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ww.kookje.co.kr/news2011/asp/newsbody.asp?code=2500&key=20100406.22022200656
초원에서 한반도까지 <29> 차마고도에서 찾은 초원 유목문화와 고인돌
수천 ㎞를 뛰어넘은 문화교류…`민족의 용광로`
중국 윈난성 석채산 청동기엔 초원계 문화 섞여 있어
티베트 쪽 산악지역에선 고인돌·무문토기도 출토
국제신문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입력 : 2010-04-05 20:17:05 | 본지 22면
6일부터 국립김해박물관에서 차마고도특별전이 열린다. 중국 윈난(雲南)과 쓰촨(四川)의 서부 산악지역에서 출발해 티베트로 이어지는 차마고도는 가파른 산악지역과 아름다운 자연을 배경으로 험난한 길을 초인적인 노력으로 여행한 상인들의 교역과 문화이야기로 유명하다. 윈난성 산악지역에서 교류는 사방으로 퍼졌으니, 차마고도는 동서를 잇는 교역루트이고 남쪽으로는 마약루트인 골든 트라이앵글로 악명높다. 더욱 놀라운 문화교류 루트는 북쪽이다. 이 경로로 초원 유목민족이 남하했으며, 고인돌로 대표되는 만주와 한반도 청동기문화가 유입됐다. 너무나 멀리 떨어져 있는 이 지역간 교류는 어떤 경로로 언제 이뤄졌을까.
윈난성은 민족의 용광로, 민족학의 고향
윈난성의 디엔국 유적인 이가산에서 나온 초원계통의 장식. 말타고 사냥하는 역동적 모습에선 시베리아와 오르도스 지역 초원계 청동기 문화를 엿볼 수 있다.
소설 '삼국지연의'에는 제갈량이 남만 원정을 해서 그 수령인 맹획을 7번 잡았다 놓아준 유명한 대목이 있다. 이 원정 때 제갈량의 부대는 맹획 이외에도 기묘한 여러 민족들과 조우한다. 소설로 각색되었다고는 해도 이때 등장하는 민족들의 모습은 현대 민족학적인 관점에서 보아도 아주 흥미롭다. (참고로, 한국에서 출판된 '삼국지' 중 이문열의 평역본이 거의 유일하게 생략 없이 이 장면들을 묘사했다.) 다양한 풍습의 그 사람들은 바로 현재의 윈난과 태국 일대 여러 소수 민족이다.
윈난성 동쪽은 평야지대로 주도인 쿤밍을 중심으로 대부분 인구가 몰려 있다. 반면 서부지역은 인구밀도도 희박하고 사람이 접근하기 어려운 산악으로 이뤄졌다. 이 산악지역은 글자 그대로 산 하나만 넘으면 언어며 풍속이 완전히 다른 민족들이 살고 있어서 민족학의 고향으로 불린다. 험난한 지리적 특성으로 인해 다른 민족과 접촉 없이 자신들만의 문화를 수 천년간 유지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예컨대 나시(납서·納西)족은 중국 상나라의 것과 유사한 복골(卜骨)과 독창적 상형문자를 아직도 쓰는가하면, 그들의 일파인 모수오(마사·摩梭))족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남은 완벽한 모계사회인 것으로 유명하다.
윈난성 디엔국의 기마전사를 표현한 유물
중국이 독립한 지 10년도 채 안 된 시점인 1957년 윈난성에서는 약 2000년 전 이 지역에서 번성했던 최초 국가인 디엔국(전국·滇國)의 고분인 석채산 유적이 나왔다. 이 유적에서 발견된 청동기 중 당시에는 귀중한 화폐였던 자안패를 담았던 저패기가 있었다. 그리고 제사나 의식에 쓰였던 청동북(동고·銅鼓)에는 제사를 지내고 죄인을 참하는 등 마치 활동사진처럼 역동적으로 당시 모습을 그려넣었다. '민족학의 고향'이라는 윈난성답게 디엔국에 복속된 여러 민족의 모습도 다양하게 묘사되었다. 심지어 그 그림들 속 인물들은 현재의 소수민족과 머리 모양이 똑같아 종족을 구분할 수 있을 정도다.
그런데 이 보고서를 본 초원지역 연구자들은 탄성을 금치 못했다. 왜냐하면 석채산 청동기에서 발견된 말 타고 사냥하는 장면, 역동적인 동물장식 등에는 시베리아와 오르도스 지역 초원계 청동기문화가 섞여 있었기 때문이다. 디엔국의 여러 민족 중에는 초원에서 내려온 사람들이 있었던 것이다. 석채산 유적 이후 디엔국 유적은 다수 발견됐고, 초원에서 내려온 문화는 디엔국 문화의 한 축을 이루고 있음이 밝혀졌다.
초원문화뿐 아니라 다양한 북쪽 문명 혼재
쓰촨 지역에 있는 고인돌
역사기록을 봐도 윈난지역에는 고대부터 초원지역에서 전란을 피해 내려온 사람들이 많이 보인다. 특히 초원계 청동기를 가지고 내려온 사람들로 지목받는 사람들은 복인(濮人), 강인(羌人), 수인(嶲人), 백랑족(白狼族), 교인(巧人) 등이 있다. 이들은 초원에 흉노가 발흥하던 와중에 전란을 피해서 남하했다. 흉노의 침략을 받은 오손(烏孫)이 다시 주변의 산악민족을 침입하자 그를 피해 산맥을 따라 남쪽으로 내려온 것이다. 고래싸움에 새우 등터진 셈이다.
이유야 어떻든 이들이 가지고 온 초원계 문화는 디엔국 문화로 재탄생했고, 나아가 태국의 동손문화에도 영향을 주었다. 한반도와 유럽까지 영향을 준 초원문화가 남쪽으로도 수 천 킬로미터를 건너온 놀라운 전파를 보노라면 '지구촌'이라는 말이 실감날 정도다.
차마고도의 고향인 쓰촨성 서부 지역 고인돌에서 발견된 토기. 이 무문토기는 한국 계통의 무문 토기와 비슷하다.
윈난성에서는 초원문화만 발견된 것이 아니다. 티베트와 맞닿은 윈난과 쓰촨의 서쪽 산악지역은 고인돌(그 지역 학자들은 대석묘라 부름)과 무문토기가 출토된다. 심지어 동검도 그 날이 휘어져 얼핏 보면 비파형동검과 유사한 것이 있을 정도다. 이러한 유사성은 이미 30여년 전부터 중국학계의 주목을 받아왔다. 우연의 일치라고 보기엔 유사성이 너무 많았고, 또 윈난 에서는 초원을 비롯해 북쪽에서 지속적으로 사람들이 내려온 흔적이 보이기 때문이었다.
쓰촨대학 고고학과 교수였던 동은정(童恩正)은 1986년 반월형문화전파대라는 가설을 제기했다. 즉, 한반도를 포함한 만주와 초원지역, 쓰촨, 윈난지역은 중원을 감싸듯 반월형을 이루며 서로 빈번하게 문화를 교류했다고 본 것이다. 그 원인을 지리·환경적 요건에서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비유하자면 울릉도에는 제주도에서 시집온 사람이 많다. 어업을 영위하던 사람들끼리 교류가 많았기 때문인 것과 같다. 중원을 제외하면 그 주변지역은 초원과 산악지역으로 맞닿은 곳이니, 사람들이 이동한다면 비슷한 환경으로 이동했을 것이다. 실제 윈난과 쓰촨의 서북쪽은 티베트와 맞닿은 곳으로 수 천 미터의 고원지대다. 과연 이 지역에 한반도와 유사한 청동기시대 문화가 있었을까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윈난성 중에서도 가기 어려운 지역이라 아직은 직접 확인할 길은 요원하다.
한국 고고학도 체계적 접근 필요
몇년 전 태국에서 다년간 일했던 재야사학자 김병호는 윈난과 태국에 사는 라후족이 고구려 후손이라 주장한 적이 있다. 뒤에 다큐멘터리로도 제작된 라후족의 풍습은 우연이라고 보기에는 너무나 많은 유사성이 있었다. 자신들의 고향을 머나먼 북쪽 눈 내리는 곳이라 하며 언어구조도 한국어와 비슷한 라후족의 이야기는 이후 체계적 조사로 이어지지 못하고 한때의 해외토픽으로 끝난 듯 하다. 사실 윈난성 산악지역의 특수성을 감안할 때 한국 계통의 민족이 일부 유입되었다면 현재까지 고스란히 남아있을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 윈난 지역의 초원민족이 그를 방증한다. 게다가 윈난의 험준한 산악지형은 마치 시간을 멈춘 기계처럼 한번 유입된 민족의 문화를 수 천년간 고스란히 보존한다. 하지만 체계적인 연구 없이는 흥미거리나 소설 소재 정도밖에 안 될 것이다.
우리는 단순히 비슷한 유물이 나오면 앞뒤 맥락 살피지 않고 '기원지'와 '한국문화의 관련성'을 성급하게 결론내려는 경향이 있다. 단순히 '한국 계통 주민이 있을까'라는 관심 이전에 알아야 할 부분이 있다. 바로 윈난과 쓰촨의 특수한 고대문화는 이미 세계적인 연구주제라는 점이다. 일본은 윈난성의 청동기를 연구하는 이마무라 게이지가 도쿄대 고고학과 교수로 있고, 러시아의 경우 이 지역을 연구하는 루돌프 이쯔는 윈난성의 다양한 민족들에 대한 교양서로 대중적 인기를 누릴 정도다. 정작 우리나라에는 연구자는 고사하고 제대로 된 개론서마저 없다. 차마고도의 인기가 한국에서도 이 지역 고고학과 민족학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로 이어지기를 기대한다.
윈난성 초원문화가 보여주는 '수천 킬로미터를 뛰어넘는 문화교류'는 우리에게 또 다른 타산지석이 될 수 있다. 한국에도 북방초원문화 요소가 널리 섞여 있음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하지만 어떤 경로로 왔는지 구체적 연구는 제대로 돼 있지 않다. 너무 먼 지역과의 교류이기 때문이다. 윈난의 초원문화는 한국과 초원지역의 관련성에 대해 많은 힌트를 줄 것으로 기대한다.
윈난성과 쓰촨성 서부 산악지역은 최근 차마고도의 본향으로 대중의 관심이 높다. 이제 중국 남서부 산간지역으로 한국 고고학계가 관심을 넓혀야 할 것이다. 필자도 박사논문을 쓴 뒤 윈난과 초원의 연관성을 꼭 연구해보고 싶었다. 하지만 실제 답사하고 유적을 볼 기회를 접하지 못한 탓에 아직도 숙제다. 2년 뒤 연구년을 맞게 되면 만사 제치고 꼭 조사하고 싶다. 아쉬운 대로 김해박물관의 차마고도특별전에서 갈증을 조금이라도 달래야겠다.
강인욱 부경대 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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