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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나라에 활약한 발해인들 전편"에서 "대호" 내용과 서론,결론 부분을 가져왔습니다.
* "금나라에 활약한 발해인들 전편"에서 "대호" 내용과 서론,결론 부분을 가져왔습니다.
기회를 잘 포착한 곽약사
금나라에서 활약한 발해인들 5
금나라에서 활약한 발해인들
금나라에서 활약한 발해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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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나라의 발해인들 3] 여진의 정계를 좌지우지한 장호 - 동북아역사지킴이 http://tadream.tistory.com/9937
[금나라에 발해인들 4] 거란과 송나라를 호령한 발해인 대호 - 동북아역사지킴이 http://tadream.tistory.com/9938
[금나라의 발해인들 5] 기회를 잘 포착한 곽약사 - 동북아역사지킴이 http://tadream.tistory.com/9939
[금나라의 발해인들 6] 늦게 출세한 고표 - 동북아역사지킴이 http://tadream.tistory.com/9940
926년 갑작스런 거란족의 공격으로 대륙을 지배한 한민족의 고대왕조 발해는 멸망했다. 발해가 멸망한 후에도 그 유민들은 굴하지 않고 200여년 간 복국 운동을 펼쳤다. 발해의 멸망은 우리에게 많은 아쉬움을 가져다 주었다. 발해의 멸망으로 우리 민족이 대륙을 잃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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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6년 갑작스런 거란족의 공격으로 대륙을 지배한 한민족의 고대왕조 발해는 멸망했다. 발해가 멸망한 후에도 그 유민들은 굴하지 않고 200여년 간 복국 운동을 펼쳤다. 발해의 멸망은 우리에게 많은 아쉬움을 가져다 주었다. 발해의 멸망으로 우리 민족이 대륙을 잃었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발해에 대해 아는 바가 없다. 그리고 발해 멸망 후 발해 유민들의 삶에 대해 아는 것도 없다. 그러나 발해는 멸망한 후에도 그 혼이 꺼지지 않았고, 발해인의 혼은 금나라로 이어졌다. 미개한 여진족이 금이라는 정복왕조를 건설하고 200년 가까이 중원을 지배할 수 있었던 건 바로 발해인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전편에서 금나라에 활약한 발해인에 대해 얘기한 바 있다. 그러나 앞편에서 살핀 발해인들의 활약상은 거의 행정과 재정, 궁실 수축 등 내치와 관련이 있다. 하지만 금나라가 일으킨 전쟁에 참여하여 큰 공을 세운 발해인들이 무수히 많았음을 알아야 한다. 전편에서 활약한 인물들이 금나라 건국의 주역들이라면, 이번 편에서 소개할 인물들은 금나라 번영의 초석이 된 인물들이다. 이번 편에서는 금나라와 요, 송 간의 전쟁에서 활약한 발해인들의 활약상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기회를 잘 포착한 곽약사
요나라가 약화되고 송나라와 여진의 금의 세력이 급성장하는 격동기에 발해 유민은 여진의 포용 정책에 따라 신분 보장을 약속한 여진쪽으로 기울어져 이들과 타협하는 길을 선택했는데 이의 좋은 예를 보여준 인물이 바로 곽약사(郭藥師)라 할 수 있다.
곽약사는 철주가 고향으로 거란이 여진의 침공을 방어하기 위해 요동의 발해 유민을 모아 새로 조직한 원군의 지휘관이었다. 원군이 현주에서 여진군에 격파되어 천조제가 서쪽으로 달아나자 천조제를 이어 즉위한 야율순이 원군을 상승군으로 곽약사를 제위상장군으로 발탁했다. 그러나 야율순이 죽고 그의 처 소씨가 섭정을 하자 곽약사는 탁주, 역주 2주를 들어 송나라에 귀순했다.
그러나 송나라의 왕안중이 여진에서 송환해 달라는 장각을 죽여 그 목을 여진으로 넘긴 것을 본 곽약사는 자신의 신분보장이 송나라에서 불투명 하다고 판단하고는 여진으로가 항복하였다.
금나라 태종은 곽약사를 연경유수에 임명하고 금패를 주는 동시에 완안이라는 국성을 내려주는 등 은전을 베풀었다. 이후 곽약사는 여진과 함께 송나라를 정벌하여 전공을 세웠다. 여진이 변경까지 수월하게 공략할 수 있었던 것, 금나라가 송나라 정벌에서 인질, 납폐(納幣), 할지(割地) 등 제반 문제를 여진의 의도대로 관철시킬 수 있었던 건 전적으로 곽약사가 송나라의 실정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발해 유민
고구려가 망했을 때 당나라에 고선지, 왕모중, 왕사례, 이정기 등 많은 고구려 유민들이 활약했다. 하지만 이들 중 이정기 장군을 빼고 나머지 세 명은 자신들의 조국을 멸망시킨 적국에 큰 활약을 했다.
고구려가 망했을 때 당나라에 고선지, 왕모중, 왕사례, 이정기 등 많은 고구려 유민들이 활약했다. 하지만 이들 중 이정기 장군을 빼고 나머지 세 명은 자신들의 조국을 멸망시킨 적국에 큰 활약을 했다.
그런데 우리는 발해 유민들의 향후 행방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그저 발해 유민들의 부흥운동이 있었고, 그것이 실패로 끝났다고만 알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발해 유민들은 끊임없이 자신들의 혼을 잃지 않았고, 그들 중 일부는 금나라로 가 자신들의 적국 요나라를 멸망시키고, 정복왕조 금을 건설하는데 큰 공을 세웠다.
여진족이 200년 가까이 되는 기간 동안 국가를 세우고 중원을 호령할 수 있었던 것은, 발해인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금나라 건국의 주역 뒤에는 발해인이 있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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