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ww.lec.co.kr/news/articleView.html?idxno=35066


고고학으로 접근해 본 백제사(百濟史)

오태진의 한국사 이야기

오태진 아모르이그잼 경찰 한국사 | gosilec@lec.co.kr  승인 2014.11.19  11:31:52


1. 백제 고고학의 현 단계 


백제사를 고고학적으로 접근해 본 시도는 일제시대 일인(日人) 학자들에 의한 것이었다. 


우리 학자들에 의한 본격적인 조사와 연구는 1960년대부터라고 할 수 있는데, 이 때 발굴한 대표적인 유적은 영암 내동리 고분군, 부여 동남리 와요지, 광주 신창동 옹관묘군 그리고 풍납토성 등이 있다. 


이후 1980년대는 충청도와 전라도 지역의 대학들을 중심으로 백제, 마한 문화 연구 등이 활기를 띠었으며, 특히 백제권역에 대한 개발 사업이 본격화되면서 백제 유적에 대한 조사와 연구도 한층 활기를 띠게 되었다.  


몽촌토성, 공산성, 부소산성, 익산 미륵사지, 왕궁리 유적, 영산강 유역을 중심으로 한 전남 지역의 유적을 발굴한 것도 이 때였다. 현재에 이르면서 백제사와 마한사에 대한 관심과 연구 열기는 줄어들지 않고 있으며, 새로운 연구 성과도 속속들이 발표되고 있다. 


그러나 백제 지역의 각종 유적이나 유물을 망라하여 검토범위를 정하는 데는 적지 않은 어려움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리하여 이번 회에서는 백제의 정치, 사회현황과 비교적 밀접하게 관련이 있다고 믿어지는 고분과 성곽의 연구 현황을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2. 한성시대 백제의 고분 


① 다양한 백제의 고분 형태 


백제의 한성시대는 백제국의 건국 및 성장 과정이 최대의 관심사라고 할 수 있다. 백제의 건국 시기를 파악하기 위한 고고학적 자료로는 고분과 성곽이 줄곧 거론되었다. 


백제고분에 대해서는 이미 일제시대 때 서울의 강남 지역에 이른바 갑총과 을총으로 대별되는 89기의 고분이 자리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부터 지속적으로 학계의 관심대상이 되어왔다. 이후 1969년에 가락동 1, 2호분이 조사되면서 비로소 본격적인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현재까지의 연구에 따르면 서울시 강남 일대를 중심으로 한 한성시대 백제 고분으로는 적석총, 석실분, 분구묘, 토광묘, 석곽묘, 옹관묘 등이 있다. 이 중 상대적으로 출현시기가 뒤지는 횡혈식 석실분은 백제의 건국과는 전혀 무관한 것으로 밝혀졌다. 


② 고분의 형태와 백제 건국과의 연관성 


처음으로 서울시 강남 일대의 한강 하류 지역에 자리하고 있는 백제고분을 백제의 건국과 관련시켜 이해한 논문은 1989년에야 나왔다. 강인구 


즉, 강남지역의 백제고분을 토묘 계통과 석묘 계통으로 나누고, 이들을 역사상에 등장하는 비류계와 온조계로 비정하였다. 즉, 강남 지역에서 제일 먼저 등장하는 묘제가 토묘 계통의 토광묘이고, 뒤이어 석묘 계통의 적석총이 등장하는 것을 들어 비류계=토광묘=부여계, 온조계=적석총=고구려계로 이해했던 것이다. 이와 비슷하면서도 대비되는 내용이 있다.  


한성시대의 백제고분을 적석총계와 토광묘계로 나누는 것은 같으면서도, 적석총의 등장을 백제의 건국으로 본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임영진 


즉, 서울 강남을 포함한 북한강, 남한강 유역에서 발견된 적석총을 고구려식, 백제식, 말갈식으로 나누고, 고구려식 적석총의 강남지역 등장을 백제의 건국시기로 보고 있다. 이렇게 되면 석촌동 1호분이 가장 빠른 단계의 고구려식 적석총이 되는데, 그럼 백제의 건국 시기가 3세기 중엽경에 해당하게 된다. 


백제의 건국 집단이 고구려와 관련이 있다는 것은 이미 다 아는 사실인 만큼 강남 지역의 적석총을 백제의 건국과 관련 짓는 데에는 이론이 없다.  


다만 그렇게 되면 사료상에 등장하는 비류로 대표되는 집단의 존재가 무엇인가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더불어 사료상에는 고구려와 함께 부여와 백제와의 관련성도 구체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만큼 이에 대한 해명도 필요하다.  


한편 그 동안 백제의 실질적인 건국을 대변하는 것으로 전해 오던 적석총, 그 중에서도 고구려식 기단식 적석총을 통해 백제의 건국 시기를 3세기 중, 후반으로 보는 견해가 있다. 그 근거가 되는 무덤으로 석촌동 3호분이 있는데, 이를 근초고왕릉으로 파악하여 근초고왕때 기단식 적석총이 처음으로 출현하는 것으로 파악했다.  


근초고왕이 활동하던 4세기 중엽이 기단식 적석총의 출현 상한선이 되는 것이다. 아울러 이 시기에 갑자기 고구려식의 적석총이 등장하는 이유는 부여계 공동 후예로서의 고구려와 백제의 뿌리깊은 경쟁의식의 결과, 부여계의 적통적 지위를 확보한 표방으로서 백제에서 처음으로 적석총을 사용한 것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박순발 


이처럼 다양한 의견 제시에도 불구하고 최대 관심사인 백제의 건국 시기와 건국자 집단의 원류 문제는 오히려 미궁에 빠지고 있는 느낌이 강하다. 


③ 횡혈식 석실분은 신라의 고분(?) 


또한 한성 시대 백제 고분 문제에서 빠뜨릴 수 없는 것이 횡혈식 석실분과 관련된 문제다. 횡혈식 석실분 즉, 굴식 돌방무덤은 시기적으로 토광묘나 목관봉토분, 적석총보다 후대에 등장하기 때문에 백제의 건국과는 무관하다.  


다만, 이 묘제가 웅진과 사비의 주묘제로 등장한다는 점에서 중요성이 크다 하겠다. 그런데 여기에서 신라의 토기가 출토되었다는 점에서 백제고분이 아닌 신라의 고분이라는 주장이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가락동, 방이동처럼 백제의 수도 지역이었던 곳의 고분까지 의심할 필요는 없어보인다는 것이 학계의 견해이다. 

Posted by civ2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