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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자성(太子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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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빈현(新賓縣) 하협하향(下夾河鄕) 태자성촌의 북쪽, 말안장처럼 생긴 산 위에 있다. 동쪽에서 흘러온 북태자하가 성의 북쪽을 지나고, 그 지류인 소협하(小夾河)가 절벽으로 이루어진 성의 동쪽을 지나 북태자하로 들어간다.


산성의 평면은 대략 타원형을 띠고 있다. 동북과 서남쪽의 고지를 양쪽에 두고 중앙부가 움푹 들어가 있는 지세이다. 동쪽의 고지를 중심으로 한 경사지대에 내성이 있고, 그 서쪽은 외성으로 구분된다. 내성의 성벽이 잘 다듬은 쐐기형 성돌을 많이 사용한 반면, 외성의 성벽에서는 장방형 성돌이 많이 보인다. 이로 보아 산 정상부에 군사시설로 내성을 먼저 쌓아 사용하였고, 많은 사람들과 시설물을 수용할 필요가 생김에 따라 외성을 나중에 쌓았던 것으로 이해된다. 고구려의 성곽 발전이 군사방어시설이라는 본래의 목적에 더하여 일상적 거주 기능을 더해가는 방향으로 나아갔음을 알려준다. 한편 안팎으로 쌓아올린 석벽이 주된 축조방식이지만, 남문에서 서남단 구간에서는 토석을 혼축하였다. 또한 경사가 완만한 서북면에는 산비탈에 축대를 쌓고 그 위에 성벽을 세웠다.


성문터는 3곳으로 북문과 남문, 내성문이 있다. 북문은 성 중앙의 움푹 들어간 부분에 세웠고 옹성을 둘렀던 것으로 보인다. 태자성에서 가장 낮은 지대로 출입과 배수의 통로 역할을 하였다. 문 바깥으로는 북태자하가 해자의 역할을 하고 있다. 또한 북문 동편에는 거대한 암반이 북태자하쪽으로 돌출되어 있는데, 이를 다듬어 적대(敵臺)로 삼았다. 서쪽에도 작은 대(臺)를 두어 적대와 짝을 지워 북문을 방어토록 하였다. 동북단과 서남단의 고지에는 봉화대가 시설되어 있었다. 성 안은 완만한 산비탈이 동편과 서편에 넓게 펼쳐져 있다. 기와조각이 많이 발견되어 주요 건물들이 세워져 있었음을 짐작케 한다. 고구려 당시의 양성(梁城)으로 비정하는 견해가 있다.


태자성의 전경(남→북)


태자성 단면도


외성의 남벽

적대(북문 동쪽)


축조상태(내성)

내성에서 바라본 적대


축조상태(외성)

북문 서쪽의 적대


외성 남벽


내성(남서→북동)


내성에서 바라본 외성과 성 안


절벽을 이용한 동남벽


남벽의 축조상태


태자하 건너편에서 바라본 태자성 전경(북→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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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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