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좌파 수거 ‘노상원 수첩’ 5개 계획 현실로…뜬구름 아니었다
여의도 봉쇄, 수거 명부 작성, 부대 지정
사복근무, 경찰 활용 방안 실제 시도
배지현 기자 수정 2025-02-14 20:11 등록 2025-02-14 18:08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가운데 마스크 쓴 이)이 지난달 24일 아침 서울 은평구 서울서부경찰서에서 서울중앙지검으로 송치되고 있다. 김영원 기자 forever@hani.co.kr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가운데 마스크 쓴 이)이 지난달 24일 아침 서울 은평구 서울서부경찰서에서 서울중앙지검으로 송치되고 있다. 김영원 기자 forever@hani.co.kr
 
12·3 내란사태의 ‘비선 핵심’으로 꼽히는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의 수첩에 담긴 내용 중에는 비상계엄 당시 실제 시행된 부분도 있다. 지난해 총선 전부터 작성된 것으로 보이는 수첩 속 계획이 일부 현실화된 점 등을 고려하면 ‘야권 인사 500여명 수집’ 등 내용을 마냥 현실성 없는 공상으로만 치부하기 어렵다. 수첩에 비상계엄 당시 실현됐거나 시도됐던 내용이 상당수 포함된 만큼 실제 작성자가 노 전 사령관이 맞는지, 누구의 지시로 작성했는지, 군 내부나 대통령실 등에 공유됐는지 등에 대해서는 수사가 필요한 상황이다.
 
한겨레가 14일 확보한 70쪽짜리 ‘노상원 수첩’에는 국회가 있는 “여의도 봉쇄”가 중요하게 다뤄지는데 실제 지난 비상계엄의 핵심 목표는 국회였고 봉쇄 시도도 이뤄졌다. 헌법에는 비상계엄 때에도 국회의 권능은 제약할 수 없게 되어있다. 이번 비상계엄이 위헌·위법이라는 평가를 받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노 전 사령관의 수첩에는 여의도 봉쇄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이 나와 있고, 실제 비상계엄 때도 국회에 군병력이 투입됐다. 윤 대통령의 공소장에는 무장 군인 1605명, 경찰관 약 3790명을 동원해 국회, 선관위, 더불어민주당 당사, 여론조사 꽃 등을 점거 출입 통제와 체포, 구금, 압수수색 등의 방법을 시도하려 했다는 내용이 담겼다.
 
지난 비상계엄 때 수도방위사령부 병력의 국회 출동도 수첩에 나오는 대목이다. 수첩에는 “경계병은 수방사 인력 활용(일부 여의도 정도)”라고 적혀있는데, 수방사는 실제 비상계엄 당시 국회를 통제하라는 명령을 받은 바 있다.
 
수첩에 ‘수거팀 구성’ 대목에 등장하는 △수거대상 명부 작성 △행사부대 지정 △사복근무 △경찰들 활용방안 등은 실제 시행되거나 시도됐다.
 
수거대상 명부는 실제 작성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이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에게 건넸다. 이를 홍장원 전 국가정보원 1차장, 조지호 경찰청장 등 복수의 인물이 전달받았다.
 
행사 부대 지정도 이뤄졌다. 계엄 때 별도의 임무가 없어 동원되어서는 안 되는 정보사령부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장악 역할을 맡았다. 국회에는 육군특수전사령부와 수도방위사령부가 투입됐다.
 
또한 비상계엄 때 국회와 선관위 등에는 사복 차림으로 첩보·정보 수집 등을 하는 군부대인 ‘편의대’가 출동하기도 했다. 경찰 활용도 이뤄졌다. 윤 대통령은 비상계엄 당일인 지난해 12월3일 조지호 당시 경찰청장과 김봉식 서울경찰청장을 삼청동 안전가옥으로 불러 계엄 관련 지시를 내렸다. 윤 대통령이 직접 건넨 1장짜리 에이포(A4) 용지에는 장악 대상 기관 10곳이 적혀 있었으며 비상계엄 선포 뒤 조 청장에게 6차례 직접 전화해 국회의원 체포를 지시했다. 또 비상계엄 당시 방첩사령부는 경찰 쪽에 정치인 등 주요 인사 체포조 지원과 합동수사본부 구성에 필요한 수사관 100명의 지원을 요청하기도 했다.
 
수첩에는 계엄을 지휘할 합동참모본부 지휘소를 경기도 과천에 구성하는 방안도 적시되어 있는데, 이 대목에는 “박씨는 지휘소 구성”이라는 문구가 등장한다. 이는 지난 12·3 비상계엄 당시 계엄사령관을 맡았던 박안수 육군참모총장을 의미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문건의 다른 부분에도 ‘박안수’의 역할은 “계룡대: 수집 장소, 전투조직 지원”이라고 적시되어 있다. 수첩에는 김 전 장관에게서 주요 인사 체포 명령을 받았던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의 이름도 등장한다. 그의 역할은 “행사인원 지정, 수거명부 작성”으로 되어 있다. 이 중 수거명부는 최소 14명 이상이 작성됐던 것으로 확인됐다.
 
또 수첩엔 “시민 불편 없게 한다”는 내용이 적혔는데 이 또한 윤 대통령 쪽 입장과 유사해 보인다. 윤 대통령은 지난 11일 헌법재판소 탄핵 재판에서 “국민들에게 군인들이 억압이나 공격을 가한 사실이 전혀 없다”고 강조한 바 있다. 실제 김용현 전 장관이 작성한 포고령 초안에서 윤 대통령이 야간통행금지를 삭제했다는 게 김 전 장관과 윤 대통령의 주장이다.
 
때문에 수첩이 누구의 지시로 어떤 경위를 거쳐 작성됐고, 어느 선까지 보고됐는지 수사가 필요한 상황이다. 최근 국가수사본부는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노 전 사령관의 수첩을 보내 필적 감정을 의뢰했으나 ‘감정 불능’ 판정을 내렸다. 노 전 사령관은 검찰에서도 수첩에 대해 진술을 거부했다. 이 때문에 수사가 여러가지로 난항을 겪고 있는 상황이다. 수첩이 증거 능력을 인정받기 위해서는 수첩의 작성자가 진짜 노 전 사령관이 맞는지, 수첩 속 내용이 언제·어떤 이유로 작성됐는지 등이 확인되어야 하는데 당사자들이 입을 열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다만 검찰은 노상원 수첩과 계엄과의 연관성 등을 계속 수사해 나간다는 방침이다.
 
배지현 기자 beep@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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