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은 마을에 웬 댐이래요?”
등록 : 2013.05.24 20:33 수정 : 2013.05.26 15:08  

지난달 30일 오후 경상북도 영양군 수비면 송하리로 들어가는 송정교 위로 ‘영양댐 건설 백지화’를 촉구하는 깃발이 휘날리고 있다. 송하리는 영양댐 건설이 예정된 마을 중 하나로, 마을 사람들이 다리 옆에 세운 임시건물에서 24시간 동안 마을 어귀를 지키고 있다. 영양/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토요판/커버스토리]댐의 나라 영양·영덕·정선·평창 르포

▶ 경제를 살리고, 기후변화를 대비해 수자원을 확보하고, 홍수를 예방하겠다던 4대강 사업은 녹조현상으로 물이 썩고 온갖 비리로 얼룩져 심판대에 올랐습니다. 14개의 댐 건설계획 역시 유지용수 확보와 공업용수 공급, 관광지 개발과 홍수조절이 목적입니다. 그러나 댐 존재 이유가 불분명하고 비용 대비 편익은 낮고 주민 반대가 거세고… 댐 추진지역 곳곳에서 4대강 사업이 떠오르는 건 단순한 기시감일까요? 국가 및 자본권력이 강을 통제하려는 욕망은 여전합니다.

가리왕산 경치 자랑하던 강원도 정선군 숙암리 김씨는 오대천에 댐이 생기는지 몰랐다. 댐 예정지마다 돌아다니며 땅 매입하는 투기꾼도 있었다. 환경부는 경제성이 부족하고 환경파괴 소지가 있다며 재검토를 요구했지만 국토해양부는 대선 이틀 전 2020년까지 댐 14곳 짓겠다는 ‘댐건설 장기계획’을 발표했다

“오대천에 댐이요? 그런 말 처음 들어요.”


2일 오전 강원도 정선군 북평면 나전2리에서 상점을 운영하는 김영수(69)씨가 의아한 표정으로 말했다. 김씨 부부의 상점은 119m 높이의 절벽에서 떨어지는 물이 장관인 백석폭포 앞에 있다. 5월 초순인데도 기세 높게 철철철 물이 흐르고 사방에서 새들이 지저귄다. 조선시대에도 입산을 금지할 만큼 생태환경이 뛰어난 가리왕산과 오대산국립공원이 지척에 있다.

옆 마을 숙암리 주민들도 오대천이 댐 건설 예정지로 거론되는 것을 모르기는 마찬가지였다. 어머니와 함께 산마늘밭에서 김을 매던 김아무개(48)씨는 이곳이 40년째 산 고향이라며 가리왕산의 경치를 자랑하기 바빴다.

“가을에 가리왕산 정상에 오르면 산 아래로 단풍이 꼭 꽃보자기 펼쳐놓은 듯 경치가 끝내줘요. 괜찮은 마을에 웬 댐이래요?”
10년 넘게 살았다는 주민 고아무개(33)씨 역시 생소한 듯 갸웃거렸다. 숙암리 이장 권현숙씨만 입소문을 들었다며 댐 건설이 본격화되면 주민들과 뜻을 모아 결사반대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현장에서 확인한 댐 건설의 주체는 ‘지역 주민’이 아닌 ‘국가’였다.

당신이 모르는 사이에 댐 건설이 추진된다. 예정 지역만 14곳이다. 국토교통부가 지난해 말 발표한 ‘2012~2020년 댐건설 장기계획’을 보면 다목적댐 4개(낙동강 장파천, 낙동강 대서천, 금강 지천, 섬진강 내서천)와 홍수조절댐 2개(한강 오대천, 낙동강 임천) 등 저수용량 최대 1억7000t의 댐 6개를 만들고, 저수용량 2000t 미만의 댐 8개가 추가로 지어질 예정이다. 환경부는 전략환경영향평가에서 4대강 사업으로 확보했다는 13억t의 수자원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을 뿐 아니라 경제성 부족과 환경파괴 소지 등을 이유로 댐 건설을 재검토하라고 요구한 바 있다.

4월30일부터 5월2일까지 사흘 동안 장파천(경북 영양), 대서천(경북 영덕), 오대천(강원 정선·평창) 등 예정지 세 곳을 둘러봤다. 댐 건설을 둘러싼 사회적 갈등은 과거와 마찬가지로 끓어오르고 있었다. 보상을 더 받을 수 있다는 일부 주민의 ‘기대’와 가난한 지방의 국책사업 ‘유치’라는 욕망이 고향을 떠나야 하는 수몰민의 분노와 결의 사이를 파고들었다. 둘 사이에서 이윤을 챙기는 토건권력의 욕망까지 강을 따라 흘렀다.

정확히 오대천의 어디쯤 댐이 건설될지는 결정되지 않았다. 소문과 추정만 무성할 뿐이다. 다만 오대천의 어느 곳이든 댐이 건설되면 넓은 수몰지역과 도로 끊김으로 방대한 지역이 영향을 받는다.

59번 국도를 따라 이어지는 깊은 협곡을 지나 장전계곡에 도착했다. 지난 1월 <강원일보>가 ‘장전댐’ 건설 예정지라고 보도한 지역이다. 홍수조절을 위한, 오대천의 가장 강력한 댐 후보지다. 근처인 평창군 진부면 수항리에서 부동산을 운영하는 임세식(48)씨는 댐 건설에 찬성했다. 그는 “4대강 사업도 마땅히 할 이유가 있어서 세금을 20조원 이상 썼지 않았겠나? 소는 희생하는 것이 세상 이치다. 나는 댐 건설이 확정되면 떠나겠다”고 말했다.

취재에 동행한 황인철 녹색연합 4대강현장팀장은 댐 건설로 홍수피해를 막을 수 있다는 생각이 틀렸다고 주장했다.

“오대천댐에 대해 환경부가 전략환경영향평가를 내놓은 게 있어요. 국립공원 인근 지역의 댐 건설이 바람직하지 않은데다, 이곳에 홍수조절댐이 왜 필요한지, 하류 지역의 홍수피해 내용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국토부가 제시하지 못했다고 지적하지요. 한마디로 말해 댐의 필요성을 인정하기 어렵다는 겁니다.”

목적이 불분명한 댐 건설이 지역공동체를 깨뜨리는 곳은 이곳만이 아니다. 재개발 현장에나 있을 법한 ‘알박기’ 현상이 이미 나타나고 있다는 증언도 이어졌다. 1일 오후 달산댐 건설이 추진되고 있는 경북 영덕군 달산면에서 만난 박종읍(66)씨는 2011년 봄 인근 경북 영천의 보현댐 부근에서 이사온 이웃의 부탁으로 자신의 트럭에 이웃의 나무를 싣고 배달했다. 10만원의 삯도 받았다. 주민들은 새로 이사온 이웃이 더 많은 보상을 받으려고 나무들을 심기 위해서 배달을 부탁했고 보현댐에서 온 것을 미루어 짐작해 댐 예정지마다 돌아다니며 땅을 매입하는 투기꾼이라고 의심하고 있었다.

같은 날 주민들로부터 투기꾼으로 지목받은 또다른 주민(68)은 집 앞 밭에서 포도나무를 가꾸고 있었다. 도로변 새집으로 이사온 게 2년 전이었다. 안쪽 집보다 보상을 더 많이 받기 위해서 도로 가까이로 나왔다고 그는 말했다. 촘촘하게 심은 포도나무 옆 좁은 이랑에 옥수수를 심던 그가 말했다.

“보상 더 많이 해준대? 사람들 다 속으로 보상 많이 받고 싶어하지. 티 안 낼 뿐 다 같은 맘이야. 이주단지 만들어 준다고 하니 거기 들어가서 쉬어야지. (달산댐이 포항에 건설될 산업단지에 물을 대주기 위한 것 아니냐는 말에) 수자원공사 말이 영덕이 쓰고 남는 물만 포항에 준다 하던데?”

달산면 마을청년회장인 최광해(44)씨에게 포도나무집 사람 이야기를 하자 눈을 찌푸렸다. 최씨는 영덕 주민 7000명의 달산댐 반대 서명서를 보여주며 “아무도 그 집 사람들을 모르고, 서로 왕래하지 않는다”고 잘라 말했다. 달산면은 삼대 이상이 모여 사는 종친이 많은 마을이라며 외지인이 들어오면 눈에 띈다고도 말했다. 너비 582m 이상, 높이 51.5m의 큼지막한 달산댐은 2011년 3월 예비타당성조사 결과 비용편익비율이 1 대 0.81로 환경운동연합은 연간 17억원의 적자를 예상했다.

5700t 영양댐 건설되면 56가구 물에 잠겨

지난달 30일 오후 경북 영양군 수비면 입구에는 전운이 감돌았다. 다리에 걸린 깃발들, 펼침막에 적힌 살벌한 글씨가 갈등 지역임을 드러냈다. 수비면 송하리는 너비 480m, 높이 70m 이상으로 들어설 영양댐(저수용량 5700t)의 예정지로, 56가구가 물에 잠긴다. 이상철(61) 영양댐 반대 주민대책위원장은 지난 2월26일을 잊지 못했다. 수자원공사의 하청을 받은 용역사 직원들이 타당성조사를 하기 위해 실측장비를 싣고 마을에 들어온 날이었다. 이 위원장이 말했다.

“새벽에 개가 막 짖길래 나갔습니다. 군에서는 젊은 사람들 일부만 반대한다는데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다 막아냈어요. 그분들이 차 앞에 드러누워 막아냈어요.”

지금도 반대 쪽 주민들은 마을로 들어오는 다리 앞에 컨테이너를 두고 하루 세 명씩 24시간 교대근무를 선다. 최근 <한국방송>의 시사프로그램 ‘추적 60분’에서 영양댐 건설을 주도한 권영택 영양군수의 비리 의혹을 캔 보도가 나간 뒤 반대 주민들을 응원하는 사람이 많아졌다고 전했다.

수몰지구 내 찬성 쪽 주민 대표인 송하리 북수마을 이상칠(54)씨도 작은 마을에서 서로 다투는 지금의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댐 건설은 찬성이다. 이씨가 말했다.

“대부분 토지 적은 사람이 댐 건설에 반대합니다. 시골 사람들은 물 부족 국가니 기후변화니 그런 것은 모르고 그냥 편하게 살아보자는 겁니다. 이대로 있으면 평당 5만~6만원도 안 쳐줘요. 수몰시키는 건데 한국수자원공사는 더 줄 것 아닙니까? 경북도, 수자원공사, 주민 이렇게 세 팀에서 한 명씩 감정평가사 추천해서 보상해준다는데…. 농사지어봤자 힘만 듭디다. 군에서 만들어준다는 근처 이주단지에 가서 하우스 만들어 특수작물이나 짓고 살랍니다.”

수자원공사는 수몰지 내 보상액을 예비타당성조사 결과 400억원가량으로 책정할 수 있을 것이라 내다봤고, 영양군은 댐 건설만 확정되면 주변정비사업비 명목으로 받는 345억원으로 택지를 조성해 주민들을 이주시키겠다는 입장이다.

댐 건설 관련 논란이 수그러들지 않자 댐건설 장기계획을 담당하는 국토교통부는 댐 계획은 최종 확정되지 않았다며 한발 물러난 상태다. 국토부 수자원개발과 관계자는 “아직 검토할 부분이 70% 이상 남았다. 의사결정의 불확실한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댐건설 장기계획은 지난해 대선을 고작 이틀 앞두고 발표됐다. 이를 두고 국토교통부(당시 국토해양부)가 4대강 사업 등 댐 건설 정책에 호의적이던 이명박 정부 임기 안에 밑그림을 박아두려는 것이라는 눈초리를 받았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가 4대강 사업 재검토 등을 추진하면서 정부 분위기는 바뀌고 있다.

국토교통부는 나중에 댐건설 장기계획을 바꿀지언정 사회적 합의를 위한 절차를 이행하기 위해서라도 타당성 조사를 강행하겠다고 밝혔다. 환경부가 전략환경영향평가를 통해 사실상 댐 건설 반대입장을 밝혔는데도 강행하려는 것에 대해 이 관계자는 “타당성이 있는지는 국토부가 결정한다. 환경부의 의견이 정말인지 조사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또한 국민적 합의가 이뤄지지 않은 대형 토목건설사업을 주민들 몰래 계획한 것 아니냐는 물음에 국토부 관계자는 “수자원 장기종합계획상 댐건설 장기계획을 10년마다 세우도록 돼 있어 댐 관련 계획을 세우지 않을 수 없다”고 답했다. 왜 댐은 계속 지어지는 걸까. 세계 1위의 댐 밀도를 자랑하는 한국은 여전히 ‘댐의 나라’다.

“56가구가 수몰될 뿐이다” 
권영택 영양군수 인터뷰
영양군 경기는 태풍 피해 입어, 수해복구비 들어올 때 제일 좋아, 댐 만들면 고추 따던 분들 관광산업으로 먹고살게 될 것

권영택 영양군수 

권영택 영양군수는 2010년 재선 당시 영양댐 건설을 공약으로 내걸고 당선됐다. 댐 건설 반대 쪽 주민들은 건설회사를 운영했던 단체장이 댐 건설을 무리하게 추진하고 있다며 군수에 대한 검찰 수사를 요청하고 있다. 1일 오전 영양군청 군수실에서 만난 권 군수는 댐 건설이 ‘도로에 신호등 하나 없을 만큼’ 낙후한 영양을 살리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영양에 다목적댐이 왜 필요하다는 건가?
“태풍 매미와 루사 때 홍수 피해를 입었다. 또 영양은 물이 적다. 다른 지역은 돌을 팔아 먹고사는데, 영양은 돈이 될 석산도 없다. 지하수는 다 흘러가 버리고 그 물마저 석회질이 많아 경도가 높다. 댐에서 흐르는 물을 장파천의 유지용수로도 쓸 수 있다.”

-댐 건설 예정지 주변에 농업용 저수지 건설 계획을 갖고 있다가 댐 건설로 바꾼 이유가 있나?
“농업용 저수지는 수량이 적고 식수 활용이 안 된다. 또 농림수산식품부(현 농림축산식품부) 관할인 저수지 건설은 오래 걸리는데 국가 단위 수자원계획을 세우는 국토해양부(현 국토교통부) 소관의 댐은 빨리 진행되기 때문에 변경했다.”

-영양댐 기능의 90%가 아직 지어지지 않은 경북 경산의 경산산업단지에 물을 대주는 것이다. 영양 입장에선 오히려 댐 건설에 반대해야 하는 것 아닌가?
“영양댐에서 바로 수로를 연결해 경산으로 가나? 80이든 90이든 우리 군민이 사용하든 안 하든 영양을 지나가는 물이다. 국가 단위 수자원 운용은 수자원공사나 국토교통부가 판단할 사안이고, 영양은 지나가는 맑은 물을 이용하면 된다.”

-주민 반대가 심한 대형 댐은 더는 짓지 않는 추세인데.
“영양댐은 중소 규모 댐이다. 나도 과거 군사정부 시절에 지은 대형 댐은 반대한다. 임하댐, 안동댐 같은 건 흉물이라고 생각한다.”

-너비 480m, 높이 70m인 영양댐도 대형 댐 아닌가?(국제댐위원회가 말하는 대형 댐은 높이 15m 이상의 댐을 말한다.)
“크지 않다. 오히려 지역의 수자원을 활용할 수 있는 소규모 댐을 만들도록 장려해야 한다. 영양댐 건설은 2008년 신청했다. 그런데 4대강 사업 한다고 영양댐 건설을 미뤘다. 국토부가 댐 건설 장기계획을 발표하면서 다른 기본계획조차도 없는 댐들과 함께 묶어 영양댐을 발표해 매도당하고 있다. 이 댐은 다른 댐들과 다르다.”

-예정지의 생태환경이 좋다. 휴타운 등 이주대책도 현실성이 없다고 하더라.
“수몰되는 땅이 7만평(23만1404㎡) 정도다. 좋은 논밭도 있겠지만 절반은 농사짓기도 힘들다. 서울 크기 1.3배인 영양군의 86%가 임야다. 56가구가 수몰될 뿐이다. 나는 수달(천연기념물)을 보면 좀 잡으라 한다. 수달이 너무 많아서 하천에 물고기가 없다. 고라니가 너무 많아서 배추고 사과고 순 나오면 다 뜯어먹는데…. 반대 쪽 주민들은 나보고 건설회사 대표가 댐 공사 한다고 의혹을 제기하는데, 우리 군에서 발주하는 게 아니기 때문에 나와의 어떠한 커넥션도 없다.”

-댐 건설 추진 과정에서 학생과 공무원을 동원했다는 의혹을 제기하는 방송도 나갔다.
“당연히 국책사업에 대해서 주민들에게 설명하는 것은 공무원이 할 몫이다. 내가 일 안 하고 촉구 결의대회에 나가라고 공무원들 내보내겠는가? 주민들이 모이는 자리에 혹시 불상사가 있을까 싶어 공무원이 당연히 나와봐야 된다. 공무원 동원했다는 악의적인 보도 보면 알레르기 생긴다.”

-댐 지으면 진짜 관광산업이 활성화될까?
“무조건 된다. 유지용수로만 하루에 7만4000t이다. 물이 흐르면 래프팅하고 생활용수, 농업용수 문제 다 해결된다.”

-군수 입장에서 영양을 살리는 방안으로 댐을 생각한 것 같다. 영양군을 위한 다른 대안은 없나?
“그렇다. 영양군 경기는 태풍 피해 입었을 때가 제일 좋았다. 수해복구비용으로 내려온 돈으로 사람이 모였다. 지방행정을 책임지는 군수로서 이런 상황에 참담함을 느낀다. 인구가 1만8000명뿐인 군에서 군수가 뭘 해야겠나. 영양댐 부대사업으로 들어오는 약 4000억원으로 택지를 조성하면 유입인구가 늘 거다. 평생 허리 구부리고 고추 따는 분들도 관광산업으로 먹고살게 될 것이다. 영양군 재정자립도가 7.7%인데 1년 예산 50억~60억 갖고 3139억원이 드는 댐을 군에서 어떻게 만드나. 군수는 이런 댐을 만들면 좋겠다고 국토부나 수자원공사에 요청할 뿐이다.”

영양 영덕 정선 평창/최우리 기자 ecowoori@hani.co.kr


Posted by civ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