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4대강 사업 조사에서 해야 할 일 / 오경섭
등록 : 2013.05.14 19:23

오경섭 한국교원대 명예교수

의사가 환자를 치료할 때 같은 병이라도 체질에 따라 처방과 치료 방법을 달리한다고 한다. 그러지 않으면 오히려 병세가 악화하거나 예기치 못한 부작용에 시달린다고 한다. 이와 같은 원리가 어찌 인체에만 국한되겠는가. 하천과 관련된 치수에서도 마찬가지다.

4대강 사업 후 우리 하천은 녹조현상을 포함한 수질 악화, 천변 저지대의 배수 불량, 새로운 인공 물길에 적응하지 못한 지천의 역행침식, 물고기 떼죽음 등의 병고에 시달리고 있다. 마치 합병증 질환을 연상케 한다. 이는 우리 하천 특색에 맞는 치수사업이었다면 도저히 나타날 수 없는 현상이다. 치수와 관련하여 반드시 고려해야 할 한국 하천의 중요한 특색은 다른 나라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모래톱이 잘 발달해 있다는 점이다. 4대강 사업은 이 모래톱의 탁월한 수질정화력과 물저장능력을 최대한 살리는 방향으로 계획되었어야 한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이와는 정반대로 진행되었다.

모래톱이 있기에 우리 하천은 높은 인구밀도에 집약적인 토지이용으로 오염물 부하가 큰데도 좋은 수질을 유지할 수 있었다. 수질이 나쁜 곳이 있다면, 그것은 오염원 통제가 잘 안된 공단이나 도시 인근에서나 나타나는 현상이다. 이렇게 오염된 강물이라도 이곳에서 몇㎞만 흘러가도 다시 맑아진다. 실제로 한국 하천은 유럽 하천에 비해 오염물질 유입이 훨씬 많은데도 모래톱 발달이 미약한 유럽보다 수질이 좋다. 수운보다도 수질 가치가 더욱 중요한 오늘날, 한국 하천의 모래톱은 하늘이 우리에게 베푼 소중한 선물이다.

하천의 모래톱은 부피의 40% 정도가 공극(빈틈)들이므로 여기에는 많은 양의 물이 채워질 수 있다. 모래층의 물저장능력은 사막에서 밀집된 사구층 기저에서 오아시스를 찾을 수 있는 것으로도 입증된다. 연 강수량이 1000㎜ 이상인 우리나라의 강바닥과 강변 모래층에는 많은 양의 물이 저장된다. 여기에 저장된 물은, 특히 갈수기에는 지하수면 하강 속도를 느리게 해주면서 생태계와 인간이 가뭄을 극복하는 데 큰 도움을 준다.

하천으로의 오염물 유입 압박이 크고 계절적 강수 분포가 고르지 않은 우리나라 하천에서 탁월한 수질정화력과 물저장능력을 지닌 모래톱은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이다. 아무리 많은 예산을 들여 인공적으로 수질을 향상시키려 해도 자연 상태 모래톱의 정화력을 따라갈 수 없다. 그리고 모래톱이 잘 발달한 우리나라 주요 하천의 중·하류라면 가뭄 때의 물 부족을 대비한다고 보를 막아 강물을 가둬둘 필요가 없다. 이렇게 가둬둔 물은 쉽게 부패하여 사용할 수 없는 물이 되기 십상이지만, 모래톱에 저장된 물은 좋은 수질을 유지하면서 생명력이 넘치는 하천 생태계를 지탱해준다.

4대강 사업은 모래톱에 저장되는 2억톤(준설한 모래에 저장될 수 있는 수량) 정도의 좋은 물을 반납하고 나쁜 물 5억톤을 저장하는 물그릇을 만든 것과 같다. 지난해의 가공스러운 녹조현상은 이미 예견된 것이었다. 그리고 수질은 고려하지 않고 수량만 따져도 모래톱에 저장된 물은 예비 수자원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한다. 수질 개선과 용수 확보 관점에서 볼 때, 이 사업은 정당화될 수 없다. 또한 홍수 문제와 관련해서도 타당성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이 사업이 이루어진 4대강 본류는 사업 이전의 치수체계로도 홍수 방어가 잘되었기 때문이다.

4대강 사업은 한국 하천에 적용해서는 안 되는 치수 개념으로 강행되었다. 필자는 전 정부가 한반도 대운하를 건설하려 했을 때부터 줄곧 언론 매체와 학회 활동을 통해 이러한 문제점들을 지적해왔다. 이는 이 시대의 지형학 전문 학자로서의 소임을 외면할 수 없었고 후일 나타날 수 있는 문제점들을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될 자료라도 남겨야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새 정부가 추진하는 4대강 사업 조사에서는 당연히 사업 관련 비리와 설계·시공 부실이 밝혀져야 한다. 그리고 이것이 한국 하천의 특색에 맞는 치수사업이었는지도 철저히 검증해야 한다. 그래야만 4대강 사업 후에 나타나는 우리 하천의 문제점들을 해결할 최선의 방법을 찾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는 합리적이면서도 지혜롭게 모래강을 회복시키고 강물이 가능한 한 자연스럽게 흐르도록 하는 방법도 신중히 검토되기를 바란다.

오경섭 한국교원대 명예교수



Posted by civ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