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교라는 말도 잘 못하겠어요”
선관위·헌재 직원에 언론인·의사까지 중국인? 선 넘은 낙인찍기
‘외국인’ 정책이 ‘화교특혜’로 둔갑, 동명이인 둔갑시키기도
반박해도 의혹 급증… “화교면 어떤가, 정치인 경거망동해선 안 돼”
기자명 윤수현, 금준경, 박재령 기자 melancholy@mediatoday.co.kr 입력 2025.03.04 23:05 수정 2025.03.05 12:19

▲유튜브 가로세로연구소의 손령 MBC 앵커 중국인 의혹 방송화면 갈무리
“화교라는 말도 잘 못하겠어요.” 주희풍 인천화교협회 부회장이 미디어오늘에 한 말이다. 윤석열 대통령 탄핵 국면에서 극우세력을 중심으로 ‘중국인’, ‘화교’ 낙인찍기가 선을 넘었다. 탄핵 촉구 집회 참가자는 물론 연예인, 언론인, 헌법재판소 연구관 등을 향한 낙인이 지속된다. 실제 중국인이나 중국동포, 화교 등을 향한 폭력적 언행도 잇따른다. 집단적 폭력사태가 언제 촉발돼도 이상하지 않은 일촉즉발의 상황이다. 이런 가운데 주류 정치권과 일부 언론이 편승하면서 문제를 키우고 있다.
유튜브·커뮤니티발 중국인·화교 낙인찍기 심각
최근 온라인에서 유통되고 있는 화교·중국인 관련 허위정보는 심각한 수준이다. 유튜버 ‘키보드지구촌’은 지난달 26일 쇼츠 영상을 통해 ‘화교는 서명만 하면 한국국적을 취득할 수 있다’, ‘수능을 보지 않아도 명문대에 입학할 수 있다’ 등의 주장을 했다. 영상 조회수는 71만 회에 달하며 “국회의원들이 중국인인 건가” “이 정도면 역차별” 등 댓글이 1만 개 이상 게재됐다. 유튜버 ‘썰탐구’는 화교들이 특별전형을 통해 로스쿨에 입학했다는 주장을 담은 영상 조회수가 83만 회 댓글은 7300개가 넘는다. 과거 5·18 광주민주화운동 유공자 특혜 주장과 마찬가지로 화교들이 ‘특혜’를 보고 있다는 주장을 내세우며 반감을 키우는 방식이다.
이 같은 주장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확대·재생산되며 정치 고관여층이 아닌 이들에게도 유포된다. 디시인사이드와 일간베스트는 물론 직장인 전용 커뮤니티 블라인드와 육아 커뮤니티에서도 관련 의혹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화교, 중국인, 조선족에게 주는 혜택”(블라인드), “한국대학에서 중국 화교들은 조건 없이 무제한 입학시켜주는 거 아세요?”(육아 커뮤니티 베이비빌리) 등이다.

▲중국동포가 부정선거에 개입됐다는 의혹을 제기한 구독자 97만 명의 ‘이봉규TV’ 방송화면 갈무리
윤 대통령 탄핵 국면에선 법원, 헌법재판소,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언론인 등이 화교와 중국동포에게 장악당했다는 주장이 내란의 정당성을 설파하는 데 쓰였다.
스카이데일리가 유포한 중국인 간첩 99명 체포설 보도는 극우 유튜버들이 확대·재생산했다. 구독자 97만 명의 ‘이봉규TV’는 지난달 9일 중국동포가 부정선거에 개입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는데 근거는 온라인 커뮤니티 디시인사이드에 올라온 정체불명의 사진이다. 이봉규씨는 “법원이 주파사에게 장악돼 있다”며 “대통령은 계엄을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라고 했다. ‘가로세로연구소’는 손령 MBC 앵커가 중국인일 것이라는 의혹을 제기했는데, 이는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시작돼 언론사 펜앤드마이크가 보도하기도 했다.
연예인과 유명인들을 향한 공격으로도 이어진다. 유튜버 ‘이병준TV’는 가수 아이유가 ‘않’이라는 글씨를 쓸 때 받침 니은보다 히읗을 먼저 썼으며, 중국 콘서트에서 중국말을 유창하게 했다 등의 이유로 화교라고 주장했다. 댓글에는 “아이유 화교인 줄도 모르고 있었다” 등 댓글이 1000여 개 게재됐다. 아이유가 탄핵촉구 집회 참가자들을 격려하자 이 같은 정보를 확산한 것으로 보인다. ‘이봉규TV’는 유튜버 쯔양 소속사가 중국과 관련 있다는 의혹 제기를 여과 없이 소개했다.

▲가수 아이유의 화교 의혹을 제기한 유튜버 ‘이병준TV’ 방송화면 갈무리
사실관계 따져보니 왜곡됐거나 허위
최근 대두되는 화교, 중국동포 대상 특혜 주장은 모든 외국인에 동일하게 적용되는 제도를 곡해한 경우가 많다. 일례로 대입 특례전형은 ‘외국인’이 대상이지 ‘화교’나 ‘중국동포’만 적용하는 별도의 전형은 없다. 교육부에 따르면 최근 5년간 이 특례전형을 통해 의대에 입학한 외국인은 6명에 불과하다. 국공립 어린이집·유치원 관련 특혜 주장도 모든 다문화 가정에 적용되는 혜택을 왜곡했다. 화교·중국인이 공공임대주택 우선배정 대상자라는 주장 역시 사실과 다르다. LH 공공임대주택 입주자격 요강을 보면 자식이 한국인이면서 한부모가족일 경우에만 외국인의 공공임대주택 신청이 가능하다. 화교는 상속세를 내지 않는다는 주장도 허위다.
특정인을 대상으로 한 공세는 애꿎은 사람을 ‘화교’, ‘중국인’으로 지목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특히 손령 앵커의 경우 그가 작성한 논문 제목이 ‘한중’이 아닌 ‘중한’으로 시작하고 영문이름을 중국식으로 표기했다는 것이 근거였다. 이 논문은 손 앵커가 아닌 한국 이름이 같은 중국인 유학생이 작성한 것이었다.

▲ 중국인, 화교 관련 허위정보 및 음모론과 관련 유튜브 섬네일. 우측 상단부터 ‘이봉규TV’, ‘국대떡볶이 김상현 대표’, ‘이병준TV’, ‘가로세로연구소’ 방송화면 갈무리.
헌법재판소 연구관 3인과 관련 헌법재판소는 “가짜뉴스”라고 밝혔다. YTN은 자사 기자와 관련된 허위정보에 대해 허위사실 적시 명예훼손 등으로 관련자를 형사고발 조치했다고 밝혔다. MBC 역시 법적대응을 검토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촛불집회에 중국인이 대대적으로 참여한다는 주장도 사실과 거리가 멀다. 촛불집회에서 중국 우유갑이 나왔다며 중국인이 집회에 대대적으로 참여했다는 주장이 제기됐지만 제로웨이스트샵(쓰레기를 최소화해 친환경 제품을 판매하는 곳) 직원들이 대만에서 마신 밀크티와 듀유 종이갑을 재활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집회에 중국어 플래카드가 있다는 주장도 있었는데, 교포들이 일본집회에서 사용한 일본어 플래카드였다.

▲소셜미디어에 퍼지고 있는 오훤 연구관 관련 허위정보. JTBC 기사인 것처럼 합성됐다.
팩트체크도 소용 없었다… 현실 차별로 번질 우려 커져
과거엔 ‘종북’ 공세가 강했는데 한국이 북한을 압도하면서 북한과 관련한 프레임의 효과는 떨어졌다. 이런 가운데 실제 팽배한 반중정서를 활용하는 프레임이 강해졌다. ‘중국동포’가 아닌 이전 세대에 정착하고 동화된 ‘화교’로 지칭하는 건 ‘우리 안의 적이 암약하고 있다’는 주장을 하기 위해 만들어진 논리로 보인다. 윤석열 대통령이 담화에서 ‘중국간첩’을 언급하고 여당 중진인 나경원 의원이 헌재, 선관위 등이 공무원을 뽑을 때 국적 검증을 강화하는 법안을 발의하겠다고 나서는 등 주류 정치권이 편승하고 부추기는 면도 있다.
당사자가 반박하고 언론이 팩트체크에 나서도 관련 정보는 반복적으로 유포되고 있다. 손령 앵커 관련 주장의 경우 지도교수의 반박과 미디어오늘의 팩트체크가 이뤄져 펜앤드마이크는 지난달 25일 정정보도를 냈지만 가로세로연구소는 다음날에도 같은 의혹을 제기한 영상을 올렸다. 시청자들은 “MBC는 그냥 중국어용방송” 등 댓글을 달았다. 다른 영상에선 한 누리꾼이 팩트체크된 기사를 제시하며 반박하자 외려 언론이 잘못 보도했다고 재반박한 누리꾼도 있다.
특히 현실 폭력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최근 극우 유튜버들이 대학가 집회에 물리력을 행사하며 방해해 논란이 됐는데 지난달 28일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선 극우 유튜버들이 “한국외대가 짱깨들이 그렇게 많다지”, “우리는 중국 공산당과 싸우고 있다”며 중국 유학생들을 자극했다.
홍성수 숙명여대 법학부 교수는 미디어오늘에 “누군가 화교면 어떤가”라며 “화교의 역사는 복잡하고, 수세대에 걸쳐 한국에서 살아온 이들도 많다. 이런 맥락을 제외하고 반중 정서에 기반해 공격한다는 것 자체가 무책임한 일이며 논리적으로도 말이 안 된다”고 했다. 홍 교수는 “이들이(극우세력이) 중국을 타깃으로 삼은 건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게 아니다. 이번 국면이 끝나면 또 다른 타깃을 찾을 수 있으며, 미국처럼 트랜스젠더 등 성소수자가 공격 대상이 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홍 교수는 정치권의 책임을 강조했다. 그는 “정치인들만 경거망동하지 않아도 혐오 확산이 줄어들 수 있다. 여당 등 정치권에서 ‘화교·중국인이라는 이유로 누군가를 배척해선 안 된다’는 메시지를 줘야 한다. 현재 상황을 지켜만 본다면 책임을 방기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달 3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윤석열 대통령 지지자가 ‘부정선거 수사하라’는 구호가 적힌 피켓을 들고 있는 모습. 피켓에 중국공산당(CCP) OUT이라는 문구가 있다. ⓒ연합뉴스
비상계엄 후 반중정서가 확산되면서 화교 사이에서도 불안감이 퍼지고 있다. 지역화교협회 홈페이지에서 화교를 비하하는 글들이 올라왔으며, 주한국 대만대표부도 화교학교에 주의를 당부했다. 인천 차이나타운에 대한 경찰 순찰도 강화됐다.
주희풍 인천화교협회 부회장은 “최근 혐오가 심각해진 측면이 있다”며 “요즘은 화교라고 말도 잘 못하겠다. 특히 젊은 사람들이 화교협회에 찾아와 ‘진짜 중국 사람은 길에서 용변을 보느냐’며 비아냥대기도 한다”고 했다. 주 부회장은 화교가 대입 등에서 특혜를 받고 있다는 주장에 대해 “화교가 외국인 전형으로 대학교에 진학하기 위해선 까다로운 절차를 거쳐야 한다. (특혜설은) 가짜뉴스인데 답답하다”고 했다.
중국동포 매체 한중포커스신문을 운영하는 문형택 대표는 미디어오늘에 “중국동포 입장에선 (허위정보에) 헛웃음이 나지만, 문제는 선동을 믿고 혐오감을 느끼는 이들이 있다는 점”이라고 했다. 문 대표는 1994년 한국으로 귀화한 중국동포다. 문 대표는 “(극우 세력은) 중국·홍콩·대만 등 국적 상관없이 중국말만 하면 싸잡아서 비판할 건데, 자칫 관광객을 상대로 폭행 사건이 벌어지면 외교적인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며 “미국 등 서양에서 동양인을 대상으로 한 폭력 사건이 불거지는 것처럼 한국에서도 비슷한 사건이 생길까 우려되는 게 사실”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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