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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정부는 ‘인디’를 미워해
이명박 정부 초기 문화·예술 정책의 키워드는 지원이 아니라 ‘좌파 적출’ ‘‘노무현 적출’이었다. 
황지우·김윤수·국립오페라합창단 등이 쫓겨났다.
기사입력시간 [227호] 2012.02.02  09:15:03  고재열 기자 | scoop@sisain.co.kr  

‘지원은 하되 간섭은 하지 않는다’는 것은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 시절 정부의 문화·예술 지원 철학이었다. 이 철학이 이명박 정부 들어 살짝 바뀌었다. ‘지원은 하지 않아도 간섭은 한다’로. 문화·예술계가 정권과 긴장 관계였던 것은 여느 정권에서도 마찬가지지만 이명박 정부는 남달랐다.

이명박 정부 문화·예술 정책의 초기 키워드는 ‘좌파 적출’이었다. 온갖 혐의를 씌워 노무현 정부 시절 임명된 문화·예술 단체 수장들을 찍어냈다. 그렇게 김윤수 국립현대미술관장, 황지우 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 김정헌 문화예술위원장 등이 쫓겨났다. 정부기관과 우파 언론 그리고 우파 단체가 삼위일체가 되어 이들을 찍어냈는데, 그 선두에 유인촌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있었다.

특히 노무현 정부와 관련된 사안에 대해서는 편집증적인 반응까지 보였다는 평가다. 일례로 노무현 정부 시절 문화관광부 장관을 지낸 이창동 감독이 만든 영화 <시>에서 주인공이 마지막에 지은 ‘아네스의 노래’가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추모하는 시가 아니냐는 의혹이 일기도 했다. 한국예술종합학교를 감사할 때는 예술 장르 간 통합(통섭)을 꾀했던 사업을 노무현 정부와 관련 있는 인물이 주도했다며 이와 관련된 모든 것을 샅샅이 뒤졌다.

2009년 유인촌 전 문화부 장관(왼쪽)이 1인 시위를 하는 한예종 학생(오른쪽)에게 손을 젓고 있다. ⓒ시사IN 자료

‘인디’라는 말도 금기였다. 인디 뮤지션을 지원하던 인디 음반 제작지원 사업이나 인디 뮤지션을 발굴하던 한국대중음악상 시상식 지원금도 끊었다. 한국대중음악상을 기획한 김창남 교수(성공회대)는 “인디 음악을 비롯한 비주류의 창의적 활력이 성장하지 못했다. 대중음악뿐 아니라 모든 문화·예술의 창의적 상상력은 주류가 아니라 비주류에서 나오기 마련이고 비주류는 공공적 지원을 필요로 하는데 그런 인식이 없었다”라고 지적했다.

노무현 코드를 지운 뒤에는 감사원을 동원해 정부에 비판적인 문화·예술 단체를 탄압했다. 문화다양성포럼의 양기환 사무처장은 “민족예술인총연합회·인권영화제·한국독립영화협회·스크린쿼터문화연대 등 특정 단체를 겨냥한 특별감사를 감사원이 진행했다. 감사원은 이들 단체를 관리 감독해야 할 문화부와 정부 산하단체가 아니라 문화·예술 단체를 직접 겨냥해 감사했다”라고 말했다. 감사원 감사 결과를 빌미로 정부는 이들 단체로 가던 정부 지원금이나 이들 단체가 주관하던 행사 지원금을 대부분 끊었다.

영화계를 감사할 때는 정부에 비판적인 독립영화인을 길들이기 위해 독립영화협회가 관여한 모든 사업을 감사하고 ‘독립영화’라는 이름을 아예 ‘다양성 영화’로 바꾸도록 종용했다.

반면 우파 문화·예술 단체에는 퍼주기로 일관했다. 수백억원 예산이 집행되는 사업도 일사천리로 집행했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한국예술인총연합회가 주관하는 목동 예술인회관 건립사업이다. 이 사업은 실행 과정에 문제가 많아서 정부가 국고보조금 165억원을 환수하기로 되어 있었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 들어 문화부가 태도를 바꾸면서 오히려 100억원을 추가 지원한 것이다. 베이징 올림픽 때 유인촌 전 장관과 가까운 연예인들이 조직한 응원단에 2억여 원이 지원되기도 했다.

이들 단체의 문화·예술 역량은 이명박 정부가 공을 들이는 ‘4대강 사업’과 ‘녹색성장’ 정책을 홍보하는 데 사용됐다. 문화예술관광부 홈페이지나 ‘위클리 공감’ ‘정책 공감’ 등 홍보 웹진과 블로그는 이를 전면에 내세웠다. ‘문화가 흐르는 4대강 살리기’ ‘광역권 관광자원 개발 정책’ 따위가 대표적이다. 고용정책의 일환으로 ‘예술 뉴딜’을 홍보하기도 했다. 저임금·비정규직인 단기 일자리가 대부분이었다.

이명박 정부 들어 임명한 문화·예술 단체 수장들은 이런저런 구설에 휩싸였다. 영화진흥위원회의 경우 현 정부 들어 임명한 위원장 두 명이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물러났다. 강한섭 교수(서울예술대학)는 영화인들로부터 무능하다는 비판을 받고 물러났고, 조희문 교수(인하대)는 심사에 압력을 가했다는 비난을 받고 물러났다. 조희문 교수는 그 뒤 뉴라이트 매체인 <시대정신>에 이렇게 썼다. “우파 정권이라 믿은 이명박 정부가 3년을 넘기고 있지만 문화·예술계는 좌파가 주도권을 완전히 장악하고 있는 상황이다.”


문화·예술계의 ‘MB 난민’들이 겪는 고통은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국립오페라합창단이 대표적 예다. 유인촌 장관 시절 문광부는 비용 절감을 이유로 국립오페라합창단을 해체했다. 당시 유 전 장관은 “외국의 오페라단 중에서 오페라합창단이 있는 경우는 없다”라고 거짓말까지 하면서 해체를 강행했다. 그렇게 무리해서 합창단을 없앤 후 국립오페라단은 파행을 거듭했고 결국 합창단 해체를 실행한 이소영 단장은 공금 유용 등 물의를 일으키고 물러났다. 그러나 아무도 수습에 나서지 않았다. 국립오페라합창단 문대균 노조위원장은 “여야가 합의를 해서 합창단을 재건해주기로 약속하고 예산까지 올렸는데 문화부의 거부로 무산되었다. 이런 문제를 일으킨 원흉인 유인촌 전 장관을 이 정부가 다시 문화특보로 임명하는 것을 보며 좌절했다”라고 말했다.

‘MB 문화 난민’은 포기하지 않아

그럼에도 MB 난민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황지우 시인은 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에서 쫓겨나고 법정 소송을 벌이면서도 자유예술캠프에서 젊은 문학도들에게 문학을 강의했다(현재 교수로 복직). 문화예술위원장에서 쫓겨난 김정헌 교수는 문화·예술을 삶에 접목하는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예술은 삶을 예술보다 더 재밌게 만드는 것’임을 증명하기 위해서다. 문래예술공장에 ‘예술과 마을 네트워크’라는 마을 연구소를 설립한 그는 “도시화·산업화로 마을 공동체가 붕괴되었다. 예술의 힘으로 공동체를 회복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앞으로 마을공화국연합 사무총장이 되는 것이 내 꿈이다”라고 말했다.

이명박 정부의 문화·예술 정책에 대한 평을 부탁하자 대다수 문화·예술계 인사들은 “제대로 된 정책이 없었기에 평할 것도 없다”라는 답을 내놓았다. 문화·예술계 전반의 침체는 학과들의 통합이나 폐지로 나타났다. 문화·예술계열 학과는 대학 구조조정의 첫 번째 대상으로 지목되고 있다. 이명박 시대 한국 문화예술계의 우울한 현실이다.


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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