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ww.hani.co.kr/arti/legacy/legacy_general/L527877.html


땅이름/ 국내성 ③ 백두산

등록 :2004-04-15 00:00


국내성은 서기 3년에서 427년까지 고구려 서울로서 수많은 유적이 있다. 태왕릉, 광개토대왕비, 장군총(장수왕릉?)을 비롯하여 고구려 무덤떼가 이곳(집안)에 자리잡고 있다. 집자리나 무덤의 방향(좌향)을 잡는 것은 풍수지리에서 썩 중요하다. 신라·백제 왕실과 관련된 유적(황룡사, 정림사, 궁궐터, 석촌 옛무덤떼 일부)들은 한치의 어긋남도 없이 정남·정북 방향으로 자리잡고 있다.


그런데, 국내성 쪽에 있는 무덤과 무덤 안 주검을 모신 자리의 방향을 살펴오던 한 재중동포 사학자는 연구 끝에, 국내성 지역의 모든 무덤은 정북에서 53° 동쪽으로 한치의 어긋남도 없는 배치를 보여준다는 것을 알아냈다. 그 방향은 바로 백두산을 머리에 둔 것이었다. 국내성 옛무덤 중 장천1호 무덤에는 단군신화와 관련되어 곰이 굴에 있는 그림을 그렸을 정도로 옛조선의 내림을 엿볼 수 있다.


앞서 묘향산이 옛조선의 아사달(고시달)이었다고 했다. 어느 땐가부터 백두산이 민족의 성스러운 산으로 자리잡았는데, 그 시점이 바로 고구려의 상징이자 신앙인 하느님(천제)과 하백(땅의 신)이 만나는 곳으로 백두산이 자리잡던 고구려 때부터 이룩된 풍수사상의 한 모습으로 보인다. 고구려를 이었다고 믿었던 금나라나 청나라 여진족도 백두산을 성스럽게 여겼으며, ‘높고 하얀 뫼’(골민 샹갼 알린)라 불렀는데, 이를 한자로 장백산(長白山)이라 적게 되었다. 이곳에 살던 말갈을 백산 말갈로 부르기도 했다. 칼데라호인 천지(天池)의 알타이 이름은 만주실록을 보면 ‘타문’(間門)이다. 책에 따라 장백폭포 물이 나오는 곳을 달문(達門·間 門)으로 부르기도 하는데, 만주어 ‘타문’의 한자표기를 잘못 이해한 것으로 보인다.


최범영/한국지질자원연구원




Posted by civ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