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ww.kookje.co.kr/news2011/asp/newsbody.asp?code=2500&key=20091006.22020194239


초원에서 한반도까지 <3> 말, 인간의 동반자가 되다

먹잇감에서 탈 것으로 다시 전쟁터 도구로 인간史를 바꾼 馬

국제신문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입력 : 2009-10-05 19:52:52 |  본지 20면


- 구석기 시대 벽화에 그려진 말…2만~3만년 전부터 먹을거리로 이용

- 기원전 3000년경 재갈 등장하고 안장·금속제 등자 발명되면서 가공할 전쟁터 무기 둔갑

- 목축 활발했던 중앙아시아 초원서 말젖 찌꺼기·말뼈 구덩이 등 사육 흔적 곳곳에서 발견


알타이의 칼구타 암각화에 새겨진 말. 오른쪽 사진은 말의 복원 그림.


말이 없는 초원을 상상할 수 있을까? 말은 초원에 사는 사람들의 문화 속에 깊숙이 녹아들어 있다. 러시아 대중문화 속에서 말의 이미지하면 떠오르는 건 V. 비소츠키(1938~1980)의 '야생마'라는 노래다. 한국에서는 30대라면 중고등학교 때 단체관람으로 한번씩은 봤음직한, 미국으로 망명한 소비에트의 발레리노를 주인공으로 한 영화 '백야'(White Night)의 삽입곡으로 유명하다. 원제는 '제멋대로 가는 말'이다. 말떼에서 벗어나서 험한 곳으로 혼자 위험하게 달려가는 말은 자신의 운명을, 그리고 그 위에 올라탄 사람은 비소츠키 본인을 뜻한다. "제 멋대로 가는 말이여, 제발 조금만 천천히, 내가 노래를 마칠 때까지만 살 수 있을 때까지…"라는 노래의 가사처럼 비소츠키는 삶의 마지막까지 노래를 부르다 심장발작으로 짧은 생을 불꽃처럼 태우고 이 세상에서 사라졌다.


러시아 사람은 비소츠키를 좋아하는 사람, 그리고 아직 비소츠키를 모르는 사람으로 나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이 노래는 러시아 사람들에게는 영혼의 노래이다. 내가 이 노래를 처음 들은 것도 시베리아의 대평원지대였다. 그 무엇이 이 노래만큼 말 위에 사는 사람들의 정서를 잘 표현할 수 있을까. 말은 초원에 사는 사람들에게 운명이고 삶이었다. 채찍을 때려도 결국은 말은 자신의 길을 갈 뿐이기 때문에….


■말, 구석기인들을 먹여살리다


시베리아 최초의 유목민 문화인 아파나시에보 문화의 고분.


말은 이미 구석기시대부터 사람들의 먹잇감이었다. 지금은 말고기라는 말이 어색하게 들린다. 말고기라고 하면 제주도나 일본 구마모토에서 먹는 말고기회를 떠올리기 십상이다. 나이가 좀 있는 독자라면 30여 년 전에 한국에서 쇠고기파동이 일어났을 때 말고기를 대신 팔아 물의를 일으켰던 사건이 기억나실지 모르겠다. 심지어 나폴레옹이 모스크바를 공격할 때 식량이 떨어져서 말고기를 베어먹으며 연명했다는 이야기도 자주 회자된다. 이렇듯 지금은 말고기라면 못 먹을 것 또는 소수의 미식가만을 위한 음식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지만 인류는 적어도 2만~3만 년 전부터 말을 잡아먹었다.


스페인의 후기 구석기시대의 대표적인 동굴 유적인 알타미라에서도 화려한 말 그림을 자주 볼 수 있다. 구석기시대의 말그림은 스페인뿐 아니라 알타이에서도 발견되었다. 알타미라 동굴이 화려한 채색화라면 알타이의 칼구타 유적의 그림은 돌을 쪼아서 만든 암각화다. 칼구타의 말그림은 얼핏 보면 윤곽선만 간략하게 그려서 표현한 듯 하지만 자세히 보면 접혀진 뒷발이라든가 몸통 부분이 역동적이다. 아마 말의 습성을 잘 아는 사람들이 그린 듯하다. 게다가 배는 약간 볼록하게 되어서 마치 임신한 것처럼 보인다. 초원지역답게 동아시아에서 가장 이른 말 그림이 발견된 것이다.


■말고기에서 운송수단으로


데레예프카 유적에서 출토된 재갈멈치. 재갈멈치는 재갈이 말의 입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게 해주는 도구다.


기원전 3500년경에는 시베리아의 초원 전역으로 목축민이 확대되었다. 목축민은 지속적으로 이동을 하던 사람들이다보니 주변의 정착민들과 교류하며 새로운 기술과 문화를 전달하는 역할도 했다. 새로운 기술이 순식간에 수천 ㎞나 떨어진 지역으로 전파되는 일이 이때부터 시작된 것이다. 그들이 키우던 가축은 양 염소 말 등이었으며, 조금 더 북쪽의 툰드라지역에서는 순록을 키웠다. 목축이 도입되면서 말은 인간에게 친숙한 동물로 되었고, 그때부터 인류의 역사에서 말은 역사를 움직이는 인류의 동반자가 되었다. 단순한 말고기에서 운송수단으로서 말이 등장한 것이다. 말이 인간의 역사에서 운송수단으로 역할을 하는 데에는 크게 세 가지의 마구가 발명된 것이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첫째 기원전 3000년경 재갈이 발명되어 말을 통제할 수 있게 되었으며, 다음으로 안장이 발명되어 타고 다닐 수 있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서기 3~4세기경 고구려와 선비족에 의해 금속제 등자가 발명되어서 본격적인 무장을 한 기사가가 등장하게 된다.


이러한 말과 인간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전환점은 말이 단백질의 공급원에서 탈 것으로 변하는 과정일 것이다. 말을 타고 다닌다는 기발한 발상을 한 사람들은 누구였을까? 그들은 초원에서 말을 목축하던 중앙아시아초원의 사람들이었다.


■재갈, 말을 다스리다


야생의 말을 달래는 것은 쉽지 않았을 것이다. 말을 사람이 원하는 방향대로 가게 하려면 말의 입에 재갈을 채워야한다. 보통 두 번째 어금니를 빼거나 갈아서 그 사이에 재갈을 끼운다. 기승자가 재갈을 당기면 엄청난 압력이 말의 이빨에 가해지니 말은 사람의 말을 들을 수밖에 없다. 말이 단백질 공급원에서 타는 용도로 바뀌는 과정을 밝히려면 바로 재갈의 존재가 증명되어야 한다.


여기 말의 사육과 재갈 사용의 기원을 밝혀주는 중요한 유적이 있다. 바로 데레예프카와 보타이 유적이다. 유라시아 초원의 서쪽 드네프르 강 근처의 유적인 데레예프카에서는 세계에서 가장 이른 재갈의 증거가 나온 바 있다. 여기에서는 말을 방목했을 때 썼던 울타리 흔적과 함께 수백 마리의 말뼈가 한데 묻힌 일종의 제사 유적이 발견되었다. 발굴된 말 중에서 아래쪽 어금니가 좌우 각각 한 개씩 인공적으로 빠져 있는 것도 발견되었으니, 목축하던 말 중에서 일부에 재갈을 채워서 탔던 것으로 판명되었다. 하지만 데레예프카 유적은 이전에 소비에트 시절에 조사된 것이어서 그 연대가 애매했다.


또 다른 증거는 카자흐스탄과 러시아의 국경지역에 분포한 기원전 3500년경의 동석기시대 보타이문화의 유적에서 나왔다. 이 문화에서는 말을 대량으로 목축한 흔적이 발견되었는데, 같이 발견된 토기에서는 말젖의 찌꺼기도 나왔다고 한다. 야생으로 달리는 말을 힘들게 잡아서 말 뒷발에 차이는 위험을 감수하면서 말젖을 짤리는 만무할 것이다. 게다가 말뼈 구덩이에서 발견된 말의 배설물을 조사한 결과 장기간 가두어 길렀다는 증거까지 나왔으니 본격적인 말 사육의 증거가 나온 것이다. 보타이는 현재 미국과 러시아, 카자흐스탄의 고고학자들에 의해 연구되고 있는데, 얼마 전 그 발굴 성과가 최고의 과학잡지인 '사이언스(Science)'에 발표됐을 정도니 그 관심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이 된다.


■말, 그 치명적인 유혹


당시 중앙아시아 초원지역의 사람은 다양한 동물을 목축하는 중에 말의 특성에 주목했을 것이다. 비록 지구력은 약하고 거칠어서 다루기는 쉽지 않지만 어떤 동물보다 빠르게 달리는 말은 재빠르게 이동하는 것이 생명인 당시 유목민들에게 유용했을 것이다. 특히나, 빠르게 달리는 말떼를 목축하기 위해서 당시 목동은 말떼 중 한 마리를 탈 것으로 이용했을지 모른다. 재갈이 있다고 해도 자유자재로 말을 타고 다닌다는 것은 쉽지 않았다. 왜냐하면 말의 등뼈는 울퉁불퉁하고 튀어나와서 자칫하면 승마인에게 치명상을 입힐 수 있었다. 야생마를 길들인다는 것은 때로는 자신의 목숨과 바꿀 만한 용기가 필요한 것이었다. 그래서 누구보다 빨리 달리고 더 좋은 목초지로 이동하고자 하는 유목민들에게 말은 치명적인 유혹이었을 것이다. 말을 길들이는 자는 곧 초원에서 승리할 수 있었다. 말이 인간의 동반자로 되는 순간은 바로 인간이 초원을 지배하는 첫 번째 과정이기도 했었다.


말에게 재갈을 채워 길들인 후에 말의 기능은 단순한 운송이 아닌 인간이 서로 죽이는 전쟁 무기로 등장한다. 바로 전차가 나온 것이다. 말 위에 타는 기승용이 아닌 2~3마리의 말을 끌고 뒤에 수레를 붙여서 다녔던 것이다. 말에게 처음으로 재갈을 물린 것은 기원전 30세기, 전차가 등장하는 것은 기원전 25세기였다. 전차가 등장하면서 인간과 말의 역사는 또 다른 전환점을 맞이한다. 바로 인간 사이의 전쟁에 말과 말이 끄는 전차는 가공할 무기로 둔갑한 것이다.


강인욱 부경대 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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