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ww.ohmynews.com/NWS_Web/Series/series_premium_pg.aspx?CNTN_CD=A0002873265
태양광 조사하는 윤석열 정부, 한국 10년 이상 퇴보한다
[소셜 코리아] 시민 참여 양방향 전력 생산이 세계적 추세... 거꾸로 가는 한국 정부
경제 이민호(soko) 22.10.20 05:25ㅣ최종 업데이트 22.10.20 05:25
한국의 공론장은 다이내믹합니다. 매체도 많고, 의제도 다양하며 논의가 이뤄지는 속도도 빠릅니다. 하지만 많은 논의가 대안 모색 없이 종결됩니다. 소셜 코리아(https://socialkorea.org)는 이런 상황을 바꿔 '대안 담론'을 주류화하고자 합니다. 구체적으로는 ▲근거에 기반한 문제 지적과 분석 ▲문제를 다루는 현 정책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을 거쳐 ▲실현 가능한 정의로운 대안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소셜 코리아는 재단법인 공공상생연대기금이 상생과 연대의 담론을 확산하고자 학계, 시민사회, 노동계를 비롯해 각계각층의 시민들과 함께 만들어가는 열린 플랫폼입니다. 기사에 대한 의견 또는 기고 제안은 social.corea@gmail.com으로 보내주시기 바랍니다.[기자말]
8년 전쯤에 한 공기업 임원의 통역을 맡은 적이 있다. 주한 스위스 대사와 만나는 자리였다. 회의가 끝나고 식사 자리에서 그 임원이 심각하게 물었다.
"우리나라에 지금 필요한 게 뭡니까?"
대사는 대답했다.
"한국은 좀 쉬어야 합니다. 좀 덜 일해야 해요."
더 설명하려던 찰나 임원이 대뜸 한마디 던졌다.
"우리나라는 자원이 없어요. 인적자원이 다입니다. 더 열심히 일해야 해요."
머뭇거리던 나에게 임원이 말했다. "얼른 통역해라!" 대략 통역하면서 나는 스위스 대사의 눈빛을 보았다. 그는 나에게 말했다.
"한국은 지금까지의 성공에 도취하면 안 됩니다. 한 템포 뒤로 물러서서 다음 방향을 보고, 다음 세대가 나아갈 길을 찾아야 합니다."
그렇다. 대한민국은 오랫동안 지난 성공에 도취해 있었다. 선배들의 성공 경험에 모두가 숟가락을 얹고 한 걸음도 앞으로 나아가려고 하지 않았다. 혁신이 멈춘 것이다. 에너지 분야도 예외가 아니다.
▲ 이창양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5월 19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최근 산업부 장관의 발언은 충격이 아닐 수 없다.
"그간의 재생에너지 정책 전반에 있어서도 협동조합에 대한 지나친 우대, 소규모 태양광 편중, 계통 부담 등의 문제들이 있었음을 고려해..."
- 9월 16일 에너지정책 자문위원회 1차회의에서 한 발언
이 발언과 앞으로 정부의 행보가 대한민국의 미래에 미치는 영향을 알고 있다면 산업부 장관은 그 부담을 감당할 수 있을까?
대한민국은 다시 옛 경험대로 가고 있다. 다시 성공해 본 쉬운 길을 가 보자는 것이다. 스스로 발표한 재생에너지 기본계획의 핵심인 '주민 수용성'을 심각하게 해치는 발언들 그리고 '전력 시장의 다원화'가 무엇인지 이해하지 못한 듯한 행동이 반복된다. 정부의 계획과 통제가 가능한 발전원을 늘리고, 그에 부응하는 전력 시장을 구상하고, 정부만이 정보를 독점하고, 이해관계자들을 설득하지 않는 방법을 취하고 있다.
너무 극단적인가? 그렇지 않다. 선진국의 시장은 협동조합을 우대하고, 소규모 태양광을 장려하며, 계통 업그레이드에 집중하며, 계획과 통제를 민간에 개방하고, 정보를 공개하며, 이해 관계자의 민주적 의사소통을 강조하고 있다. 정부는 그 반대로 행동한다. 무엇인가 막혀있다.
쉬운 길로 가려는 에너지 정책
미국 이야기를 잠시 해보자. 여러분은 기후위기를 경고하던 2006년도 앨 고어 전 부통령의 다큐멘터리 <불편한 진실>을 기억할 것이다. 비록 대통령에 당선되지는 못했지만 그의 기후 변화에 대한 경고는 부시 대통령에게도 영향을 미쳤고, 더 나아가 오바마 대통령이 에너지 정책을 펴는 데 큰 밑거름이 됐다.
2013년 오바마는 대통령령으로 향후 미국 에너지 정책의 기반이 되는 대규모 에너지 정책 검토 보고서 <4개년 정책 백서>(Quadrennial Energy Review)를 집필하도록 지시한다. 비록 결과물은 오바마 정권 마지막에 발표했지만 에너지 분야 전문가를 총동원해서 작성했고 흔들릴 수 없는 에너지 정책의 기초를 제시하고 있다.
▲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 8월 16일(현지시간) 워싱턴DC 백악관에서 기후변화 대응과 의료보장 확충 등을 골자로 한 '인플레이션 감축법'에 서명하고 있다. 왼쪽부터 조 맨친 상원의원, 척 슈머 상원의원, 제임스 클리번 하원의원, 프랭크 펄론 하원의원, 캐시 캐스터 하원의원. ⓒ 연합뉴스
트럼프 정부가 112개에 달하는 환경 관련 규칙으로 오바마 시대 정책을 변경했어도 모든 주는 이미 기존 에너지 정책의 흐름을 따라 움직이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재생 발전원의 가격이 훨씬 빠르게 떨어져서 석탄 발전소는 예정대로 문을 닫고 있다.
바이든 시대에 미국은 최종적으로 역사적인 에너지 법안인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Inflation Reduction Act)을 발표했다. 오바마 백서의 내용은 이 법안에 고스란히 반영됐다.
▲ 새롭게 떠오르는 21세기 전기 양방향 공급 흐름 새롭게 부상하는 21세기 전력망은 유연성 향상, 시스템 효율성 향상, 에너지 소비 감소, 소비자 옵션 및 가치 증가를 가능하게 하는 반응성 자원, 스토리지, 마이크로 그리드 및 기타 기술을 통합할 것이다. ⓒ Quadrennial Energy Review
오바마 백서의 핵심 내용은 무엇일까? 먼저 해당 백서는 전력 분야의 급변하는 현황을 다음과 같이 정리한다.
1. 사물인터넷(IoT)과 디지털화의 중요성 증대
2. 생산성 증가와 부하 증가(전력 수요) 감소
3. 전력 시스템의 탈 탄소화
4. 국가 안보의 취약성 증가
5. 백업 발전원의 중요성 증대(정전 대응 자원의 중요성)
6. IT와 전력 시스템 간 연계성 증대
7. 스마트 그리드(그리드 정보통신의 혁신을 통한 비용 감소와 망 신뢰도 증대)
8. 중앙 집중적 발전원에서 분산화되고 변동성 있는 발전원으로 변경
9. 전력 시스템의 노후화
10. 스마트 그리드와 디지털화를 통해 양방향 전력 흐름 통제(소비자 측 변수의 관리)
11. 소비자들의 전력 시장 참여(부하로서 소비자에서 그리드 참여자로 신분 변화)
12. 새로운 전력 분야 흐름에 맞는 숙련노동자 필요
13. 극한 날씨에 대응할 수 있는 전력망 관리 필요
소비자도 전력을 생산하고 전력의 수요를 관리할 수 있는 스마트 그리드 시대가 되면서, 전력 관리자와 소비자 양쪽에서 그리드를 관리하는 양방향 신뢰도 관리가 전력망 관리의 핵심 과제가 되고 있다. 이에 따라 백서는 76가지 정책 제안을 하는데 이 내용이 바이든 정부의 인플레이션 감축법에 반영되어 새로운 에너지 정책 방향의 중심으로 떠오르고 있다.
이번에 바이든은 전기차를 미국에서 생산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왜 그럴까? 당연히 미국 내 제조업을 살리는 제스처는 정치적으로 중요한 수사일 수 있다. 그러나 좀 더 살펴보면 전기차는 미국의 에너지 혁신과 안보의 중심에 서 있다.
오전에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 서 있는 전기차를 핸드폰으로 간단히 조정하여 차 배터리를 발전소로 등록할 수 있다면 어떨지 상상해 보라. 위 그림에서 보듯 바이든의 에너지 정책에는 이와 같은 용도로 쓰이는 교통수단이 중요한 부분이다.
알뜰 전기회사 가입해 요금 절약
더 나아가 에너지 수요를 핸드폰에서 점검하고, 가장 수요가 적을 때 빨래도 하고 식기 세척도 해서 전기 요금이 확 줄어든다면 어떨까? 알뜰폰에 가입해서 핸드폰 가격을 확 줄이는 것처럼 지역 알뜰 전기회사에 가입해서 전기요금을 줄일 수 있다면 어떨까?
내가 사는 시가 가장 싼 알뜰 전력회사를 선택해서 내가 저렴한 전기요금을 낼 수 있다면 어떨까? 우리 아파트 옥상과 유휴 공간에 설치된 태양광 발전기로 전기를 팔아 수익을 낸다면? 심지어 전력회사가 전기차를 살 수 있도록 지원해 준다면?
실제로 이런 서비스를 하고 있는 회사가 있다. 바로 영국의 옥토퍼스 에너지이다. 아직 시작 단계인데도 영국에서 5위 전력회사로 성장했다. 앨 고어 전 부통령의 투자회사는 이 회사에 6억 달러를 투자했다.
▲ 미국 전력 시장에서 협동조합의 역할은 무시 못 할 수준에 올라섰다. 미국 배전 회사의 12%는 협동조합으로 운영된다. ⓒ 셔터스톡
한편 미국 전력 시장에서 협동조합의 역할은 무시 못 할 수준에 올라섰다. 미국 배전 회사의 12%는 협동조합으로 운영된다. 사기업이 진출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공공기관마저도 배전을 시행하지 않는 지역을 이들이 커버한다.
왠지 협동조합은 미국과 어울려 보이지 않는 단어지만 의외로 이들은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1930년대 본격적으로 전기가 보급되면서 연방정부 지원 아래 소외된 지역 주민들은 스스로 힘을 합쳐 발전소를 세우고 전력을 공급했다. 지금도 이 협동조합들은 수익을 추구하지 않고, 도매시장의 전력 가격에 약간의 수수료만 받고 있다. 뿐만 아니라 지역 사회에 뿌리 내리고 지역민의 요구사항을 반영해 회사를 운영한다.
▲ 출처 : 미국 EIA ⓒ EIA
시민사회의 참여도 활발하다. 필자는 최근까지 미국 일리노이주에 거주했다. 한 번은 전력 가격이 정해지는 과정이 궁금해서 '시민 유틸리티 위원회'라는 시민단체의 이메일 뉴스를 받아보게 됐다.
미국의 많은 주는 매년 발전회사가 다음 해 전력 가격을 신청하고 주 정부가 가격의 합리성을 검증한다. 시민 유틸리티 위원회는 이 때 공공에 가감없이 공개되는 전력가격 자료를 가지고 연방 비영리 연구기관과 협업해서 정말 독하게 가격을 검증한다.
최근 시민 유틸리티 위원회는 배전 회사들이 스마트 그리드 구축 가격을 과다하게 계상해왔다는 이유로 새로운 법안을 제안하고 입법을 지원했다. 또한 가스 가격에 붙은 '특별 인프라 지원금' 항목을 제거하라는 의견서 등을 주정부에 제출하기도 했다. 주정부는 이들이 공식 법률문서를 통해 소장을 제출할 경우 공공 유틸리티 위원회를 통해 재판을 진행하고 실제로 에너지 회사에 요금 환급을 명령한다.
특히 신규 재생 발전원에서 협동조합을 비롯한 시민 참여형 사업은 아래 그래프와 같이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미국은 1978년부터 연방법으로 80MW 이하의 소규모 재생에너지를 배전회사가 의무적으로 사주는 제도를 시행했다. 대부분 배전회사가 주정부 재생 구매 의무를 채우기에 급급했지만 이 때부터 소규모 태양광 개발의 기초가 닦인 것도 사실이다.
최근 태양광의 경제성이 확인된 시점부터는 대학, 공공기관 등이 지붕이나 부지를 대고 지역 주민이 참여하는 등의 새로운 투자 모델들이 급증했다. 특히, 이번 에너지 법안으로 발전설비의 30%를 줄이는 세제 지원이 계속되면서 이런 모델이 각광받고 있다. 이에 따라 컨설팅 회사인 우드 맥켄지는 아래 표와 같이 시민 참여형 발전 사업 전망을 상향 조정했다.
▲ IRA로 인한 미국 커뮤니티 재생 태양광 설치 용량 전망 변경 ⓒ Wood Mackenzie
태양광 발전 조사하면 퇴보
마지막으로 한 가지 짚고 넘어갈 것은 이 글은 민영화를 주장하는 내용이 아니라는 것이다. 위 서비스는 모두 민영화나 배전 시장 개방 없이도 이루어질 수 있는 것들이다.
다만 문제는 한전이 이러한 혁신을 이뤄낼 수 있느냐에 있다. 정부가 새로운 에너지 시대의 혁신을 주도할 수 있을까의 문제다. 정부가 새로운 시대의 흐름을 이해하고, 국민에게 에너지 시장 변화의 지혜를 묻느냐의 문제다. 에너지 시장의 정보를 공개하고, 시장의 변화에 맞춰 투명성을 키워야 한다. 한전의 적자를 정부가 키웠고 이것을 회복시키려면 모두의 지혜가 필요하다고 고백해야 한다.
많아진 태양광 사업자들의 의견을 듣고 그들을 정책 결정에 어떻게 참여하게 하는지 고민해야 한다. 외국의 시민 주도 태양광 및 풍력발전 개발 사례를 연구하고, 협동조합이든 개인사업자든 전력 시장 참여의 문을 열어야 한다. 피할 수 없는 양방향 전력 생산 시대에 정부는 시장 참여자들이 어떻게 공정한 무대에서 경쟁할 수 있게 할지 고민해야 한다. 경쟁 배전시장이든, 민영화든 아니면 지금대로 가든 근본적인 방향을 잃은 상태에서는 실패할 수밖에 없다.
가장 큰 문제는 지금껏 어떤 정부도 에너지 정책을 설명하고 지속적으로 설득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문 정부가 조기 폐쇄한 '월성 원전' 손실비 7277억… 국민 세금으로 메꾼다", "태양광 사업자-설치업자 짜고 불법대출… 윤, 이권 카르텔 개탄"과 같은 의미 없는 정보와 정치놀이는 여전히 쉬운 선택지이지만 혁신은 없다.
앞으로 전국 태양광 사업을 조사하기 시작하면 우리나라 태양광 발전은 10년, 아니 그 이상 퇴보할 것이다. 어느 시골 어르신들이 나쁜 태양광을 허락할 것이며, 어떤 은행이 재생에너지 발전에 돈을 빌려주려 하겠는가?
스마트 그리드는 재생 발전원이 느는 만큼 발달하게 되는데, 우리는 얼마나 많은 시간을 잃어버릴 것인가? 혁신적인 전력 서비스 하나 없이 재생 목표도 달성하지 못하고 엑스포를 개최할 수 있을까? 슬프게도 에너지 논쟁이 휩쓸고 지나가는 동안 혁신은 어디에서도 시작될 수 없다.
▲ 이민호 / 미국변호사 ⓒ 이민호
필자 소개 : 이 글을 쓴 이민호는 전 세계 발전 사업 개발 현장을 두루 경험한 미국 변호사입니다. 미국, 칠레, 요르단 등지에서 가스복합화력부터 풍력 및 태양광, 수소 연료전지, 폐기물 자원화 (WTE) 사업까지 다양한 프로젝트 파이낸싱 사업 실무를 수행했습니다. 특히 최근 3년간 미국 현지에서 사업을 진행한 경험을 토대로 이 글을 썼습니다. 현재 전 세계 에너지 시장의 급격한 전환에 관심을 가지고 있고, 관련하여 다양한 글을 쓰고 있습니다. (블로그: https://blog.naver.com/maliky )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소셜 코리아>(https://socialkorea.org )에도 게재됐습니다. <소셜 코리아> 연재글과 다양한 소식을 매주 받아보시려면 뉴스레터를 신청해주세요. 구독신청 : https://socialkorea.stibee.com/subscri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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