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수통 출신들도 고개 갸웃...'윤석열표 표적 수사'의 예견된 참사
[조성식의 통찰] 울산사건 항소심 무죄 정밀분석
사회 조성식(softrocker) 25.02.07 07:04ㅣ최종 업데이트 25.02.07 09:00 
 
▲4일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문재인 정부 청와대의 '울산시장 선거 개입 의혹' 사건 2심 선고공판에서 무죄가 선고된 송철호 전 울산시장(왼쪽)과 조국혁신당 황운하 원내대표가 보도진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연합뉴스
 
문재인 정부 시절 조국 수사와 함께 '살권수(살아있는 권력 수사)'의 대표 사례로 꼽힌 울산시장 선거 개입 의혹 사건이 항소심에서 뒤집혔다. 이 재판을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단순히 1심을 뒤집고 무죄 선고가 나와서만은 아니다. 바로 윤석열표 정치적 표적수사의 민낯을 여실히 보여주는 사건이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예견된 참사였다.
 
서울고등법원 형사 2부는 이 사건 핵심 인물인 황운하 조국혁신당 의원과 송철호 전 울산시장을 비롯해 백원우 전 청와대 민정비서관, 박형철 전 반부패비서관 등 주요 관련자들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이 수사의 핵심 논리인 청와대 하명수사 혐의를 전혀 인정하지 않은 결과였다.
 
이는 검찰 공소사실을 대부분 받아들여 황 의원과 송 전 시장에게 징역 3년의 실형을 선고했던 1심과는 완전히 상반된 판결이다. 언뜻 심급 간 견해 차이로 볼 수도 있다. 또 대법원판결이 남아 있으니 속단하기에는 이르다.
 
흥미로운 사건 구도? 하지만...
 
이 사건은 언론이나 대중의 관심을 끌 만한 극적 요소를 고루 갖췄다. 우선 등장인물이 그렇다. 검찰 수사가 벌어진 2019년 12월, 경찰 내 대표적 검찰개혁론자인 황운하 대전경찰청장은 총선 출마 의사를 내비친 상태였다. 2018년 지방선거에서 당선된 송 시장은 문재인 대통령의 친구였다. 거기에 민정비서관과 반부패비서관, 행정관 등 청와대 관계자들이 조연급으로 등장한다.
 
사건 구도도 흥미롭다. 수사 결과에 따르면, 2018년 지방선거를 8개월쯤 앞둔 2017년 10월 민주당 울산시장 예비후보 송철호 변호사 쪽에서 김기현 현직 시장의 측근들에 대한 비리 의혹을 청와대 민정라인에 제보했다. 민정에서는 이를 경찰청으로 넘겼고, 경찰청은 다시 울산경찰청으로 하달했다. 그 전에 송철호 후보와 황운하 당시 울산청장이 따로 만나 저녁 식사를 했다. 뭔가 그림이 그려질 듯하지 않은가?
 
검찰은 청와대가 대통령 친구인 송 전 시장의 당선을 돕기 위해 조직적으로 개입했다고 봤다. 문모 청와대 민정비서관실 행정관이 김기현 시장 측근들에 대한 범죄 첩보서를 작성한 것이 그 출발점이다. 검찰 수사 결과 이 첩보서의 토대는 송철호 변호사의 선거캠프에 가담한 송병기 울산시 경제부시장으로부터 받은 제보였다.
 
검찰은 이 첩보서가 백 비서관과 박 비서관을 통해 황운하 청장에게 전달됐다고 판단했다. 이른바 '하명 수사' 의혹이다. 이와 별개로 송 전 시장은 2017년 9월 황 청장과 저녁을 함께하면서 다가올 지방선거에서 유력한 경쟁자인 김 시장 관련 수사를 청탁했다는 혐의를 받았다.
 
유죄 논리를 떠받치는 기둥은 크게 3개다. 첫째는 송철호 민주당 울산시장 후보에 대한 청와대의 지원 의혹이다. 대통령 친구라는 점, 선거캠프 인사와 청와대 민정라인의 접촉 등이 근거다.
 
둘째는 청와대와 경찰의 공모 의혹이다. 청와대 민정비서관실에서 김기현 시장 측근들의 비리 첩보 자료를 경찰청으로 넘긴 건 사실이다. 그런데 검찰은 한발 더 나아가 청와대 민정과 울산경찰청, 즉 황운하 청장이 직접 연결됐다고 주장했다.
 
셋째는 송 변호사와 황 청장의 유착 의혹이다. 검찰 수사 결과에 따르면, 두 사람의 식사 자리에서 송 변호사가 황 청장에게 김 시장 측을 수사해달라고 요청했다는 것이다.
 
언뜻 보면 그럴듯하다. 송철호, 청와대(민정), 울산경찰(황운하) 3자가 공모한 불법 선거 개입이라는 게 검찰 수사 논리의 핵심이다. 그런데 깊이 들여다보면 중대한 허점이 있다.
 
하명 수사? 물증이 없다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서 검찰 깃발이 바람에 휘날리고 있다.연합뉴스
 
편의상 송철호를 a, 청와대를 b, 울산경찰, 즉 황운하를 c라고 해보자. 검찰 논리는 a와 b가 연결되고, a와 c가 연결되니, 자동으로 b와 c도 연결된다는 것이다. 일종의 3단 논법이다. 이를 토대로 a-b-c, 즉 송철호-청와대-황운하가 서로 공모해 선거에 개입했다는 결론을 제시한다.
 
먼저 a-b 구간 연결 의혹은 충분한 근거가 있다. 청와대 민정라인에서 김기현 시장 측 비리 첩보서를 작성하는 데 송철호 캠프 관련 인사가 관여하고 청와대에서 이를 경찰청에 넘긴 건 사실이기 때문이다. 이건 2심 재판부도 인정한다.
 
그런데 이에 대한 해석을 두고 1심과 2심 재판부 판단이 엇갈렸다. 불법 선거 개입으로 본 1심과 달리 2심은 송 전 시장과 청와대 민정라인이 연결된 데 대해 "경찰이 울산시장 관련 비위 수사를 하도록 해 선거에 영향을 미치게 하려는 공모가 있었다고 인정하기 어렵다"라고 판시했다. 첩보 전달과 경찰 수사를 별개로 본 것이다.
 
a-c 구간 의혹 제기도 언뜻 자연스러워 보인다. 송 시장과 황 청장이 만나서 식사한 건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두 사람만 있던 자리에서 여러 정황에 비춰 그런 청탁이 있었을 거라는 검찰 주장은 애초 무리라는 지적이 있었다.
 
무엇보다도 당사자들이 강력히 부인하는 데다 물증이 없기 때문이다. "수사 청탁 관련 증언은 진술의 내용과 경위, 다른 증거들과의 불합치 등을 고려할 때 신빙성을 인정하기 어렵고, 관련 정황 또한 이를 확실하게 뒷받침하지 않는다"라는 2심 재판부의 판단도 그런 맥락이다.
 
가장 논란이 되는 것은 바로 b-c 구간, 즉 청와대(민정)와 황운하(울산경찰)의 공모 의혹이다. 그런데 이 또한 물증이 없다. 검찰 주장대로 선거 개입을 위한 하명수사가 이뤄졌다면 청와대에서 직접 울산경찰청으로 지시한 증거가 있다거나 청와대 관계자들과 황 청장 측이 만나거나 통신으로 접촉한 흔적이 있어야 하는데, 전혀 발견되지 않았다.
 
확인된 사실은 청와대에서 경찰청으로 첩보 자료를 넘기고 경찰청에서 이를 다시 울산경찰청으로 내려보낸 것이다. 보기에 따라서는 중간에 경찰청을 거치기는 했지만 실제로는 울산청이 청와대 지시를 받고 수사에 착수한 것 아니냐고 의심할 수도 있다.
 
그런데 의심과 사실은 구별해야 한다. 청와대에서 경찰청으로 비리 첩보 자료를 넘기는 것은 통상적인 업무 절차다. 경찰청이 첩보 자료를 관할에 따라 각 지방경찰청으로 하달하는 것도 정상 업무다. 즉 울산 지역과 관련한 내용이니 울산경찰청에 내려보낸 것으로 볼 수 있다. 검찰이 제기한 청와대와 울산경찰의 직거래 의혹은 사실이 아닌 추론일 뿐이었다.
 
특수통 검사 출신들도 "무리한 수사"
 
▲2020년 1월, 당시 윤석열 검찰총장이 서울 서초구 대감찰청에서 열린 2020년도 신년다짐회에 참석해 신년사를 발표하고 있다.유성호
 
울산 사건은 문재인 청와대를 겨눈 윤석열 검찰의 정치적 표적수사였다. 조국 수사로 정권에 완전히 등을 돌린 검찰이 검찰개혁 저지 목적으로 대통령을 겨냥해 작심하고 키운 사건이었다. 울산지검 관할 사건을 서울중앙지검으로 옮겨 수사하고, 공소장에 이 사건과 직접 관련성이 없는 문재인 대통령이 30여 차례나 언급된 것부터가 비정상적이었다.
 
검찰은 2020년 1월 새로 부임한 추미애 장관이 '윤석열 사단'에 대한 대대적 인사를 예고하자 미처 수사도 덜 된 상태에서 당사자 조사 한번 없이 급하게 기소했다. 물론 윤석열 총장의 지시였다. 실제로 이 사건 기소 직후 인사가 났고 대검과 서울중앙지검에 포진한 윤석열 사단 검사들은 좌천되거나 한직으로 내몰렸다.
 
울산 사건 수사 당시 언론은 조국 수사 때와 마찬가지로 검찰 수사 내용을 무비판적으로 받아썼다. 문재인 정부의 권력형 비리 수사라고 높게 평가했다. 하지만 이 수사에 대해 내가 아는 법조인들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특수통 대명사로 통하던 검찰 고위직 출신 변호사는 "청와대 민정에서 비리 첩보 자료를 경찰청에 넘기는 건 통상 업무"라면서 "청와대가 울산청에 직접 지시한 증거가 있다면 모르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무리한 수사 같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특수통 출신 모 법조인도 "수사 내용으로 보면 조국 수사보다 울산 수사가 더 문제가 있어 보인다"라고 평했다. 조국 수사는 수사 의도나 수사 방식의 문제점과 별개로 (장관 후보자 검증이라는) 수사 명분이라도 있었는데 울산 수사는 수사 당위성이나 수사 논리가 취약하다는 지적이었다. 두 사람 다 윤 대통령의 검찰 선배로 서로 잘 아는 사이다.
 
직접 증거가 없을 뿐 정황상 하명수사에 따른 불법 선거 개입이 있었다고 주장할 수는 있다. 하지만 살펴본 대로 검찰 수사 논리에는 논리적 비약이라는 치명적 결함이 있다. 물론 대법원 판결에서 변수가 생길 여지가 전혀 없다고 장담할 수는 없지만, 이와 별개로 2심 무죄 논리가 1심 유죄 논리보다 합리적이라는 게 내 판단이다.
 
증거가 있어도 표적수사 논란에 휩싸이는 판에 추론을 사실로 간주하는 건 매우 비과학적인 수사방식이다. 증거를 선별적으로 수집해 유죄 논리에 꿰맞추는 것은 청산해야 할 수사 악습이다. 정치검찰 소리가 괜히 나오는 게 아니다. 검찰을 어떻게 바꿀지가 차기 정부의 주요 과제가 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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