


⑤ 이도학 

백제의 연원을 부여에서 찾고 정복 국가설에 따라 근초고왕 대인 4세기를 백제사의 전환기로 파악하였다(1995). 


⑥ 기타 

구체적인 맥락에서는 연구자에 따라 차이가 있겠지만, <삼국사기> 초기 기록을 국가 발전단계론에 따라 재구성하여 <삼국사기> 초기 기록 분해론을 제기한 노중국과 김기섭, 문안식, 강종원 등도 한강 유역에서 백제 국가의 출발을 3세기 내지 4세기로 파악하였다.


2) <삼국사기> 백제 본기 긍정론 


그러나 삼국사기 초기기록을 긍정론의 입장에서 보면 백제 초기사의 모습을 사뭇 달라지게 된다. 삼국사기 초기 기록에 대한 논의는 1970년에 들어와 초기기록의 신빙론이 강력히 대두되면서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① 김원용 

<삼국사기> 초기기록을 긍정적으로 보아 기원전 1세기에 백제가 건국되었다고 파악하였다. 


② 천관우  

우태-비류-고이계와 주몽-온조-초고계로 나누어 살핌으로써 왕실 교대의 가능성을 제기했다. 연구자마다 구체적인 해석의 차이는 있지만 이를 범주화한다면, 이종욱, 김정배, 박찬규, 박현숙, 김병남, 최범호, 이용빈 등도 삼국사기 초기기록에 대한 적극적인 해석을 통해 백제의 건국 시기를 온조왕대로 설정하였다. 


3. 백제의 건국 시조에 대한 논의 


백제의 시조에 대해서도 온조설, 비류설, 구태설, 도모설 등 각기 다른 전승이 전해짐으로써 이를 바탕으로 한 다양한 논의가 전개되고 있다. 온조를 시조로 하는 설은 <삼국사기> 백제본기 온조왕조의 본문에 그 기사가 전한다.  


이 설은 고구려의 주몽과 직결된다. 비류를 시조로 인정하는 설은 <삼국사기> 백제본기 온조왕조 할주(割註)에 인용된 기사다. 구태를 시조로 보는 설은 <주서> 이역상, 백제전에 근거한다. 마지막으로 도모설은 <속일본기> 권40, 환무천황 9년 가을 7월조에 백제의 태조가 <도모대왕>이었다는 기록이 보인다. 


1980년대만 하더라도 백제의 건국 집단을 ‘부여계 고구려 유이민’이라는 포괄적인 의미로 파악했기 때문에 부여와 고구려를 굳이 나누지 않았다.  


그러나 천관우와 이기동에 의해 백제 왕실 교대론이 제기되어 백제의 건국 집단을 비류계와 온조계로 나누고, 비류를 우태와, 온조를 주몽과 각각 연결시킴으로써 다시금 이 문제가 쟁점화되었다. 


그리고 노중국과 이종욱은 국호의 변화에 주목하여 십제(十濟) ⇨ 백제(百濟)로 확대되는 표현이 백제의 성장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고 보았다. 노중국은 온조와 비류가 형제라는 시조형제설화는 백제가 소국 연맹단계였음을 보여준다고 해석했다.  


건국 주체에 대해서도 연속성 내지 계승성을 인정하는 입장과 불연속성 내지 단절을 강조하는 견해로 크게 나눌 수 있다.  


연속성을 인정하는 입장은 <삼국지> 한조의 마한 소국 가운데 하나인 3세기 무렵의 백제국과 4세기 이후의 백제와의 관계를 연속선상에서 보는 것이다.  


이 견해는 다시 삼국사기 초기 기록을 역사적 사실의 반영으로 인정하는 긍정론과 절충론으로 나뉜다. 


불연속성 내지 단절을 강조하는 입장은 4세기 중반 이후 백제의 갑작스러운 발전에 대해 이전의 백제와는 별개의 존재로서 만주지역에 존재하던 기마 민족이 남하하여 세운 일종의 정복 왕조였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이와 같이 백제의 건국 주체와 시기의 문제는 <삼국사기> 초기 기록을 어떻게 볼 것인가 하는 사료의 문제에서 출발하여, 고구려와의 친연성을 강조할 것인가, 아니면 부여의 계승성을 강조할 것인가, 그리고 비류와 온조의 문화적 기반 차이를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하는 과제들이 있다.

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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