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란의 밤, 불난 120·112…시민들 “전기 끊나” “피난 가야 하나”
다산콜센터·경찰 신고 전화 분석
김가윤 기자 수정 2025-01-27 16:11 등록 2025-01-27 07:00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12월3일 저녁 비상계엄을 선포한 가운데 4일 밤 서울 국회의사당에서 계엄군이 국회 본청으로 진입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12월3일 저녁 비상계엄을 선포한 가운데 4일 밤 서울 국회의사당에서 계엄군이 국회 본청으로 진입하고 있다. 연합뉴스
 
상상만 했던, 아니 상상조차 못 했던 ‘비상계엄’이 실제로 벌어졌을 때 시민들이 물었다. “저…지금 밖에 나가도 되나요?”
 
윤석열 대통령이 ‘반국가세력 척결’을 외치며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포고령 위반자를 ‘처단’한다는 계엄사령부 포고령이 내려진 12월3일 밤으로부터 50여일이 흘렀다. 헌법재판소의 탄핵 재판을 받고 내란 우두머리(수괴) 혐의로 수사 대상이 된 윤 대통령 쪽은 ‘경고용 계엄’이었다거나, ‘고작 2시간짜리 계엄’으로 치부하지만, 그날 시민들은 극도의 두려움에 떨었다. 평범한 일상에 가해진 위협을 느꼈다.
 
한겨레는 설 연휴를 앞두고, 윤건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입수한 지난해 12월3∼4일 계엄 관련 서울시 120다산콜센터 상담 내역 179건과 경찰 112신고 내역 2481건을 분석해, 당일의 혼란과 시민들이 빼앗길까 두려웠던 일상은 어떤 것이었는지를 들여다봤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12월3일 밤 긴급 대국민담화를 발표하고 있다. 윤 대통령은 “헌정 질서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한다”고 말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12월3일 밤 긴급 대국민담화를 발표하고 있다. 윤 대통령은 “헌정 질서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한다”고 말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아니, 비상계엄이면 도대체 뭐가 달라지는 거예요?”(시민), “비상개업요?”(상담사)
 
120다산콜센터로 걸려온 첫 상담신고는 밤 10시32분께였다. 윤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하자마자 전화를 건 이 시민은 “우리가 뭘 해야 할 행동이라든가, 지침이 있을 거 아니냐”며 다급하게 무언가를 알려달라고 했다. 이런 전화는 수차례 이어졌다. 근무하느라 뉴스를 제때 보지 못한 상담사들은 당황했다. “뉴스 안 보셨어요?”(시민) “시민님, 저희 근무 중인데 어떻게 뉴스를 봅니까.”(상담사)
 
“마트를 가도 되나요?”, “아침에 영화 보는 건 상관없나요?”, “가스나 전기가 끊기진 않죠?”
 
시민들이 가장 궁금했던 건 이런 일상들이었다. 특히 밤 11시 또는 자정 이후 밖을 돌아다니면 ‘체포’되는지 궁금해하는 시민이 많았다. 야간배달 사무실에선 “평상시대로 움직여도 되는 거냐”고 문의했고, 지방 출장을 마치고 퇴근하던 직장인은 “집으로 들어갈 수 있느냐”고 물었다. 과거 계엄령이 발동되던 시절, 야간 통행금지가 있던 기억이 되살아난 것이다. 바깥에 있던 시민들은 지하철이 끊기지 않는지, 도로가 통제되지는 않는지도 물었다.
 
수많은 걱정이 수화기 너머로 쏟아졌다. 출국을 앞둔 사업자는 다음날 비행기가 뜰 수 있는지 궁금했다. 버스 기사는 새벽 첫차를 운행하는 것인지 알려달라고 했다. 시민들은 아침 일찍 회사에 출근하면 되는지, ‘시험 기간인데’ 학교에 아이들을 보낼 수 있는지를 묻기도 했다. 하지만 서울시로부터 따로 지침을 안내받지 못한 상담사들은 “죄송합니다만,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아직 공지가 내려온 것은 없습니다”라는 말을 되풀이할 수밖에 없었다.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지난해 12월3일 밤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많은 시민들이 모여들어 군용차량의 진로를 막고 있다. 윤운식 선임기자 yws@hani.co.kr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지난해 12월3일 밤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많은 시민들이 모여들어 군용차량의 진로를 막고 있다. 윤운식 선임기자 yws@hani.co.kr
 
“만약 서울에 올라가면 죽나요? 제가 죽을 수도 있나요?”, “조울증이 있는데 너무 불안해서 힘들어요”, “피난 가야 하나요? 비행기 타야 하나요?” 상담사들은 터져 나오는 시민들의 불안을 잠재우려 애썼다. 어디론가 끌려갈까 봐 마음을 졸이며 전화하는 남성도 있었다. “혹시 어디 동원 가야 한다거나, 뭐 해야 하는 게 있나요?” “헬기 뜨고 난리가 났는데 그냥 가만히 있으면 되는 거예요?” 또다른 시민은 6·25 전쟁이나 대형 참사들을 언급하며 대책이 없는지를 간절히 묻기도 했다.
 
상담사들은 점차 실시간 속보와 뉴스 내용을 확인하며 시민들을 안심시켰다. “비상계엄을 선포한 건 확인되고 있고, 국회 (계엄 해제 표결) 과정이 있는 거로 확인되고 있습니다.” 이들의 차분한 대응은 자정을 넘자 “이해가 안 되긴 저희도 마찬가지입니다”, “저희도 교과서에서만 봤던 상황이라서” 등 같은 시민으로서 느끼는 갑갑한 마음을 토로하기에 이르렀다. 시민들도 상담사를 걱정했다. “계엄령인데 계속 근무를 하시는 거예요?”, “전화 받으시는 분도 총을 맞을 수 있으니까 조심해요.”
 
지난 7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사당 앞에서 시민들이 국회 본회의장에서 진행되고 있는 김건희 특검 투표 결과를 대형 화면으로 바라보고 있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지난 7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사당 앞에서 시민들이 국회 본회의장에서 진행되고 있는 김건희 특검 투표 결과를 대형 화면으로 바라보고 있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저는 정치인이 아니고 일반 국민이고 대학생이니 외부활동 상관없는 거죠? 어머니가 교통사고로 통원치료를 해야 하는데 혹시라도 밖에 나갔다가 총 맞을까 봐 너무 겁나요.”
 
마치 일상을 국가에 허락받는 듯한 경찰 112신고도 밤새 이어졌다. 편의점이나 피시(PC)방을 가고 싶은데 가도 되는지, 식당을 계속 열어도 되는지, 야간 아르바이트는 해도 되는지, 시민들은 경찰에게 물었다. “내일 송년회가 있는데 인원이 많이 모이는 게 문제가 될까요”, “재판을 받아야 하는데 군사재판을 받아야 하나요”, “사람 10명이 모여서 대통령을 욕하면 어떻게 되나요”, “(군에 소집되면) 케이(K)2 소총 사용법은 모르는데 어떡하나요” 등의 웃지 못할 질문들도 있었다.
 
가장 큰 걱정은 가족이었다. 시민들은 “가평으로 여행 간 아들을 데리고 와야 하는지”, “정신병을 앓고 있던 아버지가 계엄 선포로 놀라 사라졌다”, “조카가 미성년자이고 시험 기간인데 (공부를 하다) 집에 돌아가야 하는 것인지”를 다급히 물었다. 경찰에는 특히 시민의 편에 서달라는 간절한 요청도 전해졌다. 한 시민은 “경찰들 응원하는데 내일부터 우리랑 부딪치게 될 것 같다. 절대 우리를 놓지 말아 달라”고 호소했다. “국회 앞에 모이는 사람 체포하면 안 된다. 경찰이 따르면 안 된다”는 시민도 있었다.
 
계엄이라는 초유의 사태 앞에 어느 시민은 다산콜센터와 경찰에 전화를 해본들 특별한 답을 얻지 못할 것을 알았다. 다만 그럼에도 전화를 건 이유를 이렇게 말했다. “(120다산콜센터) 상담사한테 권한이 없는 거 알고 말씀드리는 거예요. (시민이 불안을 호소한 사실을) 역사의 기록으로 남기기 위해서요.”
 
누군가는 짧았다지만, 누군가에겐 영원할 것처럼 길었던 내란의 밤은 그렇게 기록으로 남았다.
 
김가윤 기자 gay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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