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677904

▲ 고 김근태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이 64세로 별세한 가운데, 30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빈소를 찾은 조문객들이 고인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 줄을 서서 분향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 유성호

[9신: 30일 오후 11시 50분]
신지호·김문수·유홍준·김인규·황석영 조문... "너무 일찍 가셨다"
 
늦은 밤으로 접어들면서 고 김근태 민주통합당 상임고문 빈소를 찾는 조문객도 다소 줄어들었다. 대신 지난 2008년 총선에서 김 상임고문을 꺾은 신지호 한나라당 의원, 민주화운동 후배 김문수 경기도지사 등 여권 인사들의 조문이 눈에 띄었다.
 
신 의원은 고인과 민청련 활동을 함께 했던 차명진 의원과 함께 빈소를 찾았다. 신 의원은 "나이보다 너무 일찍... 한 10년 더 활동하셨어야 했다"고 아쉬움을 표시했다. "서로 계열이 달라 내가 운동권이던 시절에도 특별한 인연은 없었다"는 신 의원은 '총선 때 맞붙은 인연으로 오게 됐느냐'는 질문에 고개를 끄덕였다.
 
신지호 의원은 18대 총선 때 서울 도봉갑에서 김 상임고문을 꺾고 국회의원이 됐다. 일부 측근들이 김 상임고문의 건강악화 원인으로 '총선 패배로 인한 무력감'을 꼽고 있는 상황에서 신 의원의 조문은 이례적인 것. 본인으로서도 어려운 발걸음을 했다고 할 수 있다.
 
신 의원은 그러나 "선거란 것은 선의의 경쟁이고, 나는 내가 생각하는 게 있고 나하고 (김 상임고문은) 추구하는 가치는 다르지만, 인간적으로 대단한 분이다. 그 분 없는 민주화란 생각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이어 "민주화운동에 업적을 남기신 부분에 대해선 항상 존경하는 마음을 갖고 있다"고 밝혔다.
 
김문수 경기도지사도 김 상임고문을 조문했다. 그는 "이렇게 갑자기 돌아가시니... 이렇게 빨리 돌아가실 줄은 몰랐다. 아직 돌아가실 나이가 아닌데..."라며 황망해했다.
 
김 지사는 "근태 형은 민주화운동의 상징이고 많은 고난을 겪는 동안에도 신사셨다. 이론의 대가이면서 인품이 훌륭하셨다"고 고인을 평가했다. 김 지사는 "근태 형은 바로 내 직속 선배"라며 "71년 내가 2학년때 제대 뒤 방학 때 농활 대신 공장에 공활을 갔을 때 안내하고 지도해준 서클 지도 선배다. 현장활동도 같이 했고, 말하자면 운동권의 같은 집안 출신"이라 회고했다.
 
최근 한나라당을 탈당한 정태근 의원도 빈소를 찾았다. 그는 "김근태 선배가 버티지 않았다면 우리는 반 죽었을 거다"라고 회고했다. 안기부가 85년 구미유학생간첩단사건 등을 조작하고 이를 전국학생총연맹(전학련)과 엮으려 했지만, 이를 이루지 못한 것은 고문을 이겨낸 김근태의 공이 크다는 것.
 
정 의원은 "김근태 선배가 버틴 덕분에 안기부 공작이 실패했고, 그 결과 학원안정법이 통과되지 못했다"며 "그게 통과됐다면 학생운동권이 초토화됐을 것이다. 학생운동 내 대중운동이 활발해져 87년 6월항쟁까지 이어지는 흐름을 지켜낸 것이 김근태 선배"라고 평가했다.
 
김인규 KBS 사장도 조문... 황석영 "진보진영 통합이 우리들의 숙제"
 
이 밖에도 유홍준 명지대 교수(전 문화재청장), 김인규 KBS 사장, 소설가 황석영씨 등도 김 상임고문을 조문했다. 황석영씨는 "74년 유신 직후 김상진 열사가 할복을 했을 때 (김 상임고문이) 느닷없이 신동수와 둘이 수유리 우리 셋방에 찾아와서 성명서를 작성했던 일이 기억난다"고 회상했다.
 
황씨는 "투쟁의 결과로 87년 체제가 들어서긴 했지만 군부 잔재 세력과 보수정치세력이 연합하고, 양김이 분열했고, 민주화세력이 기성체제에 들어오는 상황에서부터 김근태는 '잘못됐다' '주체적인 동력을 잃었다'고 한탄했다"며 "요즘도 '그때가 가장 아쉽다'고 했고, 지금의 진보진영 통합도 잘 이뤄내길 간절히 바랐다. 이걸 해내는 게 우리들의 숙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Posted by civ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