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커먼 아라뱃길, 낯뜨거운 성인쇼
아시아경제 | 김봉수 | 입력 2013.05.20 11:10

"아라뱃길 관광 온다고 멀리서 왔는데 한강유람선 탔을 때보다도 주변에 볼 게 없어 실망이 크다"

지난 18일 오후 경인아라뱃길. 황금 연휴임에도 승선 인원 685명의 겨우 절반 정도만 태운 유람선 '하모니호'가 오후4시30분쯤 김포터미널을 출발했다. 배가 떠난 후 다소 차분해졌던 선실 내부는 이내 시끄러운 음악 소리와 함께 시작된 '성인용 쇼'로 후끈 달아올랐다.


외국인 무용수들은 팔 다리, 등이 훤하게 드러나는 미니스커트ㆍ비키니 차림으로 무대에 올라 음악에 맞춰 몸을 흔들어댔다. 사회자가 콜롬비아, 러시아 등에서 왔다고 소개한 무용수들은 도심이나 관광지 유흥가 나이트 클럽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차림새로 삼바춤, 스포츠 댄스 등의 공연을 펼쳤다. 삼바춤을 춘 남녀 무용수들은 실제 브라질 삼바 축제 때처럼 온 몸을 대부분 드러내는 비키니만 입고 나와 춤을 췄다.

더 심각한 것은 공연 이후였다. "1층에선 디너크루즈가 진행되니 2층 선실로 올라가 달라"는 말에 2층 선실로 이동한 승객들에게 기다리고 있는 것은 '술판'이었다. 상당수의 단체승객들은 가방에서 소주를 꺼내 삼삼오오 모여앉아 나눠 마시기 시작했다. 잠시 후 취기가 오른 이들은 아예 이곳을 '노래방'으로 여긴 듯 마이크를 잡고 트로트 노래 연주에 맞춰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기 시작했다.

성인용 쇼와 민망한 술판ㆍ춤판이 이어지자 가족 승객들은 대부분 아이들과 함께 선실 밖으로 '피하는' 모습이었다. 이들에게선 "비싼 요금을 내고 탔는데 마땅히 볼 만한 것이 없다"는 불평이 터져나왔다. 출항 전 나눠받은 책자엔 선상 관람 프로그램으로 '수향 8경'이 소개돼 있었지만, 인공 폭포 정도가 그나마 볼 만할 뿐 나머지는 '볼거리'라고 부르기가 민망할 정도였다. 선실 매점에서 산 과자를 뒤따라오는 갈매기에게 던져주는 것이 거의 유일한 재미였다.

승객 강은정(37)씨는 "애들 데리고 연휴에 그래도 볼 만한 곳이라고 해서 왔는데 1만6000원이라는 요금에도 불구하고 그냥 앉아서 쇼만 보여주는데, 그나마 그것도 아이들과 함께 보기가 민망할 정도였다"고 불평했다.

이같은 아라뱃길 유람선의 성인용쇼는 지난해 초에도 문제가 됐었다. 당시 수공 측은 이 같은 논란에 대해 "바꾸겠다"고 약속했지만 잠시 '건전화'되는 듯했던 유람선 쇼는 다시 예전으로 돌아간 것이다. 애초 주변 볼거리 부재 등 여건이 갖춰져 있지 않아 '싹수가 없었던' 아라뱃길의 관광 수요를 결국 '벌거벗은' 무용수들의 '선정적 공연'으로 채우려 나선 모양새다.

반면 유람선 터미널 건너편에 위치한 김포터미널 물류단지는 마치 유령의 도시처럼 썰렁했다. 8만여㎡에 달하는 이 곳에는 굉음을 내며 컨테이너를 싣고 내려야 할 대형크레인 2대가 미동도 없이 서있었다. 컨테이너 야적장은 아예 '개미 한마리 없는 듯' 정적 그 자체였다. 텅빈 도로의 신호등만 노란불을 깜박거리고 있었다. 아라뱃길이 개통되면 인천을 통해 오가는 한국-중국간 화물 중 상당수가 옮겨 올 것이라는 예측과는 너무도 거리가 멀었다.

이날 아라뱃길 여행에서 승객이나 화물보다 더욱 눈에 띈 것은 검은색의 물빛이었다. 물속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물가에 놓여있는 바위들 위에는 하나같이 진녹색의 녹조류가 붙어 있었다. 물에서는 짠내가 나고 유람선을 타고 이동하면서도 볼 수 있었던 동물은 갈매기가 전부였다. 한강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청둥오리, 왜가리 같은 새들도 전혀 볼 수가 없었다. 수공 측은 현재 한강 하류(행주구간)과 유사한 4등급 수준으로 관리하고 있다고 하지만, 과연 이런 물속에서 누가 수상 스포츠를 즐길 것인지 의문스러웠다. 생명들이 제대로 살아 숨 쉴 수 있을지도 걱정됐다.

실제 지난 2월 한 조사 결과 물속 대장균 수가 100㎖ 당 5만8165개에 달해 수영(100㎖당 1000개) 조차 할 수 없는 물로 밝혀졌다. 이를 증명하듯 김포터미널의 계류장에 정박해 있는 고가의 요트ㆍ모터보트ㆍ카누들은 먼지가 잔뜩 끼고 녹슬어 있었다. 이명박 정권이 한반도 대운하의 '테스트 베드'라는 정치적 이유로 2조2000억원이라는 어마어마한 혈세를 들여 건설한 아라뱃길의 암울한 현실과 미래를 상징하는 듯 했다.

김봉수·이현우 기자 bs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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