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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혁명군(朝鮮革命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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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1929년 만주 지역에 설립된 조선 혁명당의 군사 조직.
 
[내용]
 
1929년에 남만주 일대의 한인 사회를 관리하는 자치 기관이자 독립운동 단체로 국민부(國民府)가 설립되었다. 이어서 이당치국(以黨治國)의 원칙에 따라 국민부를 지도하는 조직으로서 조선 혁명당이 1929년 12월에 결성되었다. 그리고 조선 혁명당을 지원하는 군 조직으로 조선 혁명군이 창설되었다. 조선 혁명군은 국민부 군사위원회 산하에 있던 군대를 모태로 하여, 7개 부대로 편성되었다. 조선 혁명군은 창립선언문에서 “국민부로부터 엄연히 분립하여 혁명 운동에 대한 군사적 역할을 전적인 임무로 한다.”고 선언하였다. 총사령관은 이진탁(李辰卓)이, 부사령관은 양세봉(梁世奉)이, 참모장은 이웅(李雄)이 맡았다. 1930년 8월에는 7개 부대를 5개 부대로 개편하였는데, 이때 지도부는 제1중대장 김보안(金輔安), 제2중대장 양세봉, 제3중대장 이윤환(李允煥), 제4중대장 김문거(金文擧), 제5중대장 이종락(李鍾洛) 등이었다.
 
조선 혁명군의 창립선언서에 따르면 조선 혁명군의 당면 임무는 “1. 재만한국인 대중에게 혁명 의식을 주입하고 군사 학술을 보급시켜 혁명 전선의 기본 진영을 확립하고, 2. 정치 학식과 군사 기능이 실제 단체의 정치 운동에 적임될 수 있는 기간 인재를 양성하고, 3. 국내 국외에서 일본 제국주의에 대한 정치적 경제적 건설을 파괴하고, 그 주구배(走狗輩)의 기관을 청소하여 기타 일체 반동적 악 세력을 박멸하기로 하고 용감하게 전진하여 대중의 당면 이익을 옹호하여 강력한 투쟁을 전개하고저 한다.”라고 밝히고 있다.
* 주구배(走狗輩) : 다른 이의 앞잡이 역할을 하는 끄나풀을 무리지어 이르는 말
 
1931년 만주 사변이 일어나고 일제가 만주를 점령하자, 조선 혁명당과 조선 혁명군의 간부들은 1932년 1월 17일 향후의 전략을 논하는 회의를 열었다. 이 논의에서 ‘관내 이동론’과 ‘만주 견지론’이 대립하였다. 특히 이호원(李浩源), 김보원, 양세봉 등을 비롯한 젊은 간부들은 ‘만주 견지론’을 주장하였다. 그러나 회의가 밀고에 의해 일제에 탐지되어 이호원, 김보원 등 간부들이 대거 체포되었다. 그 결과 새롭게 조선 혁명군 총사령관에 양세봉이 선출되었다.
 
조선 혁명군은 단독으로 혹은 중국인 무장 부대와의 연합 활동을 통해 수많은 전과를 올렸다. 1932년 3월에 신빈현의 도령(徒嶺) 전투, 영릉가(永陵街) 전투에서 승리하였으며, 1932년 4월부터 10월까지 당취오(唐聚五)의 요녕민중자위군과 공동 연합 작전을 통해 5월에 신개령(新開嶺) 전투와 제1차 신빈현성 전투, 6월에 제2차 신빈현성 전투, 9월에 청원현성 전투, 10월에 무송현성 전투에 참여하였다. 그러나 1932년 10월에서 12월에 걸쳐 일본 관동군과 만주국군의 대규모 공세로 말미암아 요녕민중자위군이 와해되면서 조선 혁명군도 타격을 받았다. 총사령관 양세봉은 1934년 9월 일제의 토벌 부대와 싸우다가 전사하였다.
 
이러한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1934년 11월에 열린 군민 대표 대회에서는 국민부와 조선 혁명군을 통합하여 조선 혁명군 정부(朝鮮革命軍政府)를 결성하였다. 1936년경 조선 혁명군 정부의 총령에는 김동산(金東山), 군사위원장 겸 정치부장에 고이허(高而虛), 군사부장 겸 조선 혁명군 총사령에 김탁(金鐸) 등이 선임되었다. 조선 혁명군은 중국 공산당 계열의 동북인민혁명군(東北人民革命軍) 제1군, 그리고 국민당 계열의 중국인 자위군 왕봉각(王鳳閣) 부대 등과 각각 협력하여 1934년 10월에는 신빈현과 환인현 경계에 있는 홍묘자(紅廟子)와 대청구(大淸溝) 일대에서, 그리고 1935년 7월에는 통화현 이도구(二道溝)에서, 10월에는 신빈현 등지에서 일제와 싸웠다. 한중 무장 부대 사이의 연합 작전이 계속되면서 단순한 연합이 아닌 조직적 형태의 연합으로도 발전하였다. 한검추가 이끄는 조선 혁명군 제2방면군은 1935년 11월에 왕봉각 부대와 연합하여 중한항일동맹회(中韓抗日同盟會)를 조직하였다. 그리고 1936년 2월에는 조선 혁명군이 동북항일연군 제1군, 왕봉각 부대, 항일산림대와 함께 남만 항일연군 임시총사령부(南滿抗日聯軍臨時總司令部)를 결성하였다. 그러나 1936년 10월경부터 시작되어 3년여 간 지속된 일제의 ‘북부동변도 치안숙정 공작’으로 인하여 무장 활동 자체가 크게 위협을 받았다. 주요 간부들이 체포되었고, 일부는 일제에 귀순하기도 하였다. 결국 1938년 조선 혁명군 간부 회의에서 무장대의 해산이 결정되었다.
 
▶ 관련자료
ㆍ조선 혁명군(朝鮮革命軍)
7차 교육과정 고등학교 국사: 국내외 항일 민족 운동
 
 
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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