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s://www.nocutnews.co.kr/news/5848377


'압사 매뉴얼' 충분하다…재난관리시스템 미작동, 정부 책임

CBS노컷뉴스 박희영 기자 2022-11-14 05:55 


사고 때마다 매뉴얼 업데이트, 이미 충분…지휘부 결정 따라 적용 달라

참사 이후 매뉴얼 만든다는데 현장서 적용 실효성 의문

재난안전법, 국가의 재난 대응 책무 82조로 세세히 규정

'주최자 없는 행사' 프레임…정부 책임 면피로 작동


11일 오후 서울 용산구 핼러윈 참사 현장에서 경찰 관계자들이 폴리스 라인을 해제하고 있다. 류영주 기자

11일 오후 서울 용산구 핼러윈 참사 현장에서 경찰 관계자들이 폴리스 라인을 해제하고 있다. 류영주 기자


17년 전 처음 만들어진 '압사 사고' 관련 안전 매뉴얼은 사고를 겪을 때마다 개정돼왔지만, 이번 '핼러윈 참사'를 막지 못했다. 참사 이후 시민 안전을 책임져야 할 관계 당국은 '주최자 없는 행사는 관리할 법적 의무도 매뉴얼도 없다'는 해명을 내놨다. 하지만 이는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재난관리 책무를 규정하는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재난안전법)'을 정면으로 부인하는 발언이란 비판이 나온다.


13일 CBS노컷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10만여 명의 인파가 몰릴 것으로 예상됐던 핼러윈에 대응해 적용할 안전 매뉴얼은 이미 있었다. 2005년 10월 경북 상주시민운동장에서 열린 공연에 입장하던 시민 11명이 압사하고 162명이 다친 사고를 계기로 압사 사고 대책이 논의되기 시작했다.


윤희근 경찰청장이 핼러윈 참사 희생자들에 대한 묵념을 하고 있다. 류영주 기자

윤희근 경찰청장이 핼러윈 참사 희생자들에 대한 묵념을 하고 있다. 류영주 기자


경찰청은 당해 '수익성 행사 관리 매뉴얼'을 만들었다. 이듬해 '혼잡경비 실무 매뉴얼'로 개정되면서 안전관리 대상을 민간이 주최하는 행사뿐 아니라 군중이 모이는 각종 축제로 확대했다. 소방방재청도 2006년 '공연·행사장 안전 매뉴얼'을 발간했고, 2021년 행정안전부가 이를 보완해 '지역축제장 안전관리 매뉴얼'을 내놨다.


2014년 경찰청은 '혼잡경비 실무 매뉴얼'을 다시 '다중운집 행사 안전관리 매뉴얼'로 수정·보완했다. 이때 '다중운집 행사'를 "미조직된 다수의 군중이 모일 것으로 예상되는 △축제 △공연 △체육경기·행사 등을 의미한다"고 정의하는 내용이 담겼다. 또 "정부·민간, 옥내·옥외, 국내·국제, 수익·공익성 여부 불문"이라는 설명을 덧붙였다.


해당 매뉴얼은 "공연·축제·체육경기 등 다중운집 행사장은 대규모 인파 운집에 따른 혼잡 상황이 대형 안전사고로 이어질 개연성이 높은 현장"이라고 강조하며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경찰은 당장 눈앞에 보이지는 않지만 행사에 내재돼 있는 위험성을 사전 판단하고, 필요시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등 행사 안전 확보를 위해 힘써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월드컵 거리응원' 등이 수익성 판단 자체가 곤란한 경우로 언급되며, 수익성 행사라도 위험요소가 높으면 경찰 개입의무가 발생한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또 경찰 인력·장비가 한정된 상황에서 경찰력 배치 외에도 △행정지도 △경고·설득 △지역 안전관리기구 참여 등 행사 사전단계부터 위험 감축 활동을 적극적으로 해야 한다고 돼 있다.


용산경찰서는 2017년부터 2021년까지 다중 인파 안전사고 대책을 포함한 '핼러윈 치안대책'을 세운 바 있다. 특히 2020년 대책에선 '인구 밀집으로 인한 압사 및 추락 등 안전사고 상황 대비'를 위해 폴리스라인을 설치하고 현장 질서를 유지한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그러나 올해 대책에선 압사 관련 지침이 빠졌다.



경찰청은 '핼러윈 참사' 후속 조치로 다중 밀집 인파사고 예방 등을 논의하기 위한 '인파 관리 대책 태스크포스(TF)'를 만들고 지난 9일 1차 회의를 열었다. 그러나 이미 있는 매뉴얼을 적용하지 못하고 사건 발생 때마다 TF를 만들어 실효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


전문가들은 매뉴얼과 주최자 유무는 근본적인 문제가 아니라고 입을 모았다. 이미 마련된 재난관리시스템이 현장에서 제대로 작동할 방안을 고민하는 게 우선이라는 것이다.


문현철 숭실대 재난안전관리학과 교수는 "우리나라 재난관리시스템은 2003년 대구 지하철 참사에 대한 뼈아픈 반성을 통해 재설계됐다"며 "이미 구축된 재난관리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했다면 이렇게 큰 피해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란 점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재난안전법 4조는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재난이나 그 밖의 각종 사고로부터 국민의 생명·신체 및 재산을 보호할 책무를 진다고 명시한다. 재난이나 그 밖의 각종 사고를 예방하고 피해를 줄이기 위하여 노력해야 한다. 또 발생한 피해를 신속히 대응·복구하기 위한 계획을 수립·시행해야 한다고 기술돼있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는 "재난관리 당국이 상황판단을 안이하게 했다"고 꼬집으며 "(주최자 없는 축제 관련) 규정이 없어도 근거법(재난안전법)상 조치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경찰 지휘부 판단의 우선순위가 집회시위 관리에 있고 다중밀집 인파 관리는 뒤로 밀린 현실과 용산 대통령실 경호경비, 집회시위 관리, 마약과의 전쟁 등 용산서 업무 과부하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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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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