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sky_drum.blog.me/80157778303
* 글 "여진(女眞)의 한민족(韓民族) 계승성에 관해"가 양박에 관한 내용이 대부분이라 제목을 바꿔봤습니다. 

발해인 양박

여진은 이민족 중에 한민족과 가장 친밀한 민족이 아닌가 한다. 직접적으로 여진의 왕조가 우리나라에 큰 피해를 준 적은 별로 없었다. 반면 고구려와 발해의 제국시대에는 그들은 충직한 신민이었다. 비록 힘을 길렀어도 도리어 한반도의 왕조에 사대를 요구하였어도 침범한 적이 금나라 때에는 전혀 없고 청나라 때에도 그리 큰 피해를 주지는 않았다고 한다. 근데 앞서 「거란국지(契丹國志:천조황제(天祚皇帝))」를 번역하다가 여진의 금(金)의 한국 계승성을 더욱 기대하게 만드는 중요한 구절을 찾아 내었다. 그에 의하면 마치 유대의 배신자로 나중에 유대의 역사를 남긴 요세푸스와 같은 발해인(渤海人) 한 사람이 존재하였다. 그의 이름은 양박(楊朴)이란 인물로 발해대족(渤海大族)이었다. 요동(遼東) 철주인(鐵州人)이었는데 고영창이 의거를 일으켰을 때 그 발해광복운동에 역시 투신하여 가담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그 후에 요양이 함락하고 잠깐 찾은 나라가 망하자 여진의 아골타에게 귀순했고 중용되었다.
 
공교롭게도 아골타에게 칭제건원과 금(金)이란 국호를 권한 것이 바로 이 발해인 양박이었다고 전하고 있다. 그리고 아골타에게 고려왕조와 동성(同姓)인 "왕(王)"을 사용하라고 권한 것도 그였다. 흔히 완안(完顏)이란 그들의 부족명이 "왕(king)"의 뜻이라는데 그것은 고려왕조와 동성(同姓)이란 의미였던 것이 아닐까? 
 
또한 「고려사」에도 여진족이 고려조정에 와서 고려를 부모의 나라로 안다고 했던 것도 보통 일은 아니다. 그들의 역사를 기록한 정사인 「금사」 에도 이를 재 확인하여 완안씨의 선조 즉 "금(金之)의 시조(始祖) 함보(函普)는 원래 고려(高麗)에서 왔다"고 밝히고 있다. 이런 인식은 만주 청나라에서도 보여진다.
 
더구나, 이 양박이란 인물이 요나라에게 선양의식을 받도록 주도하여 그 양위서에는 이런 구절이 보이기까지 한다.
 
"숙신지구(肅慎之區)를 권유(眷惟)해 보면,실은 부여(扶餘)의 풍(風)에 의거한다. "
숙신이 조선과 같은 말인지는 차치하고라도 이 새로운 나라가 부여를 계승한다고 나와 있는 것이다. 참으로 이런 설들이 근거가 없는 말이 아니라는 것을 알겠다. 하필이면 나라의 이름을 지을 때 왜 발해인에게 그 일을 맡기었을까? 양박이라는 인물에 대해서 더 알아보려고 했으나 그에 대한 기록이 더는 전해지지 않는 것 같아 아쉬울 뿐이다. 다만 다른 인물들로 나라가 망하고 부득 금에 투신하지 않을 수 없었던 많은 인물들의 전기가 요사와 금사에 남아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Posted by civ2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