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timeline.britannica.co.kr/bol/topic.asp?article_id=b09b0923a&ref=7#ID7 (링크 사라진듯)


백제요서진출 (百濟遼西進出)


삼국시대에 백제가 중국의 요서(遼西) 지방에 진출해 군(郡)을 설치하고 일시적으로 지배한 사실.


임나일본부(任那日本府) 문제와 함께 고대의 대외관계사에서 사실성 여부를 둘러싸고 논란이 되는 것 가운데 하나이다.


중국 기록을 보면, 심약(沈約:441~513)이 편찬한 〈송서 宋書〉에 "고려(고구려)가 요동(遼東)을 점거하니 백제가 요서를 점거했다. 백제가 지배한 곳을 진평군(晋平郡) 진평현(晋平縣)이라 했다"고 되어 있다. 그리고 〈양서 梁書〉 백제전에는 "진(晋)나라 때 백제가 역시 요서·진평 2군을 점거하고 직접 백제군(百濟郡)을 설치했다"고 하여 매우 구체적으로 서술하고 있다. 〈양직공도 梁職貢圖〉에는 "백제는 옛 내이(萊夷)이며 마한의 족속이다. 진나라말에 고려가 요동과 낙랑을 점거하니 백제 역시 요서 진평현을 점거했다"고 되어 있다. 그외 〈남사 南史〉·〈통전 通典〉에도 비슷한 기록이 전하며, 〈진서 晋書〉·〈자치통감 資治通鑑〉에도 백제가 남만주의 요서지방에 대해 세력을 미치고 있었음이 기록되어 있다. 또 〈남제서 南齊書〉 백제전에는 북위 군사 수십 만이 백제군에게 대파당한 기록이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 기록에는 〈삼국사기〉 백제본기 동성왕 10년조에 "위(魏:北緯)나라가 군사를 보내 우리를 쳤으나 아군에게 패했다"는 기사와 함께, 최치원(崔致遠)의 〈상대사시중장 上大師侍中狀〉에 백제가 중국의 오월(吳越) 지방을 침략한 적이 있다고 서술한 것이 전부이다. 이에 대해 조선시대의 한진서(韓鎭書)는 〈해동역사 海東繹史〉에서 〈송서〉의 잘못을 그뒤의 사서들이 답습했다고 보았으나, 신경준(申景濬)은 우리측 사서가 이를 누락한 것으로 간주했다. 20세기에 들어서 가장 먼저 이에 주목한 사람은 신채호(申采浩)였다. 그는 삼국을 통일한 신라가 백제를 증오하고 사대주의가 성행한 까닭에 국내 사서가 이를 누락시켰다고 보고, 백제가 근구수왕(375~384 재위) 때 요서·산둥[山東]·장쑤[江蘇]·저장[浙江] 등을 경략했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이후 정인보(鄭寅普)·손진태(孫晉泰) 등도 비슷한 견해를 주장했다. 그러나 일본인들은 이를 전적으로 부정하는 경향이 강했다. 1960년대 후반부터 국내 학계에서는 이를 긍정적으로 검토하려는 시도가 나오기 시작해 김상기(金庠基)에 의해 부연되었다. 특히 방선주는 중국사료를 광범위하게 적출해, 강대한 수군을 배경으로 5세기말~6세기 중엽까지 화북지방의 혼란을 틈타 여기에 백제가 진출해 보하이 만[渤海灣] 북안에 거점을 확보했을 가능성을 검토했다. 그리고 최근에는 백제의 초기 본거지를 한반도 내에서 구하지 않고 남만주지역에서 구하려는 시도까지 나오고 있으나 아직 학계의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다. 한편 북한에서도 1960년대부터 이 문제를 긍정적으로 검토하는 견해가 나오기 시작했으나 정설로 채택되지는 않았다. 이 문제는 백제국가의 형성과 밀접한 관련을 갖는 것으로 보다 깊이 있는 연구가 필요하다.


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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