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도 손못대는 재벌 ‘권력은 이미 시장에…’
등록 : 2012.02.12 19:42수정 : 2012.02.12 21:59

0.1% 재벌의 나라 
①과도한 부의 집중
김대중 정부 ‘5+3 재벌정책’ 경제상황앞에 무력화
노무현 정부 개혁의지 초반 반짝이다 삼성에 기울어
이명박 정부 출총제 폐지 등 되레 재벌에 가까이


“권력은 이제 시장에 넘어간 것 같다.”

지난 2005년 5월16일 노무현 당시 대통령은 ‘대-중소기업 상생협력 간담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대통령의 발언 취지는 정부도 시장을 공정하게 관리하겠지만, 대기업 스스로 중소기업과 상생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요청이었다. 그러나 이 발언은 참여정부가 대기업들의 영향을 강하게 받고 있다는 고백으로 해석하는 이들이 많았다.

노무현 정부는 출범 초기 재벌개혁에 적극적인 것으로 보였지만, 6개월 만인 2003년 8·15 광복절 경축사에서 국민소득 2만달러 시대를 선언하면서 ‘성장’에 무게중심을 두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노무현 정부 당시 최대 재벌정책 이슈는 공정거래법 개정(출자총액제한제도 강화)과 금융산업구조조정법(금산법) 개정이었다. 금산법 개정은 삼성그룹 지배구조의 핵심을 이루고 있는 삼성카드의 에버랜드 지분 매각과 이어져 있었다. 박영선 당시 열린우리당 의원이 금산법 개정에 가장 적극적이었다. 박 의원은 2005년 재정경제부 국정감사에서 “금산법 정부 개정안에 삼성쪽 주장만 일방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고 한덕수 경제부총리를 정면으로 비판했다. 김현미·문학진 의원 등도 거들었다. 그러나 청와대에서도, 열린우리당 내에서도 박 의원을 지지하는 목소리는 점차 줄어들었다.

노무현 정부 출범 초기 김종인 현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이 경제부총리로 거론되던 때가 있었다. 유종일 현 민주통합당 경제민주화특위 위원장도 경제부처 장을 맡을 것이란 예상이 많았다. 그러나 대표적인 재벌개혁론자였던 두 사람은 참여정부에서 아무런 공직을 맡지 못했다. 두 사람이 배제된 배경에는 ‘보이지 않는 손’이 있었다는 것이 당시 열린우리당 개혁파 의원들의 공통된 증언이었다. 많은 이들이 보이지 않는 손의 정체를 삼성으로 꼽았다.

노무현 정부는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시절부터 삼성경제연구소로부터 많은 정책제안과 보고서를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첫 보고서는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 보고됐던 ‘국정과제와 국가운영에 관한 어젠다’라는 400여쪽 분량의 책자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노무현 정부가 주창한 ‘동북아 경제중심 국가론’과 ‘국민소득 2만달러 시대’라는 의제도 삼성연이 제안한 것이다. 삼성연은 노무현 정부 시절 이광재·서갑원·백원우 등 당시 친노무현계의 핵심들이 모여 있던 ‘의정연구센터’와 자주 경제정책토론회를 열었다. 이런 토론회와 보고서를 통해 자연스럽게 삼성의 논리가 정부와 여당의 핵심들에게 전파될 수 있었다.

역대 정권에서 가장 강력하게 재벌개혁이 추진됐던 것은 김대중 정부 시절이었다. 아이엠에프(IMF) 구제금융이 계기가 됐다. 대기업들의 무절제한 문어발식 확장이 구제금융 사태의 근본원인이라는 공감대가 이뤄진 덕분이었다. 김대중 후보 당선 직후 유종근 대통령 경제고문 등이 아이엠에프 실무진들과 협상하면서 김대중 캠프에서 그려왔던 재벌개혁안이 아이엠에프를 통해 실현되도록 하는 방법 등을 썼다. 김대중 당선자도 직접 대기업 총수들과 만나 의견을 나눴다. 그 결과가 1998년 1월 김대중 당선자와 대기업 총수들이 합의한 △경영투명성 제고 △상호보증채무 해소 △재무구조 개선 △업종 전문화 △경영자 책임강화 등 5개항이다. 김대중 당시 대통령은 1999년 8·15 광복절 경축사에서 △제2금융권 경영지배구조 개선 △순환출자 및 부당내부거래 억제 △변칙상속 차단 등 3개 원칙을 내세웠다. 당시 광복절 경축사를 통해 김 대통령은 ‘재벌의 선단식 경영을 끝내야 한다’고 선언했다. 언론에서는 이를 사실상 ‘재벌해체 선언’이라고 평가했다. 이것이 김대중 정부 재벌정책의 상징인 ‘5+3’ 원칙이었다.

그러나 이런 분위기에서도 5대 과제 가운데 김대중 정부가 끝날 때까지 성공적으로 지켜진 원칙은 상호지급보증 해소와 재무구조 개선 두 가지뿐이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경제상황이 어려워졌다’, ‘새로운 성장동력에 대한 투자가 필요하다’는 등의 재계 건의를 청와대와 여당이 받아들이기 시작하면서 점차 무력화된 탓이다.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를 거치면서 재정경제부 세제실장부터 국세청장, 행정자치부·건설교통부 장관을 지낸 이용섭 민주통합당 정책위의장은 “경제정책에서 중요한 것은 정해진 정책과 원칙은 예외없이 실행돼야 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태희 기자 hermes@hani.co.kr


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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