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ww.kookje.co.kr/news2011/asp/newsbody.asp?code=2500&key=20100302.22020192503


초원에서 한반도까지 <24> 칭기즈칸의 무덤은 어디에 있는가

초원제국의 영원을 바랐던 칭기즈칸 "내 무덤의 존재를 누구에게도 알리지 마라"

국제신문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입력 : 2010-03-01 19:29:58 |  본지 20면


- 영토의 개념 없었던 초원민족에게는 조상 무덤의 파괴가 부족 멸망과 직결

- 제국의 지속 원했던 칭기즈칸, 자신의 묘 조성 뒤 동원인력 모두 제거

- 그가 묻힌 곳 두고 고향 오논강說, 알타이산說 등 분분

- 실제 묘지 위치는 단서조차 찾지 못해


작년 말 중국 하남성 안양(安陽)현 서고혈촌(西高穴村)에서 '삼국지'의 인물 조조의 무덤인 고릉(高陵)이 발견되었다고 해서 세간의 이목이 집중된 적이 있다. 이 무덤에서는 조조의 이름이 새겨진 유물 8점이 나왔고, 인골의 나이도 60세 전후로 조조의 실제 죽은 나이와 일치했다. 수 개월의 조사 끝에 중국의 고고학계는 조조 묘라고 공식발표했다.


이 말이 맞다면 진실로 놀라운 발견인 셈인데, 여전히 의문이 많다. 조조는 생전에 다른 사람의 무덤에서 황금을 도굴해서 군자금을 충당한 도굴꾼 원조로 악명이 높았다. 그래서 본인이 죽었을 때는 수십 개 가묘를 만들었다 하니 섣불리 단정하기도 어렵다. 어쨌든 이번에 발견된 '조조의 무덤'은 이미 수차례에 걸쳐 도굴이 되어 더 이상 나올 유물도 없으니 그 의문은 당분간 풀리지 않을 듯 하다.


그렇다면 초원이 낳은 불세출의 인물 칭기즈칸의 무덤은 어디 있을까? 마르코 폴로가 '동방견문록'에서 이미 몽골에서는 그의 무덤을 아는 사람이 없다고 언급한 이래 지금까지 그의 무덤을 찾으려는 사람들이 끊이지 않고 있다. 도대체 칭기즈칸은 어디에 묻혀 있을까.


■초원 어디에 칸의 무덤 있을까


알타이산의 기슭. 여기 어딘가 칭기즈칸의 무덤이 있을 거라 보는 의견도 있다.


살아 생전 칭기즈칸은 주변의 모든 민족을 평정하며 무자비한 살육으로 악명이 높았다. 그런 그도 죽음의 섭리를 피하지는 못했다. 칭기즈칸은 유언을 할 때 자신의 죽음과 무덤이 알려지는 것을 극도로 꺼리면서 자신의 묘에 아무런 표시도 하지 말고, 아무도 모르게 장례를 준비하라고 했다. 극비리 치러진 장례식 행렬을 본 사람들을 모두 죽였고, 무덤을 만들던 일꾼과 그들을 지키던 군사들도 전부 죽임을 면치 못했다고 한다.


칭기즈칸이 묻힌 곳은 그가 태어나 자란 오논강이라는 설, 알타이산이라는 설 등 여러 얘기가 전해진다. 마르코 폴로는 그의 무덤이 '부르한 칼둔'이라는 곳에 있다고 기록했는데, 정확히 어딘지는 역시 논란거리다. 심지어 무덤 위로 강이 흐르게 했다거나 무덤 위에 숲을 만들었다는 등 전설도 많다.


20세기 이후에는 실제 고고학적 조사로 칭기즈칸의 무덤을 찾으려는 사람들도 있다. 특히 미국 시카고에서 변호사를 하던 아마추어 고고학자 마우리오 크라비츠는 40여 년 가까이 그의 무덤을 찾아 헤매고 있다. 일본의 고고학팀도 1990년대 이후 칭기즈칸 묘를 추적 중이다. 이런 조사 덕에 몽골시대 많은 무덤들이 발견되었지만, 칭기즈칸의 무덤은 발견된 바 없다. 더욱이 최근에는 첨단 위성기술이며 다양한 장비가 동원되는 데도 몽골시대의 거대한 고분은 발견되지 않고 있다.


아마도 칭기즈칸의 무덤 규모는 그리 크지 않고 지상에 별다른 표시도 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왜냐하면 칭기즈칸은 죽기 직전까지 사방을 정복했으며, 살아 생전부터 무덤을 만들기 시작했다는 기록이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소수의 몽골전사를 이끌고 세상을 정복하며 제국의 기틀을 다지기에 바빴던 그가 거대한 무덤 만들기를 좋아했을 것 같지 않다. 이집트 피라미드의 경우 파라오 즉위 전부터 만들기 시작해 수십 년의 공사끝에 조성된다. 유명한 투탕크 암몬의 피라미드는 그가 젊은 나이에 죽은 탓에 규모도 작고 미완성이었다. 칭기즈칸이 수천 명의 인력을 들여 거대한 고분을 만들었다면 그렇게 완벽하게 비밀이 유지될 수 있었을까


■무덤 크기로 위대함을 논하지 말자


중국 내몽골 오르도스시에 조성된 칭기즈칸 가짜 묘역. 무덤을 인위적으로 만들어 관광지로 키우고 있다.


만약 칭기즈칸의 무덤이 발견된다고 해도 화려한 보물같은 것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왜냐하면 몽골인들은 전통적으로 박장(무덤에 유물을 적게 묻는 풍습)을 하기 때문이다. 몽골 전사들의 묘는 그렇게 크지 않게 무덤을 파고 주변에 돌을 돌리며, 무덤구덩이 안에는 말과 시신을 묻는 정도이다. 초원민족의 풍습은 후장(풍부한 부장품을 묻는 풍습)인 가야, 신라 고분들과 좋은 대비가 된다. 창녕 교동, 합천 옥전, 김해 대성동 등 가야의 여러 고분들에서는 엄청나게 많은 유물과 금관들이 출토됐다. 같은 시기 일본의 왕릉인 전방후원분 중에 대형인 것은 그 둘레가 수백 m에 달할 정도여서 삼국시대의 무덤들을 능가할 정도다.


하지만 같은 시기 한반도 북부와 만주를 지배했던 고구려의 무덤 유물은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빈약하다. 얼마 전 중국에서 광개토대왕비 앞에 있는 태왕릉(광개토대왕의 것으로 추정하지만, 한국학계에서는 반대 의견이 대부분이다)을 발굴한 결과 금관은 없었다. 몇 가지 금동제 장식이 나왔을 뿐 출토 유물은 아주 적었다. 그뿐 아니라 대부분 고구려고분은 유물이 거의 없다. 역사기록에는 고구려인들은 무덤에 시신을 넣을 때 그 유물들을 깨뜨리고 주변 사람들에게 나눠준다고 돼 있다. 주변 지역과 전쟁을 하며 항시 이동을 해야 할 초원민족, 또 반농반목을 하며 거대한 제국을 이룬 고구려인들은 죽은 뒤의 안락을 위해 거대한 고분 조성에다 많은 유물을 넣을 수 없었기 때문에 그런 전통이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왜 그는 조용히 묻히고자 했을까?


아마추어 고고학자 마우리오 크라비츠. 40여 년간 칭기즈칸의 무덤을 찾아다니는 미국인이다.


그렇다면 왜 칭기즈칸은 자신의 무덤을 숨기고 싶어했을까? 여기에는 자기가 일궈낸 제국을 지켜나가기 위한 바람이 숨어있다. 왜냐하면 초원민족에게 조상의 무덤은 그들의 국가가 존재하는 한 지켜야할 마지막 보루이기 때문이다. 일정한 거주지 없이 초원을 돌아다니는 사람들에게는 땅을 빼앗긴다는 개념은 없었다. 따라서 적이 쳐들어 와서 도망가더라도 후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기원전 514년에 70만 대군을 이끌고 페르시아의 다리우스왕이 스키타이족을 침공했을 때 기록을 보자. 당시 스키타이족이 계속 도망만 치니 추격에 지친 다리우스왕은 비겁하게 도망치지 말고 싸우자고 편지를 보냈다. 그러자 스키타이 왕은 다음과 같은 요지의 답을 했다. "우리에겐 도시도, 농지도 없다. 우리와 싸우고 싶으면 우리 조상들의 무덤을 건드리면 된다…." 즉, 이동하며 사는 초원민족에게서 영토를 뺏는다는 생각 자체가 어불성설이며, 한 부족의 멸망은 그 조상의 무덤이 파괴되는 것으로 상징된다는 뜻이다. 칭기즈칸이 재위하던 시기 몽골은 막 제국을 정비해나가고 있었다. 그도 자신의 무덤이 적에 의해 훼손돼 제국이 멸망할까 염려했을 것이 분명하다. 칭기즈칸이 진정 바란 것은 화려한 무덤보다는 제국의 존속이었을 터니, 그의 무덤은 아무도 모르는 곳에 소박하게 조성됐을 것으로 짐작하는 게 더 맞을 듯 하다.


오르도스시 칭기즈칸 묘역 관광지에서 몽골민속공연이 열리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공연자들은 대부분 한족이다.


현재 내몽골 오르도스시 근처에는 후대 사람들이 만든 칭기즈칸의 가짜 무덤이 있다. 이 곳은 지금 대규모 관광지가 되었고, 칭기즈칸 능 앞에 만들어진 민속촌에서는 매일 밤 관광객들에게 전통무용과 몽골민속 등 볼거리를 제공한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대부분 연기자들은 한족이다. 실제 내몽골지역은 한족이 다수를 점하고 몽골인들은 한족의 이주와 도시화에 밀려 멀리 북쪽의 사막지대에서 겨우 명맥을 유지하며 살 뿐이니 지하에 묻힌 칭기즈칸이 이 사실을 알면 어떨까.


칭기즈칸이 거대한 고분을 만들고 저승에 투자했다면 유라시아를 정복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는 소수의 몽골인으로 세계를 제패했다. 그가 진정으로 원한 것은 내세의 화려한 지하궁전이 아니라 초원제국의 지속이었을 것이다.


■무덤이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것


위인이나 유명인의 무덤은 단순한 보물찾기나 호기심의 대상이 아니다. 과거의 역사적 의의와 진면목을 좀 더 구체적으로 파악하는 연구대상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영험한 효험과 자극적인 재미를 추구하며 위인의 묘를 찾는다. 심심치 않게 예수, 모세 등 성경의 인물이 발굴되었다는 해외토픽을 볼 수 있으며, 북한은 '단군릉'을 발굴해서 거대한 묘역으로 성지화했다. 이는 진정한 위인의 모습을 찾는 것이 아니라 그 껍데기만을 찾는 얄팍한 기대일 뿐이다.


여러 기록과 전설을 종합하면 칭기즈칸은 자신의 무덤을 소박하고 작게 만들었던 것 같다. 그는 무덤이 커서 위대한 사람이 된 것이 아니다. 조선시대 으리으리한 자신의 송덕비를 세운 관리 치고 제대로 된 경우가 거의 없다. 이 간단한 진리가 아마 칭기즈칸의 무덤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인지 모른다. 칭기즈칸의 무덤이 언젠가 발견될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무덤은 단순한 호기심의 대상이 아니라 세상을 정복했던 한 인물과 그가 일궈낸 초원제국의 진면목을 밝히는 기회가 되어야 한다.


강인욱 부경대 사학과 교수


Posted by civ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