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ww.culturecontent.com/content/contentView.do?content_id=rp070313840001


불이성

삼국유사 키워드사전


고구려의 두 번째 도성인 국내성(國內城)의 별칭


국내성 서남벽과 치



일반정보


고구려의 두 번째 도성인 국내성(國內城)의 별칭이다. 지금의 함경도로 비정되고 있는 옥저 지역에 있던 불내성(不耐城)과 같은 것으로 보기도 한다



전문정보


고구려의 두 번째 도성(都城)인 국내성(國內城)의 별칭이다.『삼국사기』등 관련 자료에 따르면 고구려는 유리왕 22년인 기원 3년에 도읍을 졸본(卒本)에서 국내성(國內城)으로 옮겼다. 국내성의 위치에 대해서는 한 때 이견이 분분했지만, 현재는 중국의 길림성(吉林省) 집안현(集安縣)에 있는 집안현성(輯安縣城) 또는 통구성(通溝城)이라고 불리었던 지역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삼국유사』에는 “국내성(國內城)을 불이성(不而城)이라고도 한다.(移都國內城 亦云不而城)” 라고 하였으므로 불이성(不而城)이 곧 집안현성임을 알 수 있다.


안정복은『동사강목』 부록 하권 지리지 불내화려고(不耐華麗考)에서 “불이는 또한 불내라고도 부른다(不而亦稱不耐)”고 하였다. 그런데 안정복은 말하는 불내(不耐)는 낙랑군의 동부도위 관할 하에 있던 영동칠현(嶺東七縣)의 치소(治所)였던 불이현(不而縣)과 동일한 것을 지칭하는 것이었다. 후한 광무제(光武帝) 건무(建武) 6년에 동부도위를 없애고 현지의 수장을 현후(縣侯)로 임명했는데, 이 지역에서 활동하던 불내후(不耐侯)가 사서에 등장하고 있으며, 또 『삼국사기』2 신라본기2 유리왕 17년조에도 “화려와 불내 사람이 북쪽 지경을 침범하는(華麗,不耐二縣人 連謀率騎兵犯北境) 기사가 미루어 볼 때 불내가 신라의 북쪽에 위치하고 있었다는 것은 분명하다. 불이현의 존재와 위치는 새로 발견된 「낙랑군 初元4년 목간」에서도 증명된다.(윤용구, 2006)


따라서 『삼국지』권28 관구검전에 나오는 관구검(毌丘儉)이 고구려를 쳐서, 옥저를 천리나 지나 숙신의 남쪽 경계에 이르러 공을 세기고, 환도산과 불내성에 공을 기록하였다(過沃沮千有餘里,至肅慎氏南界,刻石紀功,刊丸都之山,銘不耐之城)”는 기사는 불내성을 어느 곳으로 해석하느냐에 따라 그 의미가 달라진다. 즉 불내성을 국내성을 가리키는 불이성으로 본다면 관구검의 기공비는 환도산성과 국내성에 새긴 것이 되며, 불내성을 옥저에 있던 곳으로 파악한다면 관구검의 기공비는 환도성과 옥저 지역에 있게 되어 이 점은 학자들의 논쟁이 되고 있다.



참고문헌


윤용구, 2006, 「새로 발견된 樂浪木簡-「樂浪郡 初元四年 縣別戶口」통계문서를 중심으로」, 한국고대사 제95회 정기발표회 발표논문.



관련원문 및 해석


第二 琉璃王 [一作累利 又(孺)留 東明子 立壬寅 理三十六年 姓解氏] 癸亥 [移都國內城 亦云不而城]


제2 유리왕 [또는 누리, 유류라고도 한다. 동명의 아들이다. 임인년에 즉위하여 36년간 다스렸다. 성은 해씨이다] 계해 [도읍을 국내성으로 옮겼는데 불이성이라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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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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