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kookbang.dema.mil.kr/newsWeb/20110831/1/BBSMSTR_000000010227/view.do
<34>당태종의 군부 관리
기사입력 2011.08.31 00:00 최종수정 2013.01.05 07:08
친딸 오랑캐에 시집보내 내부 인종갈등 봉합
불모의 땅 타림분지의 타클라마칸 사막을 넘어가는 대상들. 실크로드를 놓고 당ㆍ돌궐ㆍ회흘ㆍ토번은 근 200년간 전쟁을 했다. 전쟁 자체가 시장을 지향하면 승리가 막대한 이익으로 이어지며 전쟁은 끝이 나지 않았다. 필자제공
유목민의 후예인 내몽골 여인의 머리 복식.
641년 12월 17일 당나라 장군 이세적(李世勣)이 설연타의 주력 가운데 하나를 내몽골 애불개하강(艾不蓋河江)에서 격파했다. 설연타는 3000명이 전사하고 5만 명이 포로가 되는 피해를 보았다. 첫 승리에도 불구하고 당태종은 설연타와 전면전 수행에 자신이 없었다. 천하무적의 군대를 가졌다지만 주변에는 강적이 하나둘이 아니었다.
당시 서돌궐 칸 아사나욕곡설이 아프가니스탄 북부 아나바드에 있는 토화라(吐火羅)를 점령했고, 그의 부하들이 파미르 고원을 넘어 신강성 합밀시의 이주(伊州)를 공격했다. 이어 현재 신강성 신원과 탑성에 위치한 처월(處月)과 처밀(處密) 두 부(部)를 동원해 천산ㆍ신강 탁극손현을 포위했다.
고창(투르판)에 주둔해 있던 당의 장군 곽효각은 서돌궐을 막기 위해 현지인 기병 2000명을 갖고 분주하게 움직여야 했다. 중국 본토에서 온 병력 1000명이 고창 교하성에 주둔하고 있었다. 과거 농사를 짓던 그들이 전투에 직접 나서는 일은 많지 않았다.
본토에서 온 병력들의 구성은 이러했다. 병량을 자급하기 위해 현지에서 농사를 짓는 전졸(田卒), 수로를 보수하고 확장하는 수졸(水卒), 보초를 서는 수졸(戍卒), 봉화나 파발을 맡는 통신ㆍ행정ㆍ의무 병졸 등으로 구성돼 있었다.
침략자들과 싸우는 병력은 주로 현지 돌궐 계통의 유목민들인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제국은 본토에서 세금을 징수해서 그들에게 급료나 대가를 주었다. 하지만 중국에서 온 병졸들은 급료를 받지 못했고, 국가는 그들에게 무기와 장비 그리고 먹을 것을 주지도 않았다. 모두 자신들이 직접 마련해야 했다.
제국의 정상에 있던 태종도 황제 노릇하기가 힘이 들었다. 세상에게 가장 재물이 많은 그의 근심도 돈 때문이었다. 전쟁을 하면 실질적인 전투력이 있는 유목민을 주로 전쟁에 투입해야 한다. 여기에는 엄청난 급료나 대가가 들어간다. 동시에 백성들도 대규모 동원해야 한다. 그렇게 되면 세금의 근원인 그들의 가산이 파탄이 나고 담세력이 줄어든다.
그렇다고 전쟁을 하지 않으면 영토와 백성이 줄어든다. 나아가 주변 국가나 종족들이 당을 얕보고 재물을 뜯어내려 들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엄청난 인력과 재원이 소요되는 전쟁은 정말 필요할 때만 해야 했다.
서돌궐의 팽창으로 실크로드에 대한 지배력이 위협받고 있었다. 첫 전투에 패배한 설연타에게 오히려 상황이 낙관적으로 돌아가고 있었고 승리한 당은 불안했다. 물론 설연타의 주력은 아직 건재한 상태였고, 돌궐의 계필부 등이 당을 이탈해 설연타에 붙으려고 하고 있었다. 당제국의 외곽을 지켜주는 유목민들이 제국을 침공하려는 설연타에게로 돌아서는 것은 칼자루를 빼앗기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당태종은 이를 막기 위해 계필하력을 고향 초원으로 보냈다. 현재 감숙성 무위시에 위치한 계필부였다. 하력의 어머니 고장(姑藏) 부인과 동생 계필사문이 그곳을 다스리고 있었다. 하력이 동생과 주고받은 대화를 ‘자치통감’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설연타가 바야흐로 강성해지자 계필 부락은 모두 그에게 귀부하려 했는데 계필하력이 크게 놀라서 말했다. 주상(태종)의 두터운 은혜가 이와 같은데 어찌해 급하게 반역한단 말인가? 그 무리들(계필부 사람들)이 말했다. 부인(어머니) 도독(동생)이 이미 먼저 저 사람(설연타 칸)에게 갔는데 너는 왜 가지 아니하는가? 계필하력이 말했다. (동생) 계필사문은 부모에게 효도하고 나는 군왕(태종)에게 충성하니 반드시 너를 좇지 않을 것이다.”
하력은 피를 준 어머니와 그 피를 나눈 형제와 길이 달랐다. 이러한 상황이 만들어진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당제국은 팽창하고 있었고 번영의 길로 가고 있었다. 하지만 당태종 주변에 있는 유목 수장들만 당제국 팽창의 혜택을 받았다. 초원 현지에 있는 돌궐 사람들에게는 돌아가는 것이 없었다.
하력은 동포들에 의해 강제로 끌려갔고, 설연타의 이남 칸의 천막궁정 앞에 도착했다. 천막 문이 열리고 이남 칸이 신하들과 처첩들을 대동하고 나왔다. 좌우가 도열한 가운데 자리에 앉았다. 말로만 듣던 하력을 보고 싶었다.
하력은 칸 앞에서 거만하게 다리를 옆으로 벌리고 칼을 뽑았다. 그리고 동쪽을 향해 크게 소리쳤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왼쪽 귀를 잘랐다. 귀에서 선지가 주르륵 흘러 목을 타고 내려가 옷을 적셨다.
‘자치통감’은 그가 자신의 잘려진 왼쪽 귀를 들고 맹세한 말을 이렇게 전한다. “어찌하여 당의 열사가 오랑캐 왕정에서 굴욕을 받는 일이 일어났는가? 하늘과 땅, 해와 달이시여, 바라건대 나의 마음을 알아주시오.”
설연타의 이남 칸이 보기에 가관이었다. ‘우리와 같은 오랑캐 놈이 황제 곁에서 중국 물을 먹더니 야성을 잃고 저렇게 충견이 되다니!’ 이남은 역겨워 봐줄 수가 없었다. “저놈을 죽여라!” 하는 말이 절로 나왔다. 하지만 이남의 처가 간언해 죽이지는 않았다.
하력이 그의 어머니와 동생과 함께 설연타의 궁정으로 향했다는 소문이 장안에 퍼졌다. 조정에도 그가 당태종을 배반했다는 말이 돌았다. 중신회의에서 중신들이 말했다. 계필하력이 설연타에 붙었습니다. 태종은 믿지 않았다.
하지만 좌우에서 계필하력은 융적이라 기운이 같은 설연타에 들어간 것은 마치 물고기가 물을 찾아간 것과 같을 뿐이라고 말했다. 635년에 한번 봉합된 당나라 군부 내부에 인종적 갈등이 또다시 고개를 들었다. 이전부터 중국인 장군들은 계필하력이 돌궐 장군들과 역모를 꾸미고 있다고 끊임없이 당태종에게 일러바치고 있었다.
당 군부에서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돌궐계 장군들이 태종의 판단을 주시하고 있었다. 태종은 무슨 수를 쓰든지 호한(胡漢)의 불신을 또다시 봉합해야 했다. 그것을 실질적으로 가능하게 하려면 돌궐계 장군들의 대표주자인 계필하력에게 더 없는 신뢰를 보내야 했다. 중국인들의 군사력만으로는 제국을 유지할 수가 없었다.
태종이 대답했다. “그렇지 않소. 계필하력의 마음은 쇠나 돌 같아서 반드시 나를 배반하지는 않을 것이오.” 마침 설연타의 궁정에 다녀온 사신이 도착했다. 황제와 모든 신하가 모인 가운데 그는 설연타의 이남 칸 앞에서 벌어진 하력의 충성 맹세 퍼포먼스를 이야기했다. 당태종의 눈에서 닭똥 같은 눈물이 떨어졌다. 그리고 말했다. “계필하력은 내가 말한 대로 이러한 사람이오.”
이제 모든 시선이 당태종에게 집중됐다. 그가 하력을 설연타의 궁정에서 빼 갖고 와 하력을 아낀다는 것을 돌궐인 장군들 앞에서 증명해야 했다. 설연타의 이남 칸은 공짜로 하력을 내 주지 않을 것이다. 칸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태종이 세상에서 가장 아끼는 그 무엇이었다. ‘자치통감’은 이렇게 전한다.
“병부시랑 최돈례에게 명령해 부절을 갖고 설연타에게 알아듣게 타이르게 하고 신흥(新興)공주로 그에게 처로 삼게 하며 글필하력을 보내 달라고 요구하게 했다. 글필하력은 이로 말미암아 돌아올 수가 있었고 우교위대장군으로 삼았다.”
642년 10월 태종은 설연타 이남 칸에게 신흥공주를 시집보내기로 약속했다. 앞서 토번으로 시집간 문성공주는 황실의 종친 가운데 누구의 딸인지도 분명치 않다. 신흥공주는 태종의 친딸이었다. 그는 딸을 야만인에게 던져줄 각오를 하고 부하를 찾아오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돌궐인 장군들은 감명을 받았다.
당 군부 내부의 인종갈등은 다시 봉합됐다. 조직 내의 갈등은 언제나 고질적으로 존재한다. 그것을 해결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무리하게 그것을 뿌리 뽑으려 하다가는 조직 자체가 무너진다. 훌륭한 지도자란 ‘봉합의 명수’를 의미할지도 모른다.
<서영교 중원대 박물관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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