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682386
비서진들이 전하는 노무현의 봉하일기, 그 속에는...
김경수 전 비서관 등 <봉하일기-그곳에 가면 노무현이 있다> 펴내
12.01.10 17:12 ㅣ최종 업데이트 12.01.10 17:37 윤성효 (cjnews)
고 노무현 대통령을 모셨던 비서진들이 <봉하일기-그곳에 가면 노무현이 있다>(도서출판 부키)를 펴냈다. 고 노무현 대통령이 2008년 2월 25일 귀향한 뒤 봉하마을에서 지냈는데, 옆에서 지켜보았던 비서진들이 '애틋한 이야기'를 쏟아낸 것이다.
책은 김경수 전 비서관이 엮었는데, 김상철·김종민·백승권·신미희·안영배·양정철·윤태영·이창섭·정구철·조기숙 전 비서관·행정관·대변인·수석 등이 글을 썼다. 여기에다 고 노무현 대통령이 봉하마을에서 오리농법을 소개하거나 방문객을 맞으며 했던 발언도 담았다.
3주 만에 노대통령 얼굴이 까맣게 탄 이유는...
▲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마지막 비서관'인 김경수 전 비서관이 <봉하일기-그곳에 가면 노무현이 있다>라는 제목의 책을 엮어 펴냈다. ⓒ 노무현재단
총 32편의 글 속에는 고 노무현 대통령의 봉하에서의 나날들이 오롯이 담겨 있다. 노 대통령이 귀향한 뒤 많은 방문객들이 봉하마을을 찾았는데, 고인은 물론 비서들도 예상하지 못했다고 한다.
"3주 만에 만난 대통령은 얼굴이 많이 탔습니다. 이유인즉슨 하루 한두 시간 가까이 수백 명의 방문객들과 일일이 사진을 찍는데, 세심한 대통령이 역광(逆光)이면 사진이 잘 안 나온다며 해를 정면으로 보고 포즈를 오래 취하다 보니 그리 탔다는 것입니다."(양정철)
비서진들이 전하는 노 대통령의 귀향 일성은 "야~ 정말 기분 좋~다"였다. 오리를 풀어 자연 농법을 실험하는 소박한 농군이자, 손녀딸을 자전거에 태우고 화포천 둑길을 달리는 자상한 할아버지, 태어나고 자란 고향을 살기좋은 생태마을로 가꿀 꿈에 부푼 자연인 '노무현'에게 봉하는 그 어느 때보다 행복한 시간을 선사했던 것.
"그곳에 가면 따뜻하고 정겨운 전직 대통령을 볼 수 있었다. 항상 따뜻한 시선으로 세상을 보려고 했던 그분의 시선을 그곳에서 만큼은 있는 그대로 온전히 느낄 수 있었다. 국민들도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던 대통령 출신의 농군을 좋아했다."(문재인).
비서진들에 의하면, 고 노무현 대통령은 봉하마을 생활을 의욕적으로 시작했다. 마을가꾸기를 위해 자원봉사자들과 청소를 하고, 주민들과 친환경농사를 어떻게 지을지 상의했던 것. 여러 가지 아이디어가 많았다고 비서진들을 소개했다.
고 노무현 대통령은 모교를 찾기도 했는데,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옆에서 들었던 비서진들이 대화 내용을 소개해 놓았는데, 미소를 짓게 하는 이야기가 많다.
"학생들 앞에 선 대통령은 1959년 35회 졸업생이라며 인사말을 건넵니다. '적어라. 종이 없으면 손바닥에 적어라.' 농담까지 섞어 가며 말을 이어 가자 여기저기서 웃음과 환성, 박수가 터져 나옵니다. 초등학생답게 별의별 질문이 다 나오네요. '어린이회장 해 보셨나요?' '어떤 운동을 잘하세요?' '영부인은 어떻게 만나셨나요?' 등등. 압권은 이 대목입니다. '저희 고모부 아세요? 박 아무개라고요.' '잘 알지. 그저께 나랑 장군차 심었는데.'"(안영배).
고 노무현 대통령은 퇴임 뒤 '민주주의 2.0'이라는 웹사이트를 만들어 온라인에서 국민들과 토론하려고 했다. 고 노 대통령은 홈페이지에 "이제 민주주의 2.0으로 갑니다"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전직 대통령의 '봄날'은 오래 가지 않았는데, 검찰이 친인척과 주변 사람들에 대한 수사를 벌였던 것이다. 2008년 겨울 초입 고 노무현 대통령은 방문객들에게 인사를 하고 대문 밖으로 나오지 않았는데, 비서진들은 "긴 겨울잠에 들어가야 했다"고 소개했다.
"11월이 되면서 대통령과 주변 사람들에 대한 검찰 수사 등 압박이 본격화됐다.12월 5일 대통령은 형님 사건에 대해 입장을 밝혔다. '따뜻해지면 다시 인사드리러 나오겠다'는 인사를 마지막으로 방문객 인사를 중단했다. 더 이상 방문객들과 만나기 어렵다고 판단한 것이다. 대외 활동도 어려워졌다. 대통령 활동을 정리해 홈페이지에 올리는 일이 무의미해졌다."(김경수)
"대통령은 담배를 피우셨다. 끊으려고 해 보기도 하고 줄이려고도 해서 대통령이 갖고 있지 않고 비서들에게 맡겨 놨다. 비서실 문을 벌컥 열고 들어오면서 '담배 한 대 주게.' 그러면 재떨이와 담배 한 개, 라이터를 드렸다. 서거하고도 꽤 오랫동안 환청 같은 게 들렸다. 대통령이 문을 열고 들어오거나 인터폰으로 '경수씨, 담배 한 대 주게'라고 하는 목소리가 계속 들렸다. 돌아보면 아무도 없었다"(김경수).
"경수씨, 담배 한 대 주게" 환청 들려
▲ 김경수 노무현재단 봉하사업본부장. ⓒ 윤성효
청와대부터 봉하마을까지 모셨던 비서진들은 고 노무현 대통령을 보내드리고 나서 어떤 심정이었을까.
"서거하신 그해에는 대통령을 보내 드리는 게 제일 큰일이었다. 장례를 치르고 유언에 따라 집 가까운 곳에 묘역을 마련해 안장하고 사십구재를 지냈다. 다른 일을 돌볼 겨를이 없었다. 그럼에도 그 사이에 김정호 비서관을 비롯해 마을 가꾸기 사업을 담당했던 비서진은 주민들과 함께 친환경 농사를 지었다. 장례가 끝나자마자 바로 모내기를 시작했다"(김경수).
고 노무현 대통령이 방문객 인사나 오리농법 소개를 하며 했던 발언은 "봉하마을 명물을 소개합니다", "약자 지키는 학이 용보다 낫습니다", "땅이 살아야 사람도 삽니다", "세금 깎으면 경제성장? 새빨간 거짓말입니다"라는 제목으로 정리해 놓았다.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은 "바보 노무현의 뒤를 잇는 사람들"이란 제목의 서문을 썼다. 김경수 전 비서관은 "봉하 그 후"라는 제목의 글에서 아쉬움을 드러내 놓았다.
"봉하를 '아름답고 살기 좋은 농촌 마을'의 모델로 만들어 다른 지역으로 확산시키고 싶어 했던 대통령이 <민주주의 2.0>을 개발할 당시에 지금처럼 트위터와 페이스북이 있었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가끔 그런 상상을 해 본다. 대통령은 당연히 자신의 트위터와 페이스북 계정을 만들었을 것이다. <민주주의 2.0>에서 제기된 이슈와 토론은 대통령의 트위터와 페이스북을 통해 빠르게 전파되지 않았을까? <민주주의 2.0>의 성공 가능성도 훨씬 높아지지 않았을까? 아쉬움이 남는 대목이다"(김경수).
김경수 전 비서관은 11일 오후 7시 김해 진영문화센터에 '북콘서트'를 연다. 김 전 비서관은 민주통합당으로 '김해을'에 출마하며, 이날 행사에는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 등이 참석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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