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냐면] 강물이 다시 흘러야 ‘녹조라떼’ 하천이 치유된다 
오경섭 등록 : 2013.09.04 19:12

일러스트레이션 김선웅

운동량이 많은 사람은 많이 먹어도 비만과 성인병 걱정을 안 해도 된다. 반대로 운동량이 적은 사람은 적게 먹어도 비만과 성인병에 걸리기 쉽다. 운동을 많이 하던 사람이 식사량을 줄이지 않고 운동을 안 하게 되면 과영양으로 건강이 나빠질 수 있다. 이러한 현상은 담수 생태계에서도 마찬가지다. 현재 낙동강·영산강·금강 중·하류의 녹조 현상은 이와 같은 이치로 설명되는 재앙이다. 4대강 사업이 운동량이 많은, 흐르는 하천을 운동량이 적은 호소(湖沼·호수와 습지)로 만들었으면서도 식사량(영양염 밀도)을 줄이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천과 호소는 유역으로부터 유입되는 인(P)과 질소(N) 성분 등을 영양소로 하여 유지된다. 만일 이들이 담수환경이 감당할 수 있는 양보다 많으면(부영양화되면) 유해 조류의 창궐로 수질과 생태환경이 피폐해진다. 그런데 부영양화 상태가 될 수 있는 영양염 밀도는 유속에 따라 큰 차이를 보인다. 하천은 호소보다 부영양화될 수 있는 밀도가 몇 배나 높다. 이는 흐르는 강물이 호소화되면 부영양화 위험이 몇배 높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담수의 부영양화 상태 파악에서는 인(P) 성분의 밀도를 가장 중요한 지표(총인밀도·T-P)로 사용한다. 인은 생명체 생성에서 아르엔에이(RNA), 디엔에이(DNA), 세포막 형성에 꼭 필요한 영양소이기 때문이다. 지난 수십년간 전세계의 주요 연구 결과를 종합하면 부영양화의 가장 중요한 기준인 총인밀도가 호소는 0.02㎎/ℓ, 호소에 유입하기 이전의 느린 유속의 강물은 0.05㎎/ℓ, 정상적으로 흐르는 하천은 0.1㎎/ℓ 정도다. 이는 강물이 호소화되면 정상적으로 흘렀을 때보다 영양염 밀도가 몇배 낮아야만 좋은 수질을 유지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그런데 환경부의 ‘환경백서’를 보면 우리나라 강 하류의 총인밀도가 보통 0.16~0.2㎎/ℓ이다. 4대강사업을 통해 수질개선 명목으로만 약 4조원의 예산을 들였지만 총인밀도는 0.207㎎/ℓ에서 0.114㎎/ℓ으로 낮아지는 정도(감사원 감사 자료)에 불과했다. 이런 수치는 정상적으로 흐르는 강물의 부영양화 수준을 웃도는 총인밀도다.
한국의 하천 중·하류는 높은 인구밀도의 주민생활과 집약적 토지 이용에 따라 영양염의 유입이 많기 때문에 천문학적인 예산을 들여도 호소나 매우 느리게 흐르는 하천의 부영양화 기준인 0.02~0.05㎎/ℓ 이하로 총인밀도를 낮춘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김좌관 부산가톨릭대 교수도 이 점을 여러 차례 발표한 바 있다. 이것이 실현되기 힘듦은 1970년대 초에 녹조 창궐을 경험한 알프스 지역의 레만호 사례를 통해서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레만호는 면적 582㎢에 담수량은 약 890억t(한국 소양호 저수량의 약 40배)으로 알프스에서는 가장 큰 호수다. 이런 레만호도 호안 인구가 40만명을 넘으면서 수질이 나빠지기 시작하였고 1970년대 초 재앙 수준의 녹조 현상을 경험하였다. 현재 우리나라 낙동강·영산강에서 나타나는 것과 유사했다. 당시의 총인밀도는 0.09㎎/ℓ로, 호소의 부영양화 기준치보다는 훨씬 높지만 하천의 부영양화 기준 0.10㎎/ℓ보다는 약간 낮은 정도였다. 프랑스와 스위스는 30년 이상 엄청난 예산 투여와 노력으로 총인밀도를 호소의 부영양화 기준치에 근접하는 정도로 낮췄다. 전문가들은 레만호가 완전히 회복하려면 아직도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고 한다. 레만호는 수량도 많고 유역의 인구도 많지 않은데도 흐르는 강물이 아니라 호소이기에 끔찍한 재앙을 경험했다.

높은 인구밀도에 집약적 토지 이용으로 많은 영양염이 공급될 수밖에 없는 한국 하천 중·하류의 총인밀도를 매우 느리게 흐르는 하천이나 호소의 부영양화 기준 이하로 낮춘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이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면, 4대강사업으로 호소화된 상태에서 병들어 죽어가는 우리 하천을 살리는 길은 다시 정상적으로 흐르는 하천으로 되돌리는 것이다. 이것 말고는 다른 대안이 없다.

오경섭 한국교원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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