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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자하-요동반도 일대 고구려 성의 분포 양상과 지방 통치
 
역사문화연구  |  2017, vol., no.61, pp. 77-124 (48 pages) 
발행기관 : 한국외국어대학교(글로벌캠퍼스) 역사문화연구소
이경미 /Kyongmi Lee  |  한국외국어대학교
 
본고는 현재까지 태자하-요동반도 일대에서 확인되는 121기 고구려 성곽의 분포 양상을 기초로, 고구려 후기 지방통치의 양상을 살펴보았다.
 
요동반도 일대 고구려 성은 주로 주요 하천의 수계를 따라 형성된 교통로상에 분포하고 있다. 자연지형과 교통로를 중심으로 대략 초하·애하유역권, 초자하·대양하유역권, 벽류하 유역권, 발해만 연안권, 태자하 유역권의 5개 권역으로 나눌 수 있다. 특히 초자하·대양하유역권에서는 각 지류의 초입이나 산간 지대의 입구에 중소형 산성이 독립적으로 분포하는 특징을 보인다. 또한 둘레 500m 이하의 보루는 전체 121기중 48기인데, 이 중 31기가 초하·애하유역권과 초자하·대양하 유역권에 집중 분포해 있다. 이러한 보루의 분포 양상은 둘레 500m 이상의 산성의 분포 양상과는 확연히 다른 차이가 있으며 봉황산산성 등 특정 성(城)과의 관련성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문헌 사료의 검토를 통해 요동반도 일대 고구려 성 121기중 73기 정도가 고구려 후기 지방통치단위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둘레 500m 이하의 보루 48기는 순수 군사방어시설로서 지방통치단위와 관련이 적을 것으로 이해된다. 봉황산산성(오골성), 낭낭성산성(다벌악성), 고려성산산성(건안성), 요동성 등의 욕살(褥薩)이 파견된 대성은 내성(內城)과 외성(外城)을 갖춘 복곽식 성곽임이 확인된다. 건안성으로 비정되는 개주 고려성산산성은 산성내 금전산(金殿山) 유적이 내성의 기능을 하였을 것으로 추정하였다.
 
광개토왕대에 ‘장사, 사마 참군사(長史, 司馬, 參軍師)’가 설치되었는데, ‘요동성 장사(長史)’ ‘가군사(假軍師) 비열홀 세활’ ‘박작성의 보병과 기병 1만’의 존재를 통해 욕살 휘하에도 ‘장사, 사마, 참군사’의 요좌(僚佐)가 있어 업무를 분장하였을 것이다. 사마와 참군사가 ‘군사업무’였고, ‘4만의 주민, 1만의 병사, 50만석의 양곡’의 기록의 중요성을 통해 지방관의 주요 업무의 하나가 수취 업무였으므로, ‘장사’는 부세 징수와 역역(力役) 동원 등의 업무를 분장하였을 것이다. 소성(小城)에 설치된 가라달(可邏達)이 ‘장사’에 비견되는 점에서 가라달의 직무는 부세 징수와 관련된 일을 관장하였을 것이다.
 
가라달이 ‘장사’에, 누초(婁肖)가 ‘현령(縣令)’에 비유된 것은 둘의 직무가 무관하거나 상호 보완적이었기 때문이라고 생각되므로 현령의 직무가 호적관리 등 행정 업무였으며, 장사의 주 업무는 부세 징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부세 징수에는 삼베와 곡물같은 현물세를 거두는 일에서부터, 운반하고 보관하고 지키는 등 전반적으로 역역 동원이 필요하다고 이해되므로 업무의 성격상 병사를 활용할 가능성이 많았을 것이다. 이에 장사는 부세 징수와 관련된 업무 전반에 역역을 동원하고 활용할 수 있는 ‘사마와 참군사’의 군사업무가 더해졌을 것이며, 현령은 호적 관리 등 대민행정업무만을 전담하도록 상호 업무를 분리, 관장할 필요가 있었을 것이다. 소성(小城)에 설치된 가라달은 이러한 ‘장사’의 업무와 비견되었던 것이고 누초는 ‘현령’에 비견되었던 것이다.
 
현령은 대민 행정권을, 가라달은 재정권(현물세의 부세 징수, 역역 동원)과 군사권을 부여받아 소성(小城)을 이원화된 구조로 통치하였을 것으로 추정하였다. 즉 소성(小城)에는 욕살급 대성(大城)이나 처려근지급 성(城)에 두어졌던 장사, 사마, 참군사와 같은 속료의 설치없이 가라달과 누초가 설치되어 업무를 분장하였을 것으로 추정하였다.
 
 
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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