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405082257415

[기자메모]청와대 대변인의 ‘계란 발언’ 보도했다고 출입정지… 부끄러운 ‘1호 기자들’
박래용 정치에디터·정치부장  입력 : 2014-05-08 22:57:41ㅣ수정 : 2014-05-08 23:01:57

8일 청와대 기자단 간사들은 경향신문 기자에게 63일 출입정지 징계를 내렸다.

지난달 21일 민경욱 대변인의 “라면에 계란을 넣어서 먹은 것도 아니고…”라는 발언이 비(非)보도를 전제로 한 얘기였는데 이를 기사화했다는 이유에서다. 

민 대변인은 춘추관 마당에서 출입기자들의 질문에 “(서남수 교육부 장관이) 라면에 계란을 넣어서 먹은 것도 아니고, 끓여서 먹은 것도 아니다. 쭈그려 앉아서 먹은 건데… 국민 정서상 문제가…”라며 서 장관을 두둔했다. 민 대변인은 “오프로 얘기하면…”이라고 발언 전에 ‘오프 더 레코드’(비보도)를 요청했다.

민 대변인의 발언은 인터넷언론 ‘오마이뉴스’가 먼저 오프를 깨고 보도했다. 통상 오프가 깨질 경우 당국자의 발언은 ‘비보도 약속’이 해제되고, 이후부터 자유롭게 보도하는 게 관행이다. 하지만 청와대 기자 간사단은 이례적으로 ‘비보도’를 계속 유지키로 결정했다. 인터넷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선 이미 삽시간에 발언이 퍼져나가고 ‘민경욱 대변인’이 포털 실시간 검색어 1위로 오르는 상황에서도 ‘보도 금지’ 방침을 내린 것이다.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결정이었다. 경향신문 기자는 간사단의 이런 결정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밝히고 “다시 논의해달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여전히 ‘비보도 유지’ 결정이 내려지자 이를 거부하고 다음날 아침 신문에 기사화했다.

간사단은 이날 같은 보도를 한 ‘오마이뉴스’, 한겨레, 한국일보 기자에게도 출입정지 징계를 내렸다. 

청와대 춘추관에는 현재 취재기자 60여명을 포함해 180여명의 기자가 상주하고 있다. 이들을 대표해 종합지·경제지·인터넷언론·방송·지역신문에서 1~2명씩 모두 7명의 기자들이 간사단을 구성하고 있다. 간사단은 징계 수위를 놓고 입장이 갈리자 총괄간사에게 결정권을 위임해 이 같은 징계를 결정했다고 한다. 대변인의 ‘계란 발언’을 보도한 동료 기자들을 모두 찍어내 기자실 출입을 막겠다는 것이다. 

통상 청와대에선 국가안보나 외교, 경호상 필요한 대통령 일정에 관한 사안을 비보도나 엠바고(보도시점 유예)로 요청한다. 대변인의 ‘계란 발언’은 국가안보도 외교상의 기밀도 아니었다. 경호상의 문제도 인권에 관한 문제도 아니다. 당시엔 세월호 참사 발생 엿새째로 정부의 무능에 관료들의 부적절한 언행이 더해져 갈수록 분노가 커지고 있는 상황이었다. 이때 나온 민 대변인의 발언은 청와대의 현실 인식이 어떠한지를 엿볼 수 있는 중요한 단초였다. ‘대통령의 입’인 대변인이 사안의 위중함을 인식하기는커녕 장관을 옹호한 것은 더 심각한 사태로 보였다. 나중에 서남수 장관 스스로 “부끄럽고 민망하다”고 고개 숙였던 사안이다. 

그런데도 기자단은 대변인의 부적절한 발언을 알리기보다 오히려 새나가는 것을 막으려 했으니 언론의 책무를 내동댕이쳤다고밖에 볼 수가 없다. 

언론사에선 청와대 출입기자를 농반진반으로 ‘1호 기자’라고 부른다. 편집국 수백명 기자 중에 ‘1호’로 그만큼 역할이 막중하다는 의미다. ‘1호 기자’들이 관행과 편의에 기대 ‘오프’의 남발을 묵인하고 최고 권력기관의 감시와 견제를 외면한 것은 부끄러운 모습이다. 기자가 누군가와 한편이 되려 한다면 권력이 아닌, 시커멓게 탄 가슴을 문지르며 숨죽이고 사는 국민의 편에 서는 게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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