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news.khan.co.kr/kh_travel/khan_art_view.html?artid=200907011610515&code=900306


[초원 실크로드를 가다] (22) 초원의 야생마, 유목민 삶 한복판을 달리다

정수일 한국문명교류연구소장 www.kice.ac  입력 : 2009.07.01 16:10 수정 : 2009.08.19 11:39


새로운 목초지를 알아보기 위해 떠난 유목 청년들.


꿈에 그리던 알타이산맥이 점점 가까워 온다. 황량한 고비사막 속에 묻혀 있는 알타이시 어구의 야트막한 언덕에 올라서니 저 멀리 중중첩첩 산봉우리들을 거느린 알타이의 동남 지맥이 한눈에 안겨온다. 알타이시는 주택과 게르, 도로와 공공건물이 바둑판처럼 잘 어울려져 사막 도시치고는 제법 운치가 있어 보인다. 시내 모습 전체를 연결촬영으로 카메라에 담았다. 어구를 빠져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아 거친 자갈 사막이 눈이 모자라게 펼쳐진다. 세 시간쯤 달리자 머리에 흰 눈을 얹고 있는 바이사가린트산이 희미하게 시야에 들어온다. 40도에 육박하는 사막의 찜통 속에서 만년설을 상상하는 순간, 천지조화가 새삼스레 느껴진다. 인간의 욕망대로 두 상극이 조화되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지만 자연의 섭리 앞에선 말없이 순종할 수밖에 없다고 개탄한 누군가의 말이 기억에 떠오른다.


정오가 갓 지나서 다쑹두리 오아시스에 도착했다. 한 게르에 들러 점심을 부탁하고서는 다들 오아시스 호숫가로 몰려갔다. 자그마한 호수이지만 수초가 무성하고 그 사이사이를 오리떼가 자맥질하면서 헤엄친다. 부드러운 모래가 깔려있는 호숫가에서 간단하게 미역 정도는 감을 수 있지만 수영은 금한다. 기사들은 차를 끌고 가서 며칠 동안 쌓인 모래먼지를 씻어낸다. 신기한 것은 게르 마당 한 구석에 설치한 용수통이다. 나무막대기에 꼭지 달린 자그마한 철통을 달아매놓고 거기에 물을 채워 필요할 때 조금씩 뽑아 쓴다. 사막에선 한 방울 물도 귀하다. 그래서 주인에게 양해는 구했지만, 차마 마구 쓸 수가 없어 손수건에 물을 적셔 얼굴을 닦으며 더위나 식히는 데 그쳤다. 점심은 역시 어제 맛본 럄샤로 때웠다. 집안은 그런 대로 깔끔하게 꾸리고 벽에는 여러 가지 기념사진들이 빼곡히 걸려있다. 그 가운데서 눈길을 끄는 것은 인도에 망명 중인 달라이라마 사진이다.


구릿빛 얼굴·탁 트인 어깨 ‘아오털 정찰병’


머리 큰 몽골말.


여기서 두 시간쯤 달려 우리나라 면 소재지쯤 되는 다르피에 이르렀다. 간식거리나 사려고 길 옆에 자리한 상점에 들렀다. 판매대에는 낯익은 우리나라 라면이며 치약, 초코파이 등이 놓여 있는데 몇몇 현지인들이 한창 제품을 고르고 있다. 상점에서 얼마쯤 떨어진 펑퍼짐한 곳에 높이 20m, 지름 5m의 대형 물탱크가 하늘 높이 치솟아 있다. 철제 사다리를 부착한 이 벽돌 구조물은 어쩐지 모든 것이 왜소하고 질박한 주위환경에는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어마어마하게 보인다. 이를테면 부조화라고 할까. 그러나 그것이 미래의 조화를 향한 오늘의 그럴법한 부조화라고 생각하니 오히려 대견스럽다.


이곳을 지나 한참 달리다가 풀밭을 만나자 쉬어가기로 했다. 그런데 난데없이 건장한 세 젊은이가 말갈기를 날리며 이쪽으로 달려오고 있다. 마냥 엄습하는 기세다. 우리는 그들을 향해 일제히 두 손을 흔들었다. 몽골 사람들은 막막한 초원에서 사람을 만났을 경우는 갈 길과는 상관없이 말머리를 그쪽으로 돌린다. 그러면 누구라 할 것 없이 먼저 상대방을 향해 두 손을 들어 흔든다. 이것은 손에 무기가 없다는 안전신호로서 서로의 만남을 확인한다. 그런 후 모두 말에서 내려 대화를 주고 받는다. 일단 마주앉으면 버선과 장화 사이에 찔러 넣은 긴 담뱃대를 꺼내 담배를 피우면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상대방이 먼 곳에서 온 사람이라면 문안인사 후에 반드시 그곳의 가축과 풀 상태를 묻는다. 그리고 대화에선 “무슨 좋은 소식이 있느냐”란 물음이 빠지지 않는데, 그 대답으로 인해 인마가 뜸한 초원에서 소식이 빠르게 전파된다고 한다.


아니나 다를까 젊은이들은 답례로 두 손을 저으며 일행 앞에 다가와 말에서 내린다. 그리곤 싱글벙글 웃으면서 기이하다는 듯 이곳저곳 두리번거린다. 알고 보니 그들은 아오털의 ‘정찰병’들이다. ‘아오털’이란 한여름에 소떼나 양떼를 몰고 물과 풀이 풍성한 곳으로 방목하러 가는 일을 일컫는데, 이들이 바로 그러한 곳이 어디에 있는가를 미리 알아보려고 떠난 청년들이다. 나이는 스무 살 안팎으로 한창 혈기왕성한 때다. 우리도 호기심이 동해 이것저것 물어봤다. 묻는 말엔 그렇게 친절하게 답할 수가 없다. 그들은 말 타는 법과 채찍 휘두르는 법도 직접 시범해 보여준다. 함께 간식도 나누고 기념사진도 남겼다. 이 구릿빛 얼굴에 어깨가 탁 트인 건장한 청년들은 전형적인 몽골 유목민의 후예다.


말은 기마유목민의 이동·생계수단


나무막대기에 매단 용수철통.


자고로 초원에서의 유일한 생계수단은 가축을 기르는 축산업이다. 그런데 축산은 목초가 필요하며 인간이나 가축의 생명을 유지하는 데는 수원(水源)이 필수다. 게다가 계절의 변화는 인간이나 가축의 이동을 필연적으로 유발한다. 그 결과 인간이나 가축은 수원이나 목초를 따라, 그리고 계절의 변화에 적응하기 위해 끊임없이 이동한다. 이렇게 가축을 사양하면서 물과 풀을 찾아 가재와 함께 주거지나 활동지를 이동하는 사람들을 통칭 유목민이라고 한다. 그런데 그들이 방목하는 가축의 종류라든가 이동하는 모양새는 지역이나 환경에 따라 서로 다르다. 어떤 유목민은 양 같은 가축을 사양하면서 좁은 영역 안을 맴돌지만, 어떤 유목민은 낙타 같은 가축을 이끌고 멀리 대상(隊商)에 나서기도 하고, 또 그런가 하면 어떤 유목민은 말 같은 가축을 타고 신속히 먼 거리를 이동한다. 이렇게 그 어느 가축보다도 기동력이 강한 말이나 마구를 이용해 유목하는 사람들을 기마유목민이라고 한다. 몽골을 비롯해 북방 유라시아 초원의 유목민은 대체로 기마유목민에 속하는데, 이들이 역사무대에 등장한 시기는 기원전 3000년쯤이다.


기마유목민의 이동과 생계의 기본수단은 말이다. 말은 오랜 역사과정에서 야생에서 가축화로, 다시 기마를 거쳐 유목민은 물론 농경민에 이르기까지 필수불가결의 축력이나 동력으로 이용되어 왔다. 말의 시조는 지금으로부터 약 5800만년 전 아메리카 대륙의 북부와 중부에 나타난 페나코두스라고 하는, 키가 50여㎝밖에 안 되는 다섯 발가락의 동물이었다. 발가락이 퇴화되어 에쿠스 카발루스란 오늘의 말 모양을 갖추게 된 것은 약 200만년 전이다. 오랜 야생 끝에 인간이 말을 식용 가축으로 사육하게 된 것은 기원전 4000년대의 일이며, 그것이 다시 인간에 의해 이동이나 운반에 사역(使役)된 것은 2000년을 더 지난 후다. 즉 기원전 2000년쯤부터 인간이 말을 타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기마 역사에서 획기적인 변화가 일어난 것은 기마전술의 출현이다. 그 출현의 계기는 하찮은 몇 가지 마구의 발견이다. 기원전 1000년쯤 서남아시아 유목민 사이에서 청동제 고삐와 재갈이, 그리고 그 이후 스키타이 사이에서 등자가 발명됨으로써 사나운 말을 길들이고 안전하게 승마할 수 있게 된다. 급기야 말을 타고 자유자재로 이동하거나 심지어 유희까지 즐기는 기마풍이 일기 시작한다. 이로부터 사상 초유의 기마전술이 안출되고 기마궁사들이 역사무대에 등장한다.


기마에 의한 빠른 이동은 사회경제생활에도 엄청난 변화를 몰고 왔는데, 기동력이 약한 돼지나 닭 같은 가축은 수행할 수 없음으로 사양에서 제외되거나 도태되지 않을 수 없다. 반면에 상대적으로 기동력이 좋은 말이나 양·소의 사양이 장려됨으로써 유목민들의 목축구조에는 커다란 변화가 일어난다. 그뿐만 아니라 기마에 반드시 필요한 갑옷이나 마구 및 장식품, 그리고 기마에 적합한 짧은 검 등 기마 무기류도 새로 고안되거나 개조됨으로써 기동력이 월등 강화되고 안정성도 담보되기에 이른다. 한편 이러한 제반 요인은 도시문명이나 정착농경권에 대한 기마유목민의 침탈과 공격을 일으킬 가능성을 제공한다. 자그마한 ‘역사적 사변’이 엄청난 역사의 연동작용을 몰고 온 일례다.


오늘날의 말은 가축화가 시작된 때의 유럽산 야생마인 타판을 비조로 하여 40여종으로 나뉜다. 다시 크게 북방종과 남방종으로 나눌 수 있는데, 대체로 북방종은 털이 길고 육중하며, 남방종은 털이 짧고 날씬한 편이다. 북방종은 몽골계통 말의 조상으로서 중국이나 한국의 재래종 말이 이에 속하며, 남방종은 아랍 계통의 말이 그 대표종인데 한혈마(汗血馬)를 비롯한 중앙아시아 말들이 그 대를 이어가고 있다.


일찍이 현장(玄奘)은 <대당서역기> 모두에서 특산물을 기준으로 아시아 지역을 4대 구역으로 구분한다. 즉 북방은 ‘마주(馬主)의 나라’, 남방은 ‘상주(象主)의 나라’, 동방은 ‘인주(人主)의 나라’, 서방은 ‘보주(寶主)의 나라’라고 한다. 북은 그 옛날의 험윤()에서 흉노를 거처 오늘의 몽골에 이르는 북방 초원지대를 지칭한 것으로서 몽골은 말이 위주가 되는 나라라는 뜻이다. 이렇듯 자고로 몽골의 5대 가축(소·양·염소·말·낙타) 중에서도 말은 단연 으뜸가는 가축으로 진중되어 왔다. 몽골말은 머리가 큰데, 백색을 선호하는 몽골인들에게 백마는 보배다. 준마가 하루에 550㎞를 달리는 데 비해 보통말은 겨우 150㎞밖에 안 되니 저마다 준마를 갖고 싶어 말 사육이나 관리에 무척 신경을 쓴다.


가축 가운데 으뜸… 행운 주는 영물


몽골 사람들에게 말은 사역으로서 중요할 뿐만 아니라, 신성시되기도 한다. 말이 행운을 가져다 준다고 믿기 때문에 게르의 입구엔 천마를 그린 깃발을 걸어놓으며, 준마가 죽으면 머리와 네 다리를 잘라 산 정상의 오보 위에 안치한다. 굶어 죽는 한이 있어도 안장을 팔지 않는 것도 이런 신성시에서 비롯된 관행일 것이다. 그들은 말을 벽사진경(邪進慶, 사악을 물리치고 경사를 가져온다)의 영물이라고 믿고 있다. 이러한 믿음은 말에 관한 여러 가지 민담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운청마(雲靑馬) 이야기 하나만을 예로 들어보자.


옛날 어지너 초원에서 왕의 양떼를 방목하는 청년 후더르는 용궁의 시은(施恩)으로 영특한 운청마(雲靑馬, 짙은 남색 말)를 얻어 키우면서 왕의 양치기 노예인 어여쁜 산단과 사랑의 인연을 맺는다, 이 사실을 알아챈 간악한 왕은 일석이조를 노려 산단을 체포하고는 마귀를 잡아온다든가, 설산 꼭대기의 설연(雪蓮)을 따 온다든가 하면 산단을 석방하겠다고 능청을 떤다. 후더르가 운청마의 도움으로 이 모든 시련을 거뜬히 이겨내자 악에 바친 왕은 그를 체포해 처단하려고 한다. 이때 운청마가 나타나 긴 울음으로 물결을 일으켜 추적하는 왕 일당을 그 속에 수장해버린다. 고향에 돌아온 이 젊은 한 쌍은 백년해로한다. 오늘도 후더르가 멀리 떨어져 있는 산단을 만나려 야밤을 무릅쓰고 다니던 사랑과 운청마를 기리는 이런 노래가 전해오고 있다. “어지너의 운청마여 / 정녕, 신기한 준마로다 / 천만리 머나먼 길을 / 어느새 달려 왔나 ! / 석양녘에 보금자리 찾는 온갖 잡새여 / 그 날개의 빠름을 자랑 마라 / 보금자리에 네 앉아 울면 / 울음소리 멎기 전에 내 닿으리!


월래 말은 영특한 동물로서 인간의 삶 속에 깊숙이 파고들어 왔다. 그래서 이른바 ‘명마론’(名馬論)이 전해 오고 있다. 중국 <삼국지>에 나오는 적토마(赤馬)는 고락을 같이한 관우가 죽자 오나라의 마충에게 넘겨지지만 먹이를 거부한 채 굶어 죽는다. 조선 광해군 때 만주 정벌에서 전사한 김응하(金應河) 장군의 유서를 강원도 고향까지 전달한 애마도 장군을 그리며 역시 굶어 죽는다. 명마는 인간 이상으로 인간에 대한 충절을 잊지 않는다.


말갈기를 흩날리며 동북방 항가이 산맥쪽으로 채찍을 날리던 그 세 젊은이의 늠름한 모습은 지금도 눈앞에 선하다. 부디 무너져가는 유목사회의 지킴이가 되어 주길 바랄 뿐이다.





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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