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519978.html 

[야! 한국사회] ‘너희도 하지 않았는가’ / 김용민
등록 : 2012.02.20 21:09  수정 : 2012.02.20 21:10  

김용민 시사평론가

전 정권 탓만 하며 궁지에서 벗어나려는
무능하고 무책임한 집단은 심판해야 마땅

이명박의 관용적 문법 중에 ‘너희도 하지 않았는가’가 있다. 상대는 노무현 정부 출신 현 야당 인사들. 밑에서나 떠들 ‘뒷담화’ 수준의 ‘노무현 사람들’ 타박을 이명박은 22일 취임 4년 기자회견에서도 할 모양이다.

물론 집권세력의 이런 시비걸기가 모두 허구는 아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에 있어 투자자-국가 소송제를 포함한 주요 독소조항이 한자 어긋남 없이 참여정부 것 그대로임은 진실이다. 이것이 사법 주권을 상실할 만큼 심각한 문제임을 인지하고, 사려 없이 지지했던 과거를 참회한 그 정권 출신 정치인은 정동영 정도다.

제주 해군기지 문제도 그렇다. 대통령실장을 지냈던 문재인도 ‘첫 단추를 잘못 끼웠다’라고 자인했다. 그러나 강정마을로 결정하기 전, 두 군데 입지 거주 주민의 강력한 반대를 수용했던 ‘자세’만은 노무현이 이명박과 다른 점이다. 기지가 들어설 마을의 주민끼리 두 패로 갈려 반목하고, 무자비한 공권력의 침탈에 신음해도 이 정권의 행태는 용산에서 그랬듯 광포한 밀어붙이기뿐이다.(지금이라도 반대를 수용할 줄 알았던 노무현을, 이명박은 본받을 의향이 없는가.)

사업의 모양만 차용한 다음, 자기들 잇속 챙기기 좋게 틀을 바꿔놓고서 ‘참여정부도 했다’는 식으로 덮어씌우는 정형, 이뿐 아니다. 백미는 ‘4대강 사업도 과거 정부에서 시작했다’는 논리. 선진국형 재해예방 시스템을 갖추려는 치수 계획을 김대중·노무현 정부에서 세차례나 수립한 바 있다는 강변이다. 그러나 과거에도 가는 물 막아 수질 흐리고, 또 부실 구조물로 인한 홍수 위험 높이는 계획이었나. 또한 건설사 배불리는 꼼수였나.

김대중 정부 때 기획됐다던 인천공항 민영화 건은 또 어떤가. 적자 등 부실 징후가 뚜렷한 탓에 매각을 함으로써 정부의 부채 부담을 줄이려 했던 당시와, 해마다 수천억원의 흑자를 내는 알짜 공기업으로 7년 연속 세계 최우수 공항으로 선정될 정도로 경영실적과 서비스가 개선된 지금이 같은가. 케이티엑스 민영화 부분은 더 황당하다. 정부는 참여정부 당시 여당이 추진한 것이라고 주장하는데, 당시 열린우리당이 허용한 것은 국가가 지은 철도를 국가가 운영하되, 민간이 지은 노선은 민영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거짓말인 것이다.

진정 전임 정권의 성과를 ‘계승’할 의도가 있다면, 정치개혁, 경제민주화, 환경생태, 남북관계, 언론자유, 역사인식 같은 중추적인 결과물을 총체적으로 퇴행시킬 리 없다. 삼척동자도 다 안다. 이명박 정부가 ‘참여정부’와 책임을 반분하는 의도가 ‘반대파는 (나는 너희의 과거를 알고 있으니) 입 닥치라’에 있음을. 이를 입증하는 단면은 ‘전 정권 탓’을 노래하고 다닌 또다른 전적이다. 각종 기록을 살펴본 결과, 새누리당이 노무현 정부에 책임을 떠넘긴 사안은 미국산 쇠고기 협상, 사교육비 증가, 고액 대학등록금 문제, 건강보험 민영화, 심지어 일본의 독도 도발 등이다.

이명박 정부는 노무현 없었으면 어떻게 지탱됐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다. 다음 정권이 야권에 넘어갈지 현 여권이 계승할지는 논외로 두자. 그러나 이렇게 남 탓만 하며 궁지에서 벗어나려는 무능하고 무책임한 집단이 더는 국가 운영의 중심에 설 수 없도록 철저히 심판해야 마땅하다. 그렇게 된다면 정치권에 경종이 울리지 않을까. 성수대교, 삼풍백화점 붕괴 등 몇달이 멀다 하고 참사가 연발되던 문민정부 시절, 당시 대통령 김영삼은 군사정부 때 만든 구조물과 관행 때문이라며 책임을 떠넘겼다. 그리고 그의 대에 ‘박정희 유령의 부활’이라는 예기치 못한 정치적 파장을 불러왔다. 그런 의미에서 이런 추론도 가능하다. 요즘 ‘친노’가 뜨는 이유, 다름 아닌 이명박 덕 또는 탓이라는 점.

김용민 시사평론가

 
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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