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소밭엔 자전거길, 수박밭엔 물난리"
2013-05-22 13:40:32 | 단비

‘두물머리’로 불리는 경기도 팔당의 유기농 단지는 강물을 따라 흐르던 유기물이 강변에 쌓여 기름진 논밭을 이룬 곳이다. 여기서 농사를 짓던 유영훈 팔당유기농지회장은 4대강 공사로 자전거길을 만든다며 이런 옥토를 갈아엎은 정부에 한이 맺힌 듯, 비분강개한 표정이었다.  
 
“새 농지를 못 구한 팔당 농민들은 파종을 못한 채 손을 놓고 있습니다. 인근 도시에 매일 채소를 공급해 오던 유기농 생산기반은 다 파괴됐고요. 올 여름에 과연 채소 가격이 정상적으로 유지될 수 있을지, 지켜보시면 알 겁니다.”
 
▲ 팔당유기농지 유영훈 회장. ⓒ 이성제
 
지난 20일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열린 ‘4대강불법비리 진상조사위 출범 및 4대강사업 피해증언대회’에는 유 회장 등 피해 농민과 지역환경운동가 등이 나와 무리한 공사가 낳은 농업피해와 문화재파괴, 건설노동자착취, 환경파괴 등을 절절히 고발했다.
 
물 찬 농지에서 과일은 썩고 송아지는 죽어 나가고
 
“지난 8일 포크레인으로 땅을 팠을 때 1.2미터(m) 밑에서부터 물이 차올라 15분 만에 30센티미터(cm)가량 찼습니다. 지표면에서 30cm까지는 물로 철벅철벅하는 땅이 많았어요. 그 정도로 습지화가 다 됐다는 말입니다.”
 
수박 산지로 유명한 경북 고령군 우곡면 ‘연리들’은 약 2년 전 낙동강 합천보가 생긴 이후 침수 피해를 겪고 있다. 이곳 농사꾼인 박상수(44)씨는 “침수에 취약한 곳의 시설하우스 330동 가운데 80%가량인 280동이 피해를 입었고 그 중 40동은 수확이 불가능할 정도”라고 말했다. 고령군 전체로 보면 수박과 메론을 재배하는 우곡면과 성산면의 시설하우스 5300동 가운데 20% 가량인 1000동 이상이 피해를 입었다고 한다. 
 
“지금쯤 수박이 농구공 크기가 되고 출하를 해야 하는데 핸드볼공 크기 정도밖에 안돼요. 정상적이라면 7~8킬로그램(kg) 돼야 하는데 한 4kg 내외에 불과합니다. 잎이 바싹 마르고 수박이 쪼글쪼글해요. 그 정도로 심각한데도 정부에서는 ‘조사를 하고 있다’ ‘조사 결과를 보고 얘기 하겠다’고만 말합니다.”
 
▲ 4대강 보 상류 지역의 농지들은 땅밑으로 스며드는 물 때문에 질퍽거린다. 작물이 썩고 가축이 병에 걸린다. 농민들은 보 수위를 2m만 낮춰달라고 정부에 요구하고 있다. ⓒ 이성제
   
▲ 낙동강변을 따라 형성된 농지(붉은선). 4대강 보 건설 이후 침수피해를 입는 농지들이 늘고 있다. 합천보 상류 '연리들'은 침수로 수박 농사에 어려움을 겪는다.ⓒ 이성제
 
낙동강 칠곡보 주변도 비슷한 상황이다. 칠곡보 상류인 경북 칠곡군 덕산리에서 30년 넘게 농사를 지어온 전수보(62)씨는 “칠곡보 수위 25.5m보다 낮은 땅들이 많다”며 “작년부터 농사가 안 되더니 올해는 씨앗 뿌리고 감자 심고 한 게 다 썩어버렸다”고 말했다. 또 땅 밑에 물이 있으니 송아지들이 병에 걸려 설사도 많이 하고 폐사율이 높다고 덧붙였다.
 
비가 조금만 와도 침수되는 곳  늘어
 
광주환경운동연합 최지현 사무처장은 영산강 죽산보 일대의 침수피해를 증언했다. 최 처장은 “죽산보 인근 낮은 지역에서부터 피해가 일어나고 있다”며 “지난해 12월말 피해 규모가 10헥타르(ha)라고 했는데, 지금은 인접지역이 아닌 나주시 이창동 일대까지 범위가 확대되고 있다”고 말했다. 또 하천 수위가 올라가면서 자연 배수가 잘 되지 않고 펌프장을 가동하지 않으면 물을 뺄 수 없는데다 작은 비에도 침수 피해를 우려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한다.
 
“강수량이나 기타 여건의 변화가 없는데도 농지 침수가 일어난다는 점에서 죽산보 때문이라는 게 자명합니다. 농민들은 전체 피해 지역에 대해 농지 리모델링(강바닥에서 퍼낸 흙으로 농지를 높여주는)을 해주거나 (보의) 수위를 2m만 낮춰달라고 요구하고 있지만, 정부는 피해 원인에 대해 300일 동안 조사한 뒤 판단하겠다고 합니다. 농민들은 분통을 터뜨리고요.”
 
▲ 영산강 죽산보 상류인 신석리와 옥곡리, 멀리 떨어진 이창동까지 침수피해가 발생하고 있다. 보 건설로 이전보다 강 수위가 올라가면서 자연 배수가 어려워졌다. ⓒ 이성제
 
고고학 유적 훼손되고 임금체불 등 노동자 피해도
 
한편 황평우 한국문화유산정책소장은 “4대강 사업을 진행하면서 고고학 조사 시 가장 중요한 수중조사를 다 빼버렸다”며 “전 세계 고고학사에서 이렇게 비참하게 유적을 훼손시킨 경우는 없을 것”이라고 규탄했다. 예를 들어 경기도 여주의 이포·강천에서 65곳의 유물 산포지를 모두 조사해야 하는데 딱 3곳만 했고, 수백 곳의 골재 야적장 관련 유적 조사도 딱 4곳만 했다고 한다. 황 소장은 “감사하면 어마어마한 상황이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전국건설산업노조연맹 대구경북지부 송찬흡 지부장은 건설노동자 착취문제를 고발했다. 송 지부장은 “건설노동자들은 4대강으로 돈 좀 벌지 않았냐고 하지만 임금체불 안 된 곳이 없었다”며 “가정이 파탄 나고 신용불량자로 살아가는 분들이 많다”고 말했다.

대전환경연합 이경호 국장은 공사로 인한 환경파괴를 지적했다. 이 국장은 “금강의 경우 9일간 물고기 30만 마리가 떼죽음 당하는 일이 벌어졌다”며 “최근 조사 결과 조류 개체 수는 1/3로, 종 수는 절반으로 줄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런 환경파괴가 아직도 진행 중이라는 점이 더 문제”라고 덧붙였다.
 
*이 기사는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 온라인 미디어 <단비뉴스>(www.danbinews.com)에도 실렸습니다



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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