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contents.nahf.or.kr/id/NAHF.ku.d_0001_0070_0050_0060 
        http://contents.nahf.or.kr/item/item.do?levelId=ku.d_0001_0070_0050_0060&viewType=l

* 제목이 없어서 달았습니다.



태자성(太子城) 부속시설


태자성 단면도  http://contents.nahf.or.kr/id/NAHF.iskc.d_0005_0040



1. 북


북문(北門)

http://contents.nahf.or.kr/id/NAHF.ku.d_0001_0070_0050_0060_0100


산성 중앙(山城 中央)


남문과 북문, 내성문이 있음. 馮永謙(1997)은 남문과 북문 외에 서문이 있다고 함. 陳大爲(1995)는 남, 북 두 문만을 언급함.


북문은 산성 중앙의 움푹 들어간 부분의 가장자리에 위치함. 안쪽으로 오므라드는 U자형(말안장형) 옹성문 구조를 갖추고 있음. 말안장 바닥에는 길이 25m, 기단부 너비 5m, 정상부 너비 3m, 높이 3m인 크고 높은 석벽이 가로질러 있음. 동쪽의 적대(敵臺)는 남북 길이 18m, 동서 너비 10m, 높이 약 20m임. 서쪽 성 바깥 작은 대지에 작은 수비대(守備臺)를 만들고 적대와 서로 대응함(東潮·田中俊明, 1995). 산성의 교통과 배수에 있어서 주요 통로였으나, 현재는 허물어져서 성문구조를 명확히 파악할 수 없음. 성문 바깥쪽의 북태자하가 천연 해자의 역할을 하고 있음.



배수구(排水口)

http://contents.nahf.or.kr/id/NAHF.ku.d_0001_0070_0050_0060_0050


산성에서 가장 낮은 곳인 북문이 성 전체의 배수구 역할을 하였던 것으로 추정됨.



요망대(瞭望臺)

http://contents.nahf.or.kr/id/NAHF.ku.d_0001_0070_0050_0060_0030


원형 구덩이 직경 2m, 깊이 0.5m(국가문물국, 2009) 


북벽에 돌로 쌓은 복두형(覆頭形)의 요망대가 있음. 정가운데에는 원형의 구덩이가 있음(國家文物局, 2009)



우물(井)

http://contents.nahf.or.kr/id/NAHF.ku.d_0001_0070_0050_0060_0080


직경 1.5m, 깊이 0.5m 


북문 안측 54m 지점에 우물 1개가 있음. 우물 벽은 돌로 제작되었는데, 성 안에 개간이 진행되면서 우물은 메워짐. 고이산성, 오룡산성, 삼송산성, 흑구산성 등과 마찬가지로 주요성문 근처에 위치하고 있음(溫秀榮·張波, 1996).



치(雉)

http://contents.nahf.or.kr/id/NAHF.ku.d_0001_0070_0050_0060_0020


남북 길이 18m, 동서 너비 10m, 높이 20m 


북문 동측에는 치가 있는데, 튀어나온 설형(舌形)의 커다란 바위임. 치 위는 가공을 거쳐서 매우 평평함. 북문 서측 성벽 바깥에는 성벽 바깥을 따라 작은 대지가 있는데, 여기에 소형 방수장대(防守墻臺)를 구축하여 치와 서로 대응하게 함. 장대 북벽은 길이 45m, 동벽 너비 30m, 서벽 너비 20m임. 장대의 남면은 성벽에 잇닿아 있음.




2. 중앙


내성문(內城門)

http://contents.nahf.or.kr/id/NAHF.ku.d_0001_0070_0050_0060_0010


남문과 북문, 내성문이 있음. 馮永謙(1997)은 남문과 북문 외에 서문이 있다고 함. 陳大爲(1995)는 남, 북 두 문만을 언급함.


내성문은 내성벽 가운데 부분에 위치함. 장방형의 옹성문으로, 문지 북단의 성벽을 안쪽으로 90° 꺾은 후 길이 10m의 옹성문 내벽을 축조한 형태임. 남단의 성벽은 문지까지 계속 직진하여 옹성문의 내벽과 평행하게 교차해서 옹성문 외벽을 이루도록 함. 옹성문의 내외벽 사이의 거리는 5m, 문의 너비는 3m임.



거주지(居住地)

http://contents.nahf.or.kr/id/NAHF.ku.d_0001_0070_0050_0060_0070


산성 동, 서, 남 세 면의 산비탈에 거주지 6곳이 있음(國家文物局, 2009; 王禹浪·王宏北, 2007). 그 가운데 한 거주지는 12㎡임. 수키와와 암키와가 많이 발견됨.




3. 동


동쪽 봉우리 봉화대(東峰 烽火臺)

http://contents.nahf.or.kr/id/NAHF.ku.d_0001_0070_0050_0060_0090 


직경 15m, 정상부 직경 2.5m, 높이 4m. 


봉화대는 산성 동, 서 양단 산꼭대기에 각각 하나씩 모두 2개가 있음. 陳大爲(1995)는 요망대가 있었던 곳이라고 기록함. 王禹浪·王宏北(2007)은 태자성 동부와 서부의 산단(山端)에 돈대(墩臺)터가 있고, 그 곳 위에 서면 먼 곳까지 볼 수 있다고 하는데, 봉화대 언급은 없는 것으로 보아 봉화대로 보지 않고, 돈대터로 파악한 것으로 보임.


내성 평면은 반원형인데, 북·동·남 세 면은 모두 절벽이기 때문에 방어상 문제가 없음. 여기 봉화대는 군사상 성 바깥을 조망하고 신호를 보내는 의의는 그리 크지 않음. 즉 바깥이 아닌 주로 성 안을 제어하는 기능을 함. 실제로 내성벽은 방어시설과 결합됨. 일단 적군이 성으로 진입해도 내성은 고수되고, 봉화대는 높은 것에 있어 보조 수비가 될 수 있음. 태자성 두 개의 봉화대는 통일된 방어체계를 이루면서, 독립된 두 개의 작전단위로 기능함. 두 봉화대는 서로 마주하면서 서로 호각지세를 이루고 있음. 만약 적이 북·남 양문을 통해 성으로 들어오면, 동·서 봉화대에서 고지의 이점을 살린 협공을 받을 수 있음. 그 가운데 서쪽 봉화대는 높이 신호를 보내는 기능으로서만이 아닌 산성 서쪽 모서리에 중요한 방어시설, 성 전체를 바라보면서 작전을 지휘하는 장대로서의 기능도 하였음(撫順市博物館, 1992). 태자성에서는 고구려산성에서 보이는 각대, 망대, 장대를 볼 수가 없는데, 모든 성을 총람할 수 있는 두 개의 봉화대가 그것을 대신하고 있는 것임. 한편 태자성 동쪽 봉화대 주위에서는 명대(明代) 벽돌을 볼 수 있고, 서쪽 봉화대 주위에는 돈대가 둘러져 있는데, 이러한 돈대는 명대 요동변장(邊墻)의 봉화대에서는 항상 볼 수 있음. 이 일대는 명 요동(明遼东) 변방의 성벽이 지나는 구역임. 그러므로 두 봉화대는 명대에도 계속 사용됨.


동쪽 봉우리 봉화대는 내성에서 가장 높은 지점에 위치하는데, 가파른 절벽 가장자리에 잇닿아 있음. 판석으로 축조하였고, 봉화대 주위에서 명대의 푸른 벽돌을 볼 수 있음.


성가퀴(女墻)

http://contents.nahf.or.kr/id/NAHF.ku.d_0001_0070_0050_0060_0040




4. 서


서쪽 봉우리 봉화대(西峰 烽火臺)

http://contents.nahf.or.kr/id/NAHF.ku.d_0001_0070_0050_0060_0060


직경 25m, 정상부 직경 4m, 높이 6m 

해발 348.2m(海拔 348.2m)


봉화대는 산성 동, 서 양단 산꼭대기에 각각 하나씩 모두 2개가 있음. 陳大爲(1995)는 요망대가 있었던 곳이라고 기록함. 王禹浪·王宏北(2007)은 태자성 동부와 서부의 산단(山端)에 돈대(墩臺)터가 있고, 그 곳 위에 서면 먼 곳까지 볼 수 있다고 하는데, 봉화대 언급은 없는 것으로 보아 봉화대로 보지 않고 돈대터로 파악한 것으로 보임.


내성 평면은 반원형인데, 북·동·남 세 면은 모두 절벽이기 때문에 방어상 문제가 없음. 여기 봉화대는 군사상 성 바깥을 조망하고 신호를 보내는 의의는 그리 크지 않음. 즉 바깥이 아닌 주로 성 안을 제어하는 기능을 함. 실제로 내성벽은 방어시설과 결합됨. 일단 적군이 성으로 진입해도 내성은 고수되고, 봉화대는 높은 것에 있어 보조수비가 될 수 있음. 태자성 두 개의 봉화대는 통일된 방어체계를 이루면서 독립된 두 개의 작전단위로 기능함. 두 봉화대는 서로 마주하면서 서로 호각지세를 이루고 있음. 만약 적이 북․남 양문을 통해 성으로 들어오면 동·서 봉화대에서 고지의 이점을 살린 협공을 받을 수 있음. 그 가운데 서쪽 봉화대는 높이 신호를 보내는 기능으로서만이 아닌 산성 서쪽 모서리에 중요한 방어시설, 성 전체를 바라보면서 작전을 지휘하는 장대로서의 기능도 하였음(撫順市博物館, 1992). 태자성에서는 고구려산성에서 보이는 각대, 망대, 장대를 볼 수가 없는데, 모든 성을 총람할 수 있는 두 개의 봉화대가 그것을 대신하고 있는 것임. 한편 태자성 동쪽 봉화대 주위에서는 명대(明代) 벽돌을 볼 수 있고, 서쪽 봉화대 주위에는 돈대가 둘러져 있는데, 이러한 돈대는 명대 요동변장(邊墻)의 봉화대에서는 항상 볼 수 있음. 이 일대는 명 요동(明遼东) 변방의 성벽이 지나는 구역임. 그러므로 두 봉화대는 명대에도 계속 사용됨.


서쪽 봉우리 봉화대는 산성에서 가장 높은 지점에 있음. 서벽이 봉화대 아래를 감싸고 있음. 돌과 흙으로 축조하였고, 바깥에는 벽석을 쌓았음. 봉화대 주위에는 너비 2m, 깊이 0.5~1m의 해자(垓字)를 돌렸음.




5. 남


남문(南門)

http://contents.nahf.or.kr/id/NAHF.ku.d_0001_0070_0050_0060_0110


남문과 북문, 내성문이 있음. 馮永謙(1997)은 남문과 북문 외에 서문이 있다고 함. 陳大爲(1995)는 남, 북 두 문만을 언급함.


남문은 남벽 가운데부분에 있음. 너비 2m에 위치는 비교적 은폐된 지점이라고 할 수 있는데, 측문(側門)임.




관련글

태자성 목록  https://tadream.tistory.com/31979




Posted by civ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