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news.khan.co.kr/kh_travel/khan_art_view.html?artid=200906241629455&code=900306
[초원 실크로드를 가다] (21) 불모의 땅 고비 사막
정수일 한국문명교류연구소장 www.kice.ac 입력 : 2009.06.24 16:29 수정 : 2009.08.19 11:28
40도 오르내리는 망망한 ‘모래 바다’ 입성
황사 발원지답게 황막…시원한 얼음 공존 ‘신비’
알타이 고비 사막의 구릉지대.
바얀혼고르의 새벽 공기는 유난히도 상쾌하다. 간밤엔 어둠 속이라서 지형을 살필 수가 없었다. 아침 일찍 일어나 창문을 활짝 여니 사방이 탁 트인 사막 천지가 눈앞에 펼쳐진다. 여기가 바로 고서에 나오는 그 ‘한해’(瀚海, 질펀한 바다), 즉 고비 사막이다. 우리는 지금 그 망망한 ‘모래 바다’를 헤쳐 가는 일엽편주(一葉片舟)에 몸을 싣고 있다. 여기까지 오는데도 몇 군데서 고비사막의 언저리를 지났지만, 이제부터는 언저리 아닌 한복판에서 신비스러운 고비의 ‘내음’을 만끽하게 될 것이다.
‘고비’의 몽골어 뜻에 관해 ‘풀이 잘 자라지 않는 거친 땅’, 혹은 ‘건조하고 황막한 초원’이라고 조금은 다른 표현을 쓰고 있지만, 내용은 진배없다. 고비를 거닐다 보면, 불모의 땅으로서 황막하기는 한데 가끔 풀이나 관목이 자라는 것을 목격하게 된다. 그리고 오아시스를 낀 곳에서는 푸름이 도는 초원도 눈에 띈다. 지질학에서는 식물이 자라기 힘든 황막한 지역을 ‘사막’이라고 한다. 육지 면적의 10분의 1(약 1500만㎢)을 차지하는 사막은 위치에 따라서 크게 열대사막(위도 15~30도 사이)과 중위도사막(위도 40도 부근), 한랭사막(남북극 지방)으로 구분하나, 표면을 형성하는 물질에 따라서는 모래사막과 자갈사막, 암석사막으로 나눈다. 모래사막은 부드러운 모래로 덮인 사막이고, 자갈사막은 자질구레한 자갈(조약돌)로 된 사막이며, 암석사막은 강한 바람의 침식작용으로 인해 노출된 암석이 깔린 사막을 말한다. 그 가운데 고비는 중위도에 자리한 자갈 및 암석사막에 속한다. 고비의 암석사막은 대체로 산기슭에 펼쳐져 있다. 그런가 하면 3%의 모래사막도 끼여 있다. 이렇게 보면, 고비는 나름의 특징을 지닌 복합적인 사막으로서 희귀한 동식물을 비롯해 섭씨 40도가 넘는 한여름에도 시원한 얼음을 만날 수 있는 율링암 계곡(독수리 계곡)과 세계에서 가장 넓은 자연동물공원인 그레이트고비공원 등 연구거리와 볼거리가 많은 지구상 몇 안 되는 사막지대다.
고비사막은 세계에서 다섯번째로 큰 사막이다. 서쪽의 천산산맥과 동쪽의 대흥안령산맥, 그리고 북쪽의 알타이산맥과 항가이산맥, 남쪽의 기련산맥과 음산산맥, 이렇게 사방이 산맥들로 에워싸인 대분지다. 동서 길이는 1600여㎞, 남북 너비는 약 500~1000㎞에 달하는 드넓은 활모양의 지대로서 면적은 약 130만㎢나 된다. 기후는 극심한 대륙성 건조기후로서 1월에는 영하 40도, 7월에는 영상 45도까지 큰 폭으로 오르내리고 세찬 바람이 불어대며 식물이래야 고작 홍류(紅柳)나 낙타풀 같은 내한성 식물뿐이니 제아무리 강인한 유목민이라고 한들 살기란 이만저만 어렵지 않다. 그래서 인구밀도는 ㎢당 한 사람도 채 안 된다. 무엇보다 큰 문제인 물은 거개가 사막 언저리의 지하수에 의존하는데, 고갈이 다반사며 어쩌다가 비가 와서 생긴 지상의 물길도 오래 가지 못하고 땅 속에 스며들어 자취를 감춘다. 군데군데 자그마한 호수가 점재해 오아시스를 이루고 있기는 하지만 짠물이 대부분이어서 용수로서는 극히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각박한 환경에서 문명이 창출된다는 토인비의 ‘도전과 응전 원리’가 아직 여기서는 그 변(辯)을 찾아내지 못하고 있을 성싶다.
일찍이 13세기 후반 사막의 언저리를 서에서 동으로 횡단한 마르코 폴로의 여행기에 의해 처음으로 고비가 세상에 알려진 이래, 많은 탐험가들의 호기심을 자아냈으나 탐험에 성공한 선례는 별로 없다. 그러다가 중국 과학사에 길이 남을 장거로 평가 받는 ‘서북과학고찰단’의 횡단 탐험에 의해 고비의 수수께끼가 비로소 한 꺼풀 벗겨졌다. 스웨덴의 유명한 탐험가 헤딘과 베이징대학 교무처장 쉬빙창(徐炳昶)을 공동 단장으로 하고 고고학자 황원비(黃文弼) 등이 참가한 이 고찰단은 1927년 5월 베이징을 떠나 내몽골의 보터우(包頭)와 한대 이래 북방의 핵심 요새였던 거연(居延)을 거쳐 신장의 하미(哈密)까기 무려 9개월 동안 고미사막을 동에서 서로 가로질렀다.
헤딘은 <고비 사막의 길>이란 탐험기를 펴내 험난한 탐험 노정과 그 결과를 상세히 소개하면서 고비의 실태를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 초당 30m의 11급 설한풍으로 길을 잃어 광야에서 며칠씩 헤매기가 일쑤고, 식량과 물이 떨어진 아사지경을 몇 번이고 넘나들며 결국 함께 떠난 292필의 낙타 가운데서 살아남은 녀석은 154필뿐이었다. 행로의 전 과정은 그야말로 목숨을 걸고 ‘절지’(絶地, 들어갈 수 없는 땅)를 넘고 넘는 승위섭험(乘危涉險 , 위태롭고 험난함을 무릅쓰고 나아감)의 연속이었다. 도중에 헤딘은 급성담석증에 걸려 진통제를 맞아가며 한 달 동안 들것에 실려 목적지 하미에 입성한다. 당시 베이징대학 학생으로 고찰단에서 기상관측 기록을 맡았던 최연소 단원이며 유일한 생존자인 베이징대학 지구물리학부 리셴즈(李憲之) 교수의 회고담은 많은 것을 시사한다. 일신의 안일과 작은 세계를 버린 거룩한 사람들에 의해 더 큰 세계가 펼쳐지고 역사는 이어져가는 법이다.
고비 사막을 달리고 있는 답사 차량.
알타이시까지 380㎞를 달려야 하는 오늘의 일정도 만만찮다. 여느 때보다 한 시간 앞당겨 바얀혼고르 호텔을 나섰다. 사막의 아침은 쾌청하고 싱싱하다. 두 시간쯤 신나게 달리다가 야트막한 언덕바지에 차를 세우고 휴식을 취했다. 드높은 청청 하늘엔 뭉게구름이 두둥실 떠있다. 한참 한 자리에서 머뭇거리다가도 서서히 자태를 바꾸기도 하고, 가뭇없이 사라지기도 한다. 그러다간 또 다른 흰 솜구름이 어디선가 뭉게뭉게 피어오른다. 한 무리의 양떼가 앙칼진 목동의 채찍 소리에 ‘음매 음매’ 화답하면서 언덕을 넘어 어디론가 가버린다. 이윽고 서너 말의 쌍봉낙타가 가시 돋힌 낙타풀을 질근질근 씹으며 뒤를 따른다. 일행 중에는 휴식 때마다 즐거움을 선사하는 일군의 젊은 재간둥이, 귀염둥이들이 있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예능과에 재학 중인 몇몇 학생들이다. 음악과의 김보라와 한국예술학과의 김보미 자매, 전통예술원의 최혜림, 디자인과의 김소인, 연기과의 김성경이 바로 그들이다. 내내 명랑한 얼굴로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며 어리광도 부리며 흥과 웃음을 몰고 다닌다. 아르바이트로 이번 여행비를 장만한 장한 학생도 있다. 새것에 민감하고 앎에 열정을 쏟는 생기발랄한 그들에게서 나라의 밝은 미래가 읽혀지니 사뭇 흐뭇하고 자랑스러웠다.
두 시간쯤 더 달리자 나지막한 산기슭을 흐르는 베이 드라그강이 나타난다. 강을 건너자마자 제법 깔끔한 흙벽집 몇 채가 나타나기에 그중 하나를 골라 찾아갔다. 간판은 달지 않았지만, 집 안에 식탁 여러 개가 마련되어 있는 점으로 보아 과객들을 위한 식당임이 틀림없다. 점심을 부탁하니 주인은 기꺼이 응한다. 얼마 지나지 않아 식탁엔 구수한 냄새를 풍기는 럄샤가 올라왔다. 양고기를 삶은 물에 칼국수와 감자, 당근을 함께 넣어 끓인 국수인데, 국물이 있는 것이 어제 점심 불가 마을에서 먹은 초우번과 다르다. 이를테면 양고기탕면이다. 시원하고 구수한 국물이 있어 한결 구미를 돋우니 다들 두 그릇씩 너끈히 비운다. 보아하니 이 집은 그 옛날의 사라이격이다. 이곳 사정을 잘 몰라 무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사라이’란 서아시아 일원에서 대상을 위해 사막에 지어놓은 숙관(宿館)이다. 대체로 낙타의 1일 여정 거리에 준해 약 30㎞ 간격씩 짓는 이 사라이는 대상들의 숙박소이자 통과료를 받는 세관이기도 하고, 대상들 서로가 만나 물품을 교환하거나 팔고 사는 교역소이기도 하다. 흔히들 사막인들을 겁탈이나 일삼는 흉포한 사람들로 매도하지만, 사실은 가장 순박하고 다정한 사람들이다. 보통 사라이에서는 첫 2~3일간은 무료이고, 그후부터 숙박료를 지불한다. 사정이 여의치 않을 때는 전당물로 대신하기도 한다.
오후 3시 반, 군(숨) 급에 해당하는 분자간시를 지났다. 여기서부터 한참은 자갈사막이 펼쳐지는데, 드문드문 키 낮은 관목들이 다보록하게 엉켜있다. 뙤약볕에 마냥 음덕을 베풀고 있는 그 나무 그늘에서 양떼들이 더위를 식히고 있다. 그런데는 민둥바위도 한 몫을 하고 있다. 이 거친 불모의 땅에도 이처럼 하늘의 은전이 베풀어지고 있으니 그저 하늘에 감지덕지할 따름이다. 그러다가도 무연한 자갈사막에 들어서면 길이 묘연해진다. 방향도 제대로 안 잡히는 모양이다. 이곳을 몇 번이고 오갔을 우리네 밴 기사들도 자주 길을 헛갈려 지나가는 손들이나 저 멀리 홀로 있는 게르에 찾아가서 길을 묻곤 한다. 그럴수록 길은 지체되고 기사들은 초조해진다. 그런 탓인지 오늘은 유난히도 바퀴에 펑크가 자주난다. 한 차에 펑크가 나면 나머지 4대는 한결같이 멈춰 선다. 그러면 기사들은 몸에 밴 관성처럼 너나 없이 팔을 걷어붙인다.
누구의 탓 한번 안 하고 흥겹게 서로가 서로를 돕는 그들의 모습이 참으로 아름다웠다. 그러한 모습은 분명 그들의 마음속에 기둥으로 자리한 어떤 도덕률에서 비롯됐을 것이다. 그렇다. 위기에 빠진 사람을 돕는 것은 몽골사람들의 전통적 윤리도덕관이다. 이 대목에서 그들은 조상 칭기즈칸의 실례를 든다. <몽골비사>에도 나온 얘기지만, 타이치오트 씨족에서 도망친 테무진(칭기즈칸)이 소르칸시라의 집으로 피신했을 때, 그가 받아들이기를 꺼리자 그의 두 아들은 “시바우칸(새 이름)을 투림타이(새 이름)가 수풀 속으로 추격해 오면 수풀은 시바우칸을 구해준다”라는 당시의 격언을 인용하면서 아버지를 설득시켜 끝내 테무진을 구원한다. 뿌리가 깊을 때 체화된 도덕률의 샘은 마르지 않는다.
석양이 사라지고 땅거미가 내리기 시작하자 물기 빠진 풀잎처럼 육신이 나른해진다. 자꾸 눈앞에 환영이 어른거리더니 갑자기 뽀얀 황사가 떠오른다. 어쩌면 고비에 대한 조건반사일 것이다. 하기야 한 해에 몇 번씩 동남부 고비사막에서 불어오는 황사의 공포에 시달리곤 했으니깐. 초속 40m의 강풍에 실린 모래먼지가 하루만이면 우리 한반도에 10만t씩이나 날아와 서울 하늘을 잿빛으로 뒤덮는다. 그 발생 현상이 해마다 빨라져 지금은 봄이 아닌 겨울철 2월부터 시작해 발생 일수가 1980년대에 비해 3배 이상으로 늘어났다. 고비사막은 강수량이 40년 전보다 30% 이상 줄어들었으며 평균온도는 2도나 상승해 꽁꽁 얼어붙어야 할 겨울철에도 영상 날씨를 보이고 있다. 지난 몇 년 동안 60여개의 호수가 말라붙었으며 매해 서울 면적 6배 크기의 새로운 사막이 생겨나고 있다. 대황사재앙의 예고다. 일본에까지 날아가니 이제 황사재앙은 발원지인 몽골뿐만 아니라 중국과 한국, 일본 등 동북아 전체의 큰 환경생태문제로 악순환하고 있다.
잠시 짐을 내려놓고 앉아 쉬고 있는 유목민.
다들 원인은 지구온난화에 따른 기상이변이라고 하면서 해결 방도를 에코벨트 같은 인공 숲 조성에서 찾고 있다. 물론 틀리지는 않다. 그러나 배기가스를 마구 뿜어내 기온의 상승을 부추기는 인간의 해악, 사유화로 인해 사막의 초목을 마구 고갈시키는 또 다른 인간의 해악, 이 자업자득을 인간은 자성해야 한다. 그러면서 “내일 세계의 종말이 올지라도 나는 오늘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의지와 신심, 낭만으로 이 재앙에 맞서야 할 것이다.
갑자기 포장길이 나타나면서 멀리서 반짝거리는 불빛이 일장 악몽에서 깨어나게 한다. 밤 9시45분, 우리네 장급 수준의 한 호텔에 도착했다. 밤 12시부터 아침 6시까지는 단수이고 화장실에는 비누나 화장지가 없으며 냉장고와 텔레비전은 가동이 안 되니 있으나마나하다. 바닥엔 주단을 깔고 벽엔 알타이산 풍격화가 걸려있다. 현대화로 가는 길에서 겪는 진통과 부조화의 한 단면이다. 너그러이 이행하고 받아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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