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양강댐 따위는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
등록 : 2013.05.24 20:25 수정 : 2013.05.26 15:07

1973년 북한강에 소양강댐이 들어서면서 강원도 양구는 육지 속의 섬이 됐다. 양구군은 소양강댐 준공 이후 3조원 가까운 피해를 본 것으로 추산된다. 8일 강원도 춘천시 쪽에서 바라본 소양강댐 전경. 춘천/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토요판/커버스토리] 댐의 과거·현재·미래
경부고속도로, 지하철과 함께 박정희 대통령이 직접 챙긴 3대 국책 사업이었던 소양강댐, 경제 발전의 상징적 존재였지만 치른 비용이 이익을 훨씬 넘어서 착공 직전 417개였던 대형댐이 1213개로 늘어난 36년 사이 동강댐 계획 백지화 시작으로 댐의 시대는 저무는 듯했다. 그러나 4대강 사업과 함께 댐 건설계획이 추가되는데…

내비게이션에도 표시되지 않은 터널을 지났다. 길이 5㎞, 지난해 3월 개통된 배후령 터널을 지난 자동차가 향하는 곳은 강원도 양구다. 춘천과 양구를 잇는 이 터널이 개통됨으로써 양구는 ‘40년 오지’를 벗어나게 됐다.

40년 전 소양강댐이 준공된 뒤 양구는 육지 속의 섬이 되었다. 도청 소재지인 춘천까지 비포장도로로 40분 걸린 길이 소양호를 에둘러 가면서 소요시간은 3시간으로 늘어났다.

소양강댐은 경부고속도로, 서울지하철 1호선 등 박정희 전 대통령이 직접 챙긴 ‘3대 국책사업’ 중 하나였다. 1967년 착공된 소양강댐은 원래 콘크리트 중력식으로 설계됐으나, 현대그룹 정주영 회장이 비용 절감과 안전성에 좋다며 흙과 자갈로 쌓아올린 사력댐을 제안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당시 공사를 맡은 현대건설의 시공이사였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댐의 시대를 열어젖혔다. 1965년 섬진강댐, 1970년 남강댐 다음 세번째 다목적댐인 소양강댐(1973년)이 완공됐고 이후 안동댐(1977년), 대청댐(1981년), 충주댐(1986년) 등 박정희 시대에 착공한 댐이 차례로 완공됐다. 당시 동양 최대의 다목적댐이자 사력댐이었던 소양강댐은 박정희 정권과 우리나라 댐의 자부심이었다. 1972년 11월25일 박정희 전 대통령이 소양강댐 진수식에 참석해 한 치사는 개발과 댐의 시대를 선포하는 선언문과도 같다.

“유신사업이라는 것이 무엇이냐, 국민들이 한데 뭉쳐 힘을 합쳐서 조국을 빨리 안정되고 부강한 나라로 만들자는 것입니다. 우리가 추진한 유신과업 중에서도 중요한 사업의 하나라고 확신합니다.”

높이 123m, 길이 530m, 총 저수량 29억㎥의 소양강댐은 경제 발전의 상징적 존재였다. 5억㎥의 홍수조절 능력을 갖춰 한강의 홍수를 줄여줬고, 12억㎥의 용수공급 능력, 연간 353만㎾의 전기를 생산한다. 반면 50.21㎢가 수몰됐고 1만8546명(3153가구)이 고향을 떠난 어두운 측면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안개도시가 된 양구 “42년 피해액 2조9970억”


“원래 양구가 춘천에서 가장 가까운 곳이었습니다. 소양강댐이 생기고 3시간이 걸렸는데, 얼마나 높고 구불구불한 산길이었던지, 당시 신문만평에 비행기가 버스보다 더 낮게 날아가는 장면이 그려졌어요.”

8일 임철호 양구군 기획감사실장이 말했다. 춘천에서 양구를 더 빨리 가기 위해서 ‘쾌룡호’라는 배를 탔다. 그렇게 해봐야 1시간 반 가까이 걸렸다.

“교통이 안 좋다보니 전국에서 가장 비싼 연탄을 땠어요. 그 여파가 이어져 지금도 강원도에서 유류비가 최상위권입니다.”

이신혁(82)씨는 소양강댐 건설로 수몰된 양구군 수인리에 살고 있다. 댐에 물이 막히기 전만 해도 160가구가 살았는데, 130가구가 고향을 떠났다고 말했다. “옥수수, 감자 심던 밭 100평(330㎡)에 100만원 받았어. 나야 집이 수몰되지 않았지만, 집이 수몰된 사람들은 이주비도 못 받고 고향을 떠났어. 박정희 때는 꼼짝도 못했지. 항의도 못하고.”

양구군은 최근 들어 소양강댐으로 인한 ‘역사적 빚’을 돌려받겠다며 적극적인 행보에 나서고 있다.

양구군이 지난해 12월 강원발전연구원에 의뢰해 작성한 ‘소양강댐 건설로 인한 양구지역 피해 산정’ 보고서를 보면, 소양강댐 본댐의 축조공사가 시작된 1970년부터 2011년까지 42년 동안의 피해액이 2조9970억원으로 산정됐다. 부문별로 살펴보면 △농경지 수몰 피해액 3264억원 △교통손실액 1조5149억원 등으로 평가됐다. 한해 약 713억원꼴로 손해를 본 셈이다.

특히 주목되는 것은 안개에 따른 피해가 상존한다는 점이다. 댐으로 인해 거대한 호수가 생기면 안개가 자주 생긴다. 1966년 양구의 연간 안개일수는 26일이었지만, 1993~2010년의 평균 안개일수는 123일로 무려 5배로 늘어났다. 가을이 되면 양구는 안개도시가 되었다. 9월에는 한달의 절반 이상인 18일, 10월에는 13일 안개는 양구를 뒤덮었다.

양구군 관계자는 “양구 어르신들은 기관지병을 달고 다닌다는 말이 있다”고 말했다. 안개가 끼면 대기오염물질과 미세먼지 농도가 높아지면서 호흡기 질환 위험성이 커진다. 강원발전연구원은 안개에 따른 농작물 피해액 1034억~1689억원 말고도 안개 때문에 주민 진료비가 348억~695억원 늘어나게 됐다고 추정했다.

강원도 양구는 소양강댐, 평화의 댐 등 여러 댐이 인접해 일부 마을의 육로가 끊겼다. 8일 상무룡2리 등 고립된 마을로 오가는 배의 모습. 양구/강재훈 선임기자

“댐 건설 때문에 소양호는 2급수로 전락”

소양감댐으로 인한 편익도 다시 따져봐야 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댐의 경제성은 시간이 갈수록 떨어진다. 초기 용수공급, 전기이용 등의 효과가 있지만 수질악화, 기상변화 등 피해는 장기적으로 확산되기 때문이다.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이 2003년 펴낸 ‘환경을 고려한 다목적댐의 가치 추정에 관한 연구’를 보면, 수질악화 피해비용을 고려할 때 소양강댐으로 인한 비용이 이익보다 더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2003년 기준으로 소양강댐에 투입되는 연간비용은 238억200만원이지만 편익은 213억5400만원에 지나지 않는다.(감가상각률 8% 적용 때) 연간 약 25억원의 손해가 나는 셈으로, 비용-편익 분석인 B/C 비율을 따졌더니 0.97이 나왔다. 감가상각률 7%를 적용해도 1을 갓 넘는 1.08로 분석됐다. 일반적으로 B/C 비율이 1보다 적으면 경제성이 없다. 소양강댐 건설 직후인 1974년의 B/C 비율은 1.23(7% 적용)이었다. 환경정책평가연구원은 “댐이 건설되지 않았다면 끓이지 않고 식수로 사용 가능한 수준인 1급수가 유지됐겠지만, (댐이 건설된 뒤) 소양호는 오염돼 2급수로 전락했다”고 밝혔다.

양구군과 군의회는 정부에 소양강댐 건설 피해와 관련한 특별지원을 요청하고 있다. 양구지역에서 특별 지원사업이 시행돼야 하고, 댐 주변지역에 주어지는 지원사업비의 배분 방식도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임철호 양구군 실장은 “댐 주변지역 지원의 배분 방식이 유역면적과 인구수에 비례해 엔(n)분의 1로 나누고 있다. 소양강댐으로 관광 수요가 창출된 춘천이나 소양호 경계만 걸치고 있는 홍천에 비해 더 많은 지원을 받아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고 주장했다.

소양강댐으로 표상된 댐의 시대는 2000년대 들어 저물기 시작한다. 댐 만능론이 도전받게 된 것이다. 1999년 영월의 동강댐 건설계획이 백지화된다. 대형 다목적댐이 여론과 주민의 반대로 취소된 것은 처음이었다. 2000년에는 20여개의 댐 건설계획이 포함된 수자원장기종합계획(2001~2011)이 발표되자, 물 수요 과다 예측 등의 문제가 제기됐고, 환경단체 등의 참여로 2006년 수정 계획이 확정된다. 23일 환경운동연합의 이철재 정책위원은 이때 개정된 수자원장기종합계획이 강에 대한 새로운 철학을 보여줬다고 말했다.

“강의 일부로 홍수를 인정한 건 처음이었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우리는 댐과 제방 등 구조물로 홍수를 막으려고만 했거든요. 하지만 바뀐 수자원장기종합계획에서는 ‘기후변화 시대에 댐으로 홍수를 원천적으로 막을 수 없다’는 세계 흐름에 맞춰 강의 공간을 보장해주기 시작했죠. 홍수터 확보, 홍수예·경보제, 풍수해보험 시행 등 비구조물적인 대책이 마련됐습니다.”

정부 정책도 ‘인공적인 하천 관리’에서 ‘자연형 하천 복원’으로 방향이 바뀌어 갔다. 국토해양부(현 국토교통부)는 2004년 ‘자연친화적 하천정비기본계획 수립지침’을 마련해 강 고유의 선형과 공간을 보전하는 관리기법을 제시했다.

하지만 2008년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정책 방향은 급선회하게 된다. 한강, 낙동강, 영산강, 금강 등에 사실상의 댐인 16개 보를 건설하는 4대강 사업이 최대 국책사업이 되면서부터다. 이철재 정책위원은 “2011년 수자원장기종합계획(2011~2020)도 4대강 사업을 지지하는 계획으로 바뀌었고, 또다시 10여개의 댐 건설계획이 추가됐다”고 말했다.

아직도 댐이 더 필요한 걸까? 댐 설계를 맡아온 최석범 기술사는 “소양강댐은 시대적으로 필요한 측면이 있었지만 더 이상 소양강댐 같은 댐은 필요하지 않다”고 말했다.
“서울 한강의 홍수 피해가 줄어든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각 지역에 생긴 배수펌프장 관리가 잘된 덕택도 크지요. 댐을 만들면 홍수조절 효과가 있습니다. 다만 투자 대비 효과를 따져봐야 하는데, 지금 만드는 댐에서는 효과가 별로 없어요. 우리나라 하천 곳곳에 댐을 지을 만큼 지었거든요.”

무너진 연천댐, 동막댐, 장현댐…

댐에 대해 알려지지 않은 또다른 사실은 댐이 연달아 무너지고 있다는 것이다. 1996년 오른쪽이 무너진 경기도 포천의 연천댐은 부실공사 논란을 불러오며 1999년 왼쪽 둑이 무너졌다. 이 댐 건설은 이명박 전 대통령(당시 현대건설 대표)이 진두지휘했고, ‘홍수 피해 때 현대건설이 보상조처한다’는 각서에 서명을 하기도 했다. 강원 동막댐은 2002년 완전 붕괴됐다. 2002년 강원 강릉 장현댐, 2004년 광주 운정저수지 등도 무너졌다.

댐이 무너지는 이유는 기후변화로 인해 한꺼번에 많은 비가 많이 내리고 있기 때문이다. 댐은 극한강우량(PMP)에 안전하도록 댐의 높이를 충분히 높게 짓는다. 하지만 과거 200년에 한 번 정도 발생할 홍수량으로 계산해 댐 규모를 결정했는데, 지금 와 보니 불과 몇십년 만에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댐 본체 증고 △댐 측면에 보조여수로 건설 △상류에 댐 건설 등의 방법을 통해 홍수 위험을 낮춘다. 소양강댐의 경우 애초 극한강우량 632㎜에 버티도록 설계됐으나 근래 들어 810㎜의 비가 옴으로써 설계를 변경해야 했다. 이에 따라 극한강우 때 댐 수문 외에도 물을 방류할 수 있는 보조여수로가 2010년 완공됐다. 최석범 기술사가 말했다.

“충주댐이나 임하댐, 남강댐도 댐 증고를 해야 하는데, 그 방법 말고 상류에 댐을 만들어 용수공급량을 줄이는 방법으로 해결책을 찾는 거지요. 충주댐 상류에는 오대천, 임하댐 상류에는 영양댐, 남강댐 상류에 지리산댐을 만드는 겁니다. 댐이 댐을 부르는 거지요.”

소양강댐 이후 얼마나 많은 댐이 생겼을까? 소양강댐 착공 직전인 1965년 417개이던 대형 댐은 2001년 1213개로 300% 늘었다. 중소형 댐을 포함한 전국의 댐은 약 1만8000개로 추산된다(제4차 수자원장기종합계획). 이렇게 댐이 많은 이유는 소양강댐, 충주댐 등 초대형 다목적댐 말고도 관개용수댐, 양수발전댐, 생활공업용수댐 등을 각 부처와 지방자체단체 등이 경쟁적으로 지었기 때문이다. 현재도 영주댐 등 다목적댐 5개와 높이 83m의 한탄강댐 등 홍수조절댐 2개 등 모두 7개의 댐이 건설되고 있다. 최석범 기술사는 “이제 4대강 본류 말고는 더 이상 지을 곳이 없을 정도다. 그나마 남은 본류도 4대강 사업을 통해 보를 건설해 물길이 막혔다”고 말했다.

이신혁씨는 지금도 기회가 있을 때마다 옛날 북한강변이 참 좋았다고 말했다. 그는 “계곡이 절경지, 지금으로 치면 일류 관광지야. 소양강댐보다 훨씬 아름다웠다”고 말했다. 소양강댐으로 우리가 얻은 것은 무엇이고 잃은 것은 무엇일까? 8일 오후 소양호에는 뽕짝 노래가 울려 퍼지고, 청평사를 향해 유람선이 떠나고, 사람들은 산꼭대기만 남겨둔 호수 앞에서 하늘하늘 거닐었다.

춘천/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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