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대법을 시행하다 ( 194년 10월(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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冬十月, 王畋于質陽, 路見坐而哭者. 問, “何以哭爲.” 對曰, “臣貧窮, 常以傭力養母, 今歳不登, 無所傭作, 不能得升斗之食, 是以哭耳.” 王曰, “嗟乎. 孤爲民父母, 使民至於此極, 孤之罪也.” 給衣食以存撫之. 仍命内外所司, 愽問鰥寡孤獨老病貧乏不能自存者, 救恤之. 命有司, 每年自春三月, 至秋七月, 出官糓, 以百姓家口多小, 賑貸有差, 至冬十月還納, 以爲恒式, 内外大恱.
 
〔16년(194)〕 겨울 10월에 왕이 질양(質陽)註 001으로 사냥을 나갔다가 길에서 앉아 우는 자를 보았다. 〔왕이〕 “무슨 까닭으로 우는가?”라고 물으니 〔그가〕 대답하여 아뢰기를. “신은 매우 가난하여 늘 품팔이를 하여 어머니를 봉양했는데, 올해는 흉년이 들어 품팔이할 곳이 없어서 한 되의 곡식[升斗之食]註 002도 얻을 수 없기에 우는 것일 따름입니다.”라고 하였다. 왕이 말하기를, “아! 과인이 백성의 부모가 되어 백성들을 이 지경에 이르도록 하였으니 과인의 죄로다.”라고 하고, 옷과 음식을 주고 위무하였다. 이에 내외의 담당 관청에 명하여 홀아비, 과부, 고아, 홀로 사는 노인, 병들고 가난하여 스스로 살아갈 수 없는 사람들 등을 널리 찾아 구제하여 먹여 살렸다. 담당 관청에 명하여 매년 봄 3월부터 가을 7월까지는 관(官)의 곡식註 003을 내어 백성 가구(家口)의 많고 적음에 따라 차등이 있게 식량을 주어 대여하게 하고, 겨울 10월에 이르러 갚게 하는 것을 항식(恒式)로 삼으니,註 004 도성과 지방의 〔사람들이〕 크게 기뻐하였다.
 
 
 
註 001 질양(質陽) : 본서 권15 고구려본기3 태조대왕 86년(138) 3월조 참조.
* 질양(質陽)은 '질산(質山)의 남쪽'이란 뜻의 지명이다.
 
註 002 한 되의 곡식[升斗之食] : 이 구절은 일반적으로 “한 되 한 말의 곡식”으로 번역한다(이병도, 1977: 2012, 295쪽; 정구복/鄭求福·노중국/盧重國·신동하/申東河·김태식/金泰植·권덕영/權悳永, 313쪽; 이강래, 348쪽). 그렇지만 ‘승두(升斗)는 ‘되와 말’이라는 뜻과 함께 그냥 ‘되’를 의미하기도 하므로 문맥상 ‘한 되의 곡식’으로 번역하는 것이 더 자연스럽다.
 
〈참고문헌〉
이병도, 1977, 『국역 삼국사기(國譯 三國史記)』, 을유문화사
정구복/鄭求福·노중국/盧重國·신동하/申東河·김태식/金泰植·권덕영/權悳永, 1997, 『역주 삼각사기(譯註 三國史記) 2-번역편-』, 한국정신문화연구원(韓國精神文化硏究院)
이강래, 1998, 『삼국사기 Ⅰ』, 한길사
이병도, 2012, 『(두계이병도전집 11) 국역 삼국사기』, 한국학술정보
 
註 003 관(官)의 곡식 : 관의 곡식을 보관하던 창고가 존재했음을 시사한다. 『삼국지』 권30 위서30 동이 고구려전에는 3세기경 고구려에 대창고가 없었다고 나오지만, 2세기 말경에 이미 국가재정 운영을 위한 창고를 갖추었다고 보기도 한다(권순홍, 2019, 「고구려 도성 연구」, 성균관대 박사학위논문, 112쪽).
 
註 004 매년 봄 3월부터 … 항식(恒式)으로 삼으니 : 이 기사는 고구려에서 빈민 구제책으로 환곡 제도를 시행하기 시작한 사실을 보여준다. 고구려는 2세기 말 이래 사회분화의 심화로 인해 종전의 나부체제가 점차 해체되어 나갔다. 이에 따라 각 나부를 구성하는 읍락의 공동체적 관계가 약화되고, 경제적으로 빈한한 하층민들은 공동체적 보호를 받기 힘들어졌다. 이에 계루부 왕권은 하층민들이 노비 등 지배세력의 예속민으로 전락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진대법이라는 빈민 구제책을 시행하였다(김기흥, 73쪽). 이를 통해 계루부 왕권은 국가권력의 지배를 직접 받는 공민(公民)을 대거 창출하면서 왕권강화의 기반을 크게 확충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한편 진대법 시행 이전에는 국가권력의 직접 지배를 받던 공민이 아직 확립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진대법은 공민의 몰락을 방지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공민을 새롭게 창출하기 위해 시행된 제도로 보기도 한다(여호규, 538쪽).
 
〈참고문헌〉
김기흥, 1991, 『삼국 및 통일신라 세제의 연구』, 역사비평사
여호규, 2014, 『고구려 초기 정치사 연구』, 신서원
 
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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