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송산성(杉松山城)
삼송산성 위성사진, 지도 https://bit.ly/4elFkfG https://j.map.baidu.com/02/NQ8i
시대 : 고구려
위치(출토지)
요녕성 무순시 신빈현 위자욕진 삼송촌(遼寧省 撫順市 新賓縣 苇子峪鎭 杉松村)
랴오닝성 푸순시 신빈시엔 웨이즈위전 산송춘 (辽宁省 抚順市 新宾县 苇子峪镇 杉松村)
유형 : 성곽>산성
형태사항
동벽 길이 150m, 남벽 길이 180m, 서벽 길이 260m, 북벽 길이 360m,
둘레 1,100m(왕몐허/王綿厚, 2002)라는 기록│둘레 1,045m(국가문물국/國家文物局, 2009); 2里(첸다웨이/陈大为, 1995; 웨이춘청/魏存成, 2002)라는 기록이 있음.
2점
조사내용
1986 왕미엔허/왕면후(王綿厚), 쑨리/손력(孫力)
1980~1982 무순지구 무순보사대(撫順地區無順普査隊)
신빈현(新賓縣) 관내의 소자하(蘇子河)와 부이강(富爾江)유역의 유적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발견됨(溫秀榮·張波, 1996).
구조특징
평면은 불규칙한 타원형임. 좌성, 우성이 서로 연결되어 이루어진 성이라는 견해도 있음. 처음 발견된 성은 규모가 작은 서성(西城)이고, 나중에 발견된 성은 동성(東城)이라고 봄(魏存成, 2011). 성벽, 성문, 수구문, 우물, 샘 등이 남아 있고, 유물로는 기와편이 출토됨.
성벽은 불규칙한 반원형의 산등성이를 따라 축조하였는데, 대부분 험준한 암벽을 자연성벽으로 삼았음. 인공성벽은 대부분 납작한 돌로 축조함. 가장 큰 돌은 길이 1.27m, 너비 0.57m임. 인공성벽은 자연성벽 암벽 사이 구간에 축조되었고, 모두 네 구간이 있음. 그 가운데 가장 긴 인공성벽은 길이가 약 70m이고, 남은 높이가 약 3m임. 동북쪽의 한 구간은 길이가 25m이고, 남은 높이가 약 6m임. 서벽과 남벽은 대부분 높이 30~40m의 가파른 절벽 위에 축조하였는데, 성벽의 높이는 비교적 낮음. 동벽의 한 구간은 바깥쪽이 가파르고 안쪽이 완만한 산등성이에 축조되어 있는데, 안팎의 높이 차이를 고려하면서, 산비탈을 깎고 외벽만 쌓는 방법으로 성벽을 축조함(단면석벽(單面石壁); 외벽쌓기). 다른 한 구간은 비교적 낮은 산골짜기에 있는데, 석벽이 비교적 높고, 장방형의 돌을 내외로 쌓은 협축식(雙壁墻)으로 축조함. 단벽은 기단부 너비 3~4m, 정상부 너비 1~2m, 높이 5~6m임. 협축성벽은 기단부 너비 5m·정상부 너비 3m, 높이 3m임. 산성 동북모서리 성벽의 가운데 부분에 깊이 3m 정도의 네모난 구멍이 있는데, 구멍은 3단 층계로 이루어져 있음.
역사적 의미
태자하 상류일대에는 고구려초기 요동평원방면의 주요 교통로인 혼강~소자하~혼하(渾江~蘇子河~渾河) 루트로 통하는 산간로가 많이 발달되어 있으며, 삼송산성(杉松山城)은 여러 산간로를 이어주는 요지임. 더욱이 1-3세기경 고구려와 중국세력은 량소지곡(梁紹之谷)이나 량구(梁口) 등 소자하(蘇子河)에서 태자하(太子河)로 나아가는 산간로 입구나 그 주변에서 치열한 공방전을 벌였음. 위의 사실과 함께 규모가 비교적 작고 산 정상에 위치하였다는 점 등을 고려하면 삼송산성(杉松山城)은 대체로 태자하(太子河) 상류일대와 소자하, 혼강(蘇子河, 渾河) 등을 연결하는 산간로를 공제(控制)하기 위한 군사방어성으로 추정됨(여호규, 1999).
* 공제(控制) : 억눌러 꼼짝 못 하게 함.
원슈롱(溫秀榮)·장보(張波)(1996)의 삼송산성(杉松山城)의 축조시기에 관한 연구가 있음. 고구려초기 산성의 특징을 보면, 대부분 가파른 절벽을 천연성벽으로 삼았음. 인공벽을 가파른 절벽에 축조한 경우는 드물게 보이고, 주로 결구(缺口)를 막거나 높이가 낮은 산등성이에 축조함. 인공벽의 높이는 3~6m로 높다고 할 수 있음. 성벽 건축재는 주로 쐐기형 돌로 외벽을 구축하였고, 안에는 잡석으로 채웠음. 성문 옹성의 평면은 대부분 장방형이고, 각료대(角瞭臺)는 명확히 구분됨. 유물은 극히 드물게 보이는데, 모래혼입 홍갈색 토기편이 출토되기는 하나 기와는 보이지 않음. 그리고 생활용기 등이 출토되기도 함. 이로 볼 때, 삼송산성(杉松山城)은 흑구산성(黑溝山城), 전수호산성(轉水湖山城), 태자성 내성(太子城 內城) 등과 더불어 초기산성이라고 할 수 있음. 한편 산성이 위치한 지역이 비류국(沸流國)과 양맥고지(梁貊故地)라는 점에서 구체적인 축조연대는 고구려 건국전후로 생각해 볼 수 있음.
여호규(1999)는 삼송산성(杉松山城)은 절벽을 천연성벽으로 이용하였다는 점에서 오녀산성, 산성자산성, 패왕조산성, 흑구산성, 전수호산성(五女山城, 山城子山城, 覇王朝山城, 黑溝山城, 轉水湖山城) 등 고구려 초기 산성과 유사하다고 보았음. 또한 삼송산성이나 태자성이 위치한 태자하 상류일대는 고구려와 같은 계열인 량소(梁紹)의 거주지역임. 입지조건과 축성법 등이 압록강 중류 일대의 초기 산성과 유사하다는 점에서 태자성보다 이른 시기에 축조되었다고 여겨짐. 태자성은 늦어도 4세기 중반에는 축조되었다고 추정되는 만큼, 삼송산성은 4세기 이전에 축조되었을 가능성도 있다고 여겨짐.
王綿厚(2002)는 삼송산성의 성벽축조방법은 고구려 초기산성의 축조방법, 즉 내탁식(內托式) 축성방식(단벽석장), 협축식(夾築式) 축성방식(쌍벽석장), 가파른 절벽에 낮은 벽을 축조하는 방식(애벽단장(峭壁短墻)), 활구봉도산장(豁口封堵山墻), 자연절벽을 이용한 각종 산성구축방법 등을 포함하고 있다고 봄. 또한 산성은 태자하(옛 양수) 상류, 즉 고구려의 선조 가운데 하나인 요동 ‘양맥(梁貊)’이 거주하고 있던 지역에 위치한 전형적인 초기산성 건축양식을 갖추고 있음. 산성은 고구려시대까지 계속 사용됨.
위치 비정에 관해 王綿厚(2002)는 고구려 창암성(蒼巖城)일 가능성이 있다고 보았음. 『구당서(舊唐書)』와 『신당서(新唐書)』의 기록을 보면, 창암성(蒼巖城)은 항상 신성(新城) 및 목저(木底)와 연관되어 있음. 창암성(蒼巖城)은 요하를 건너고, 신성(新城)과 목저성(木底城)을 지나서 위치한 고구려 남도(南道)의 중요산성 가운데 하나임. 『구당서(舊唐書)』권(卷) 111 설인귀전(薛仁貴傳)에는 “(高麗)男生弟南建率國人遂擊同善等, 詔仁貴統兵爲後援 …… 同善等至新城夜為賊所襲. 仁貴領驍勇赴救斬首數百級. …… 拔其南蘇木底蒼巖三城始與男生相會”라는 기사가 있음. 이 전쟁기사를 볼 때, 설인귀 등은 먼저 신성에 이르렀고, 연이어 남소, 목저, 창암(南蘇, 木底, 蒼巖)을 정벌하였으므로, 창암은 신성 동쪽에서 찾아야 함. 신성은 무순의 고이산성, 목저성(高爾山城, 木底城)은 신빈의 오룡산성(五龍山城)으로 추정됨. 삼송산성은 이들 성과 동일한 교통로상에 있다는 점에서 창암성일 가능성이 있음. 이 외에도 영릉(永陵) 북쪽 두도립자산성(頭道砬子山城), 이도하자구로성(二道河子舊老城)도 창암성일 가능성이 있음.
자연환경
신빈현 서남쪽 태자하 상류 위자곡진 삼송촌에서 동북쪽으로 약 1.5㎞ 떨어진 해발 약 660m의 성자산(城子山) 정상에 위치함. 삼송산성(杉松山城)은 태자성(太子城)에서 북태자하(北太子河)를 거슬러 혼강(渾江)이나 소자하(蘇子河)유역으로 나아가는 산간로(山間路)의 분기점에 위치함. 삼송산성에서 동쪽으로 북태자하를 거슬러 나아가면 평정산(平頂山)을 거쳐 혼강 육도하(六道河) 연안의 환인 목우자진(桓仁 木盂子鎭)이나 구도하자관애(橫道河子關隘)로 진입할 수 있음. 또한 삼송산성에서 북쪽으로 나아가면 소자하 연안의 유수진(楡樹鎭)이나 목기진(木奇鎭) 일대로 연결됨. 따라서 삼송산성은 북태자하 유역과 혼강, 소자하(渾江, 蘇子河) 연안을 잇는 여러 산간로의 전략적 요충지에 자리 잡고 있다고 할 수 있음. 산성 서남쪽으로 15㎞ 떨어진 지점에 태자성산성이 있음.
태자하가 산성 서, 남, 동 세 면을 감싸면서 서남쪽으로 흘러 나감. 산성이 있는 산 아래는 태자하가 범람하여 이루어진 넓은 하곡평지로, 지세는 평탄하고, 토질은 비옥하여, 경작과 목축에 유리함. 성 지세는 동, 남, 북 세 면이 비교적 높고, 서면이 낮음(馮永謙(1997)은 남면도 지세가 낮다고 기록함).
유물정보
기와편(瓦片) 2점, 토기편(土器片) 1점
삼송산성, 태자성 위치도
삼송산성 주변 지형도
참고문헌
· 陳大爲, 「遼寧高句麗山城初探」『中國考古學會第五次年會論文集』, 文物出版社, 1988
· 孫進己·馮永謙, 『東北歷史地理』, 黑龍江人民出版社, 1989
· 東潮·田中俊明, 『高句麗の歷史と遺跡』, 中央公論社, 1995
· 陳大爲, 「遼寧高句麗山城再探」『北方文物』 1995-3, 1995
· 溫秀榮·張波, 「關于撫順地區的高句麗山城」『博物館研究』 1996-1, 1996
· 馮永謙, 「高句麗城址輯要」『高句麗渤海硏究集成』 高句麗 卷(三), 哈爾濱出版社, 1997
· 余昊奎, 『高句麗 城』 Ⅱ(遼河流域篇), 國防軍史硏究所, 1999
· 王綿厚, 『高句麗古城硏究』, 文物出版社, 2002
· 魏存成, 『高句麗遺跡』, 文物出版社, 2002
· 王禹浪·王宏北, 『高句麗·渤海古城址硏究匯編』 (上), 哈爾濱出版社, 2007
· 國家文物局, 『中國文物地圖集』 遼寧分冊(上·下), 西安地圖出版社, 2009
· 魏存成, 「中國境內發現的高句麗山城」『社會科學戰線』 2011-1,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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