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s://www.hani.co.kr/arti/society/media/1067627.html
김건희 여사 이 사진, ‘빈곤 포르노’와 무엇이 다른가
등록 :2022-11-17 07:00 수정 :2022-11-18 00:29 최성진 기자
KCOC ‘아동 권리 보호를 위한 미디어 가이드라인’
아동을 무기력한 수혜자 아닌 능동적 주체로 묘사해야
김건희 여사는 지난 12일 캄보디아 프놈펜에 있는 14살 선천성 심장질환 소년의 집을 찾아가 회복을 빌었다. 대통령실 제공
윤석열 대통령의 동남아 순방에 동행한 김건희 여사의 캄보디아 현지 의료 취약계층 방문 사진을 두고 논란이 일고 있다. 장경태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이 김 여사의 행보를 가리켜 “빈곤 포르노 화보 촬영”이라고 비판하자, 여당은 “빈곤 포르노 표현 자체가 인격 모욕적이고 반여성적”(주호영 원내대표)이라며 반발했다. 여당은 더 나아가 16일 오후 장 최고위원을 국회 윤리위원회에 제소하는 등 논란을 키우고 있다. 이번 논란의 주요 맥락과 핵심 쟁점을 하나하나 살펴봤다.
‘미담’이 될 수 있는 행보였나
먼저 문제가 된 장 최고위원의 발언이다. 그는 지난 14일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회 회의에서 한국-아세안 정상회의가 열린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정상 배우자 프로그램을 건너뛰고 별도의 비공개 일정을 진행한 김건희 여사의 행보에 대해 이렇게 비판했다.
이번에도 여지없이 외교 참사가 발생했습니다. 김건희 여사의 빈곤 포르노 화보 촬영이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캄보디아는 동아시아 정상회의를 개최하며 국가 이미지 제고를 위해 공을 들이고 있습니다. 이에 세계 정상의 배우자들에게도 세계적 명소, 앙코르와트 방문을 요청하였습니다. 하지만 김건희 여사는 개최국의 요청에도 불구하고 공식 일정을 취소하고 프놈펜의 선천성 심장질환을 앓는 소년의 집에 방문해 사진 촬영을 하였습니다. 외교 행사 개최국의 공식 요청을 거절한 것도 외교적 결례이고, 의료취약 계층을 방문해 홍보 수단으로 삼은 것은 더욱 실례입니다.
앞서 김건희 여사는 순방 첫날인 지난 11일 한국인 의사 김우정 원장이 운영하는 캄보디아 프놈펜의 헤브론 의료원과 앙두엉 병원을 찾아 환자를 만나고 시설을 둘러봤다. 12일에는 프놈펜에서 선천성 심장질환을 앓고 있는 14살 소년의 집을 직접 찾아가 “잘 이겨낼 수 있지? 건강해져서 한국에서 만나자”며 회복을 빌었다. 전날 헤브론 의료원에서 만나려고 했던 소년이 몸이 안 좋아 못 왔다는 소식을 듣고 정상 배우자들의 앙코르와트 방문 프로그램에 참석하는 대신 개별 일정을 비공개로 소화한 것이다.
캄보디아 정부가 세계 정상 배우자의 앙코르와트 방문 프로그램을 기획한 배경을 헤아리기는 어렵지 않다. 캄보디아에서 관광 산업은 경제를 지탱하는 4대 핵심 산업 중 하나로 통한다. 2019년에는 외국인 관광객의 지출이 국민총생산(GNP)의 20%에 육박하기도 했다. 하지만 코로나19의 여파로 2019년 661만명에 이르던 외국인 관광객 규모는 2020년 130만명, 2021년 19만6천명 수준으로 급감했다.(캄보디아 일간 <크메르 타임스> 6월7일치) 올해 들어 지난 3월 방문비자 발급을 다시 시작하는 등 관광객 유치에 적극 나서고 있는 캄보디아로서는 이번 국제회의가 자국 문화유산을 알릴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몇몇 국내 언론은 마치 김 여사가 ‘관광 일정’을 포기하고 어려운 이를 찾아 봉사활동을 다녀온 것처럼 이를 ‘미담’의 틀에 담아 전했으나, 캄보디아 정부가 정상회의 개최 기간에 전세계에 보여주고자 한 곳과 그렇지 않은 곳이 과연 어디였을지 따져 볼 필요가 있다. 장 최고위원의 ‘외교적 결례’라는 지적이 막연한 흠집 내기로만 다가오지는 않는다.
김건희 여사는 지난 12일 캄보디아 프놈펜에 있는 14살 선천성 심장질환 소년의 집을 찾아가 안으며 회복을 빌었다. 대통령실 제공
국제개발협력 청년 활동가들의 분노
김 여사가 비공개로 진행한 12일 일정과 관련해 대통령실이 언론에 제공한 사진과 영상도 평가의 대상이 되는 것이 마땅하다. 여기서 중요하게 따져봐야 할 지점은 사진과 영상에 14살 심장질환을 앓는 소년이 주인공으로 등장했다는 사실이다. 장 최고위원이 이를 “빈곤 포르노 화보 촬영”이라고 비판한 맥락도 사진 속 주인공이 14살 소년 환자였다는 점과 무관하지 않다.
좁은 의미의 ‘빈곤 포르노’(Poverty Porn)는 ‘빈곤을 자극적으로 묘사하여 사람들에게 동정심을 불러일으키는 사진이나 영상’을 가리킨다. “고통받는 육체가 찍힌 사진을 보려는 욕망은 나체가 찍힌 사진을 보려는 욕망만큼이나 격렬한 것”(<타인의 고통>, 수전 손택)이라는 비유는 빈곤 포르노라는 용어가 고발하고자 하는 인간의 어두운 면을 잘 설명해주고 있다.
빈곤 포르노는 주로 국내외 구호단체가 모금·후원을 이끌어내거나 홍보 효과를 얻고자 할 때 활용한다. 물론 사회적 약자의 불행한 처지를 프레임에 담아 전함으로써 목적을 달성하는 모든 시각물이 빈곤 포르노로 간주되지는 않는다. 더 중요한 것은 이를 기록으로 남겨 알리고자 하는 이의 의도와 태도다. ‘빈곤 포르노냐 아니냐’가 늘 격렬한 논쟁의 대상일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각종 미디어와 구호단체의 빈곤 포르노 논란이 끊이지 않자 국제개발협력민간협의회(KCOC)는 몇해 전 ‘아동 권리 보호를 위한 미디어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바 있다. 여기에는 ‘신문·방송 등 언론 매체가 개발도상국의 아동과 관련된 내용을 보도할 때 보도에 관계된 모든 사람들이 아동 권리를 침해하지 않기 위해 지켜야 할 원칙’이 담겨 있다. 국제개발협력민간협의회는 국제 구호개발과 인도적 지원 활동을 하는 140여개 엔지오(NGO) 단체의 연합체다.
국제개발협력민간협의회(KCOC)가 제안하고 있는 ‘아동 권리 보호를 위한 미디어 가이드라인’의 일부.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심장질환을 앓는 14살 소년을 찾아가 함께 사진을 찍은 김 여사의 태도나 그 모습을 촬영해 공개한 대통령실의 의도까지 넘겨짚어 굳이 ‘빈곤 포르노’라는 등급을 매길 필요까지는 없다 할지라도, 적어도 김 여사와 대통령실의 행위가 이 가이드라인을 충족하고 있는지는 판단할 수 있다.
이 가이드라인에서 가장 중요하게 강조하는 대목은 ‘아동 및 보호자에 대한 능동적 묘사’다. 아동과 보호자를 타인의 지원만 바라는 무기력한 수혜자가 아니라 삶의 조건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는 능동적 주체로 묘사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동의 사생활 보호’의 원칙도 중요하게 취급된다. 단순히 촬영 동의를 구해야 한다는 수준이 아니라 아동에게 촬영 취지를 충분히 설명했는지, 사진 사용의 위험성을 아동과 보호자에게 사전에 알렸는지, 무리한 재촬영이 없었는지 등까지 세세히 체크해야 한다.
특히 김 여사가 만난 ‘빈곤·질병 상황의 아동’과 관련한 촬영 및 보도 가이드을 보면 ‘질병에 대한 현상만 다루기보다는 원인과 치료 방법도 함께 명시’할 것과 ‘굶주리고 병든 아동의 이미지를 이용해 동정심을 불러일으키는 방식은 탈피’할 것, ‘감정적인 반응을 이끌어내기 위해 더 극심한 상황을 연출하지 말 것’ 등을 권고하고 있다. 역시 개발도상국 아동과 가족이 선진국의 원조에만 수동적으로 의지하는 듯한 인상을 심어주지 말라는 취지다.
아동 권리 보호를 위한 미디어 가이드라인을 비교적 길게 소개한 이유는 대통령실이 공개한 김 여사의 사진은 대체로 이 가이드라인의 권고 내용과 충돌하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먼저 대통령실이 공개한 사진 중 하나는 김 여사가 ‘굳이’ 어두운 표정의 14살 소년을 안고 있는 모습인데, <와이티엔>(YTN) ‘돌발영상’이 보도한 영상을 보면 이 소년은 촬영하는 동안 비교적 밝은 표정으로 불편함 없이 앉아 있는 모습으로 등장한다. 오히려 사진에 찍힌 ‘어두운 표정의 14살 소년을 안고 있는 김 여사의 모습’이 훨씬 불편하고 부자연스러워 보인다.
무엇보다 ‘건강한 성인이 병든 소년을 안고 있는’ 구도의 사진은 위 가이드라인에서 소개한 ‘부적절한 사례’와 주인공만 다를 뿐 큰 차이가 없다.
국제개발협력민간협의회(KCOC)의 ‘아동 권리 보호를 위한 미디어 가이드라인’에 소개된 부적절한 이미지 사용의 사례.
또 김 여사는 앞서 현지 병원에서 병상에 앉은 환아와 주먹 악수를 나눌 때도 최초 촬영분의 시선 처리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환아에게 직접 손가락으로 카메라 방향을 바라볼 것을 제안한 뒤 다시 악수 나누는 모습을 연출했다. 굳이 정면 사진을 요구하며 두번씩이나 인사를 나누는 김 여사의 모습은 부득이 아동의 사진을 쓰더라도 사생활 보호를 위해 얼굴을 모자이크 처리하거나 정면보다 옆모습, 혹은 대역 사진으로 이를 대체하고자 하는 최근 흐름과는 사뭇 달랐다.
<와이티엔>(YTN) ‘돌발영상’ 화면 갈무리
<와이티엔>(YTN) ‘돌발영상’ 화면 갈무리
끝으로 이 단체의 가이드라인에서는 ‘촬영으로 인한 사후 피해 예방’ 원칙으로 “아동을 대상으로 한 보도의 정치적·사회적·문화적 파급 영향을 신중히 고려하고 부정적인 영향을 사전에 예방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이미 국내에서는 김 여사의 의료취약 계층 방문 사진을 두고 정치·사회적 논란이 번진 상황이다. 그 피해는 다른 누구도 아닌 프놈펜에 있는 14살 소년에게 가장 크게 돌아갈 것으로 우려된다.
이와 관련해 국제개발협력 청년 활동가 커뮤니티인 ‘공적인사적모임’은 15일부터 온라인 플랫폼 캠페인즈에서 ‘김건희 여사와 대통령실의 빈곤 포르노를 규탄합니다’ 제목으로 서명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다. 17일 기준 약 3천명이 서명한 상태다.
이 단체는 규탄문에서 “빈곤 문제 해결의 전후 과정도 없이 심장질환 아동의 가정에 불쑥 찾아가 취한 김건희 여사와 대통령실의 행동 일체를 정권의 위기를 타개하기 위한 ‘빈곤 포르노’로 규정하고 규탄한다”며 “대통령실이 공개한 ‘마스크를 벗고 환아의 가구에 방문하고, 영부인 자신이 사진의 주 피사체로서 14살이나 된 청소년을 마치 갓난아기 끌어안듯 한 부자연스러운 자세’의 사진은 가난의 맥락이 부재한 채 어둡고 비극적인 인상을 연출했다”고 비판했다.
이어 “‘다행스럽게도 아동의 사연이 알려진 뒤 국내의 후원 문의가 쇄도’하면서 김 여사 등은 ‘마침내 생명의 길이 열렸다며 안도했다’는 대통령실 부대변인의 서면 브리핑은 가난을 왜곡해 묘사하여 물신주의를 자극하고 외부의 구원자만이 현지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착각을 일으키고 있다”며 “이번 김건희 여사의 환아 가구 방문은 빈곤 포르노라 판단할 수 있는 모든 요소를 갖추고 있다”고 짚었다.
이들은 “김건희 여사와 대통령실이 이번 캄보디아 환아 가구 방문에서 아동과 가족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미디어 가이드라인을 살피는 등의 사전 조치를 했는지 묻고 싶다”며 “그리고 누구도 소외되지 않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두 노 함(Do No Harm·해는 끼치지 말 것)’ 원칙을 지키며 국내와 세계 각지에서 열과 성을 다하고 있는 국제개발협력 활동가의 노력을 생각해본 적 있는지도 묻고 싶다”고 덧붙였다.
최성진 기자 cs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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