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636309


의료 선진국들도 맥 못춘 코로나19... 'K-방역'의 성공 비결

[코로나19와 서울의 공공의료 ②] 공공의료 인프라와 시민의식 둘 다 갖춰야

20.04.28 13:48 l 최종 업데이트 20.04.28 13:48 l 손병관(patrick21)


코로나19로 관광객 끊긴 이탈리아 피사의 사탑 (피사 EPA=연합뉴스) 이탈리아를 강타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관광 명소인 피사의 사탑을 찾는 발길이 완전히 끊긴 가운데 한 방역 요원이 17일 (현지시간) 사탑 주변 광장에서 소독제를 살포하고 있다.

▲ 코로나19로 관광객 끊긴 이탈리아 피사의 사탑 (피사 EPA=연합뉴스) 이탈리아를 강타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관광 명소인 피사의 사탑을 찾는 발길이 완전히 끊긴 가운데 한 방역 요원이 3월 17일 (현지시간) 사탑 주변 광장에서 소독제를 살포하고 있다. ⓒ 연합뉴스


전 세계를 휩쓴 '코로나19' 사태에서 최대 미스터리 가운데 하나는 'K-방역'의 성공이다.


민주주의와 시장경제가 안착된 나라들이 모인 OECD(경제협력개발기구)의 지난해 통계를 살펴보면, 우리나라는 GDP 대비 경상의료비(7.6%, OECD 평균 8.8%)와 인구 1000명당 의사 수(2.3명, OECD 평균 3.4명)와 간호사 수(3.4명, OECD 평균 9.0명) 등에서 평균을 밑도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


대규모 역병이 발생할 경우, 환자들을 우선 수용해야 하는 공공병원 인프라의 영역으로 넘어가면 그 격차는 더욱 벌어진다.


1000명당 병상 수(12.3개)는 OECD 평균(4.3)을 3배 상회하지만, 이 가운데서 공공의료기관이 차지하는 비중은 2012년 11.7%에서 2018년 10.0%로 오히려 감소하는 추세다. 서울도 전국 평균을 약간 웃도는 11%에 불과하다. 나머지 89%는 민간병원에 의존한다는 얘기다.


반면, 국민건강서비스(NHS)라는 세계 최초의 근대적 의료서비스를 마련한 영국이 100%의 병상을 갖춘 것을 비롯해 프랑스(62.5%)와 독일(40.6%), 일본(26.4%) 등이 우리나라보다 훨씬 나은 공공의료 인프라를 갖춘 것으로 평가됐다. 심지어 민간보험에 크게 의존하는 미국도 공공병상 비율(24.9%)에서는 우리나라 2.5배의 병상을 확보했다.


의료 선진국 도시들과 비교해 서울의 '선방' 두드러져


우리나라의 공공의료 인프라는 전 세계 보건의료계에서 어느 정도의 평가를 받고 있을까?


NHS에서 20년 근무한 영국의 보건의료전문가 마크 브릿넬은 2015년 OECD 19개 회원국을 포함해 전체 30개국의 의료시스템을 비교한 책 <완벽한 보건의료제도를 찾아서>를 펴냈다.


이 책에서는 "완벽한 보건의료는 존재하지 않지만, 만약 그런 제도가 있다면 다음과 같은 요소들을 조합한 모습일 것"이라고 결론 내렸다.


△영국이 추구하는 '보편적 의료보장'의 가치 △이스라엘의 1차 의료 △브라질의 지역사회 기반 의료서비스 △호주의 정신보건과 웰빙 △북유럽 국가들의 건강증진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의 환자와 지역사회의 역량 강화 △미국의 연구개발 △인도의 혁신, 기업가적 수완, 속도 △싱가포르의 정보통신기술 △프랑스의 선택권 보장 △스위스의 재정 지원 △일본의 노인의료.


마크 브릿넬은 한국에 대해서는 "단 12년 만에 보편적 건강보험을 완성한 것은 정말 놀라운 성과"라면서도 "불확실한 경제 전망과 급속한 인구고령화를 감안하면 국민건강보험공단 수가와 환자 실비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시스템은 지속 불가능하다"고 평가했다.

 

 전 세계 코로나19 사망자 및 확진자의 국가별 추이

▲  전 세계 코로나19 사망자 및 확진자의 국가별 추이 ⓒ 코로나19(COVID-19) 실시간 상황판


그렇다면, 그가 책에서 한국은 물론이고 전 세계 의료제도의 롤모델로 추켜세운 나라들의 '코로나19' 방역 성적표는 과연 어떨까? 


세계보건기구(4월 25일 기준) 집계에 따르면, 미국이 확진자 수(92만5758명)와 사망자 수(5만2217명) 양쪽에서 1위를 달리는 가운데, 영국(14만3464명 확진, 1만9506명 사망)과 프랑스(12만2577명 확진, 2만2245명 사망), 브라질(5만4043명 확진, 3704명사망), 스위스(2만8677명 확진, 1593명 사망), 인도(2만4530명 확진, 780명 사망) 순이다.


이들 나라는 한국(1만718명 확진, 240명 사망)을 크게 앞지르고 있다. 양대 지표에서 한국보다 양호한 성적을 거둔 나라는 호주(6695명 확진, 80명 사망)밖에 없다.


물론, 나라마다 인구 편차가 있기 때문에 확진자가 적게 나왔다고 해서 방역을 성공적으로 했다고 평가할 수는 없다. 예를 들어, 인도(2만6283명 확진, 825명 사망)와 포르투갈(2만3392명 확진, 880명 사망)은 비슷하지만 인구는 각각 13억5000만 명과 1027만 명으로 130배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온 지표가 인구 100만 명당 발생률이다. 이 기준을 적용하면 스위스의 비율(3313명)이 크게 올라가고 미국(2797명), 영국(2113명), 프랑스(1878명), 이스라엘(1750명) 등이 뒤를 잇는다.


한국의 보수언론들이 코로나19 사태 초기 타이완(429명 확진, 6명 사망), 홍콩(1037명 확진, 4명 사망)과 함께 아시아의 3대 방역 모범국으로 꼽았던 싱가포르(1만2693명 확진 12명 사망)의 발생률은 인구 대비 2170명으로 껑충 뛴다. 이에 반해 한국(209명)은 호주(263명), 브라질(254명)보다 양호하다.


<오마이뉴스>가 주요 도시별 확진자 숫자를 공개한 20개국의 정보를 취합해보니 확진자 수를 629명(4월 24일 기준)로 묶은 서울의 '선방'도 두드러졌다.


미국 뉴욕 : 14만1754명 / 터키 이스탄불 : 6만1074명 / 스페인 마드리드 : 6만487명 / 중국 우한 : 5만333명 / 러시아 모스크바 : 3만6897명 / 영국 런던 : 2만2767명 / 프랑스 파리 : 1만9457명 / 헝가리 부다페스트 : 1만8841명 / 미국 시카고 : 1만5399명 / 싱가포르 : 1만3624명 / 이탈리아 베르가모 : 1만946명 / 독일 베를린 : 5600명 / 필리핀 마닐라 : 4916명 / 벨기에 브뤼셀 : 4438명 /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 3798명 / 스위스 취리히 : 3754명 / 노르웨이 오슬로 : 2250명 /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 1331명 / 루마니아 부쿠레슈티 : 1167명 / 홍콩 : 1038명.


보건 전문가들 "방역과 의료는 별개의 영역"

 

 박원순 서울시장이 지난 3월 27일 오후 11시 15분께부터 28일 오전 0시 25분께까지 집무실에서 31개국 45개 주요 도시 시장들의 '코로나19' 공동대응 화상회의에 참여해 서울시의 방역 경험과 노하우를 소개했다.

▲  박원순 서울시장이 지난 3월 27일 오후 11시 15분께부터 28일 오전 0시 25분께까지 집무실에서 31개국 45개 주요 도시 시장들의 "코로나19" 공동대응 화상회의에 참여해 서울시의 방역 경험과 노하우를 소개했다. ⓒ 서울시

 

'이러한 결과를 곧장 한국과 서울의 의료시스템 성공이라고 결론낼 수 있느냐'는 의문이 제기될 수 있다.


미국에서 코로나19 확진자와 사망자가 급증하자, 일부에서는 "민간의료에 크게 의존하는 미국 공공의료시스템의 취약성이 드러났다"는 풀이를 내놓았다.


하지만 미국 다음으로 많은 사망자를 낸 나라들이 이탈리아(2만5969명), 스페인(2만2524명), 프랑스(2만2245명), 영국(1만9506명), 벨기에(6917명), 독일(5767명) 등 유럽 6개국이었다. 모두 합치면, 미국 사망자 수의 2배(10만2928명)에 달하는데, 그동안 유럽의 공공의료 인프라는 다른 나라들보다 뛰어나다는 명성을 쌓아왔다.


독일의 경우 1883년 '질병 금고'라는 이름으로 보편적 의료제도를 도입했고, 프랑스는 세계보건기구(WHO)가 2000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실시한 국가별 보건의료 성과표에서 당당히 1위를 차지했다. 그러나 코로나19 사태는 유럽 국가들의 의료 인프라가 '속 빈 강정'이라는 사실을 여실히 드러냈다.


보건 전문가들은 일단 "방역과 의료는 별개의 영역으로 봐야 한다"며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조성일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환자들이 너무 많이 몰려들면 최고의 의료진이라도 다 살릴 수가 없다"면서 "선진국들의 의료가 실패한 게 아니라 방역 또는 정치 영역에서 실패한 것으로 봐야 한다"는 의견을 내놨다.


박원순 서울시장도 4월 27일 오후 '팬데믹과 동아시아' 컨퍼런스에 참석한 자리에서 "이번 코로나19 사태에 잘 대응했다고는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여전히 우리가 선진의료체계를 구축하고 있다고 말하기 어렵다"면서 "방역 하나 잘 했다고 모든 것이 갑자기 우위에 설 수는 없다"고 인정했다.


메르스 사태를 반면교사 삼은 'K-방역

 

 '살려야 한다'. 메르스 사태 당시, 드라마 뺨 치는 사진 연출력을 선보였던 박근혜 대통령과 청와대.

▲  "살려야 한다". 메르스 사태 당시, 드라마 뺨 치는 사진 연출력을 선보였던 박근혜 대통령과 청와대. ⓒ 연합뉴스


K-방역 성공의 유력한 가설 가운데 하나는 '메르스 학습효과'다.


2015년 기승을 부린 메르스는 치사율 34.3%의 무서운 감염병이었다. 메르스는 미국과 유럽을 비껴갔지만, 우리나라는 사우디아라비아(452명) 다음으로 많은 사망자(38명)를 냈다.


WHO가 2015년 6월 한국에 보낸 평가단이 기자회견에서 "투명하고 신속한 정보 공개가 제일 중요했는데 이게 한국이 초기 대응에 실패한 원인 가운데 하나"라고 콕 집어 지적할 정도로 망신을 샀다.


메르스 사태는 한국 정부의 방역 태세를 크게 바꿔놓았다.


2003년 사스로 곤욕을 치렀던 홍콩의 상황도 눈여겨볼 만하다. 홍콩에서는 코로나19 사태 초기에 일가족 19명의 집단감염이 드러나자, 2003년 중국(349명) 다음으로 많은 사망자(299명)를 낸 사스의 악몽을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자가격리 위반자에 대한 경찰력 행사가 4월 들어 실행됐지만, 홍콩 경찰은 이미 2월부터 위반자에 대한 체포에 들어갔고 여론의 반발도 크지 않았다. 홍콩의 코로나19 사망자는 4명에 그쳤다.


한국 정부뿐만 아니라, 감염병을 대하는 한국 국민들의 인식이 달라진 것도 코로나19 국면에서 인상적인 부분이다.


서울대 보건대학원 유명순 교수(한국헬스커뮤니케이션 학회장)는 중국 우한 교민 368명의 집단 귀국으로 불안감이 커진 지난 1월 31일 이후 성인 1000명 대상으로 코로나19에 대한 의식 설문조사를 4차례 연속 실시했다. 최근 조사(4차)는 4월 10~13일 한국리서치에 의뢰해 실시됐다.


1차 조사에서 응답자의 91.6%는 코로나19 소식을 접할 때 메르스를 떠올린다고 답했고, 코로나19의 치사율에 대한 우려도 컸다('메르스보다 치명력이 더 클 것이다' 49.3%, '그렇지 않다' 20.5%).


그러나 메르스 사태 경과 1년 후 실시한 조사와 비교해보면, 시민들이 뉴스를 접할 때 떠오르는 불안과 공포, 충격 등의 감정은 유사했지만, 분노의 비중(메르스 23.7% → 코로나19 6.7%)은 눈에 띄게 줄었다.


'건강재난' 대응, 공공의료 인프라와 시민의식 결합돼야

 

'덕분에 챌린지' 참여한 중앙방역대책본부 정은경 중앙방역대책본부장(질병관리본부장, 가운데)을 비롯한 직원들이 지난 22일 충북 오송 질병관리본부에서 코로나19 환자 진료 및 치료에 힘쓰는 의료인에게 고마움을 전하는 '덕분에 챌린지'에 참여하고 있다. 덕분에 챌린지는 인스타그램 등 SNS에 '존경'과 '자부심'을 뜻하는 수어 동작 사진이나 영상을 올리고 '#덕분에캠페인', '#덕분에챌린지', '#의료진덕분에' 등 3개의 해시태그를 붙이는 국민 참여 캠페인이다. [중앙방역대책본부 제공]

▲ "덕분에 챌린지" 참여한 중앙방역대책본부 정은경 중앙방역대책본부장(질병관리본부장, 가운데)을 비롯한 직원들이 지난 22일 충북 오송 질병관리본부에서 코로나19 환자 진료 및 치료에 힘쓰는 의료인에게 고마움을 전하는 "덕분에 챌린지"에 참여하고 있다. 덕분에 챌린지는 인스타그램 등 SNS에 "존경"과 "자부심"을 뜻하는 수어 동작 사진이나 영상을 올리고 "#덕분에캠페인", "#덕분에챌린지", "#의료진덕분에" 등 3개의 해시태그를 붙이는 국민 참여 캠페인이다. [중앙방역대책본부 제공] ⓒ 연합뉴스


질병관리본부에 대한 신뢰도는 3차 조사 때 85.8%에서 4차에선 92.2%도 더 올랐다. '대한민국의 위기대응 수준'에 대한 상대적 평가도 "높다"는 의견이 84.0%에 이르렀다(3차 조사는 80.0%).


대구·경북 지역을 제외한 대다수 지역에서 "내가 속한 지역사회는 코로나19를 잘 헤쳐나갈 것"이라는 믿음이 강해진 것도 두드러진 특징이었다고 한다.


코로나19 사태는 국가별 의료 대응 수준을 평가할 때 눈에 보이는 인프라뿐만 아니라 보이지 않는 시민의식도 함께 들여다봐야 한다는 교훈을 안겨줬다.


유 교수는 <오마이뉴스> 기자와의 통화에서 "불안한 시국에서 사재기가 횡행한다는 것은 공동체에 대한 개개인의 믿음이 바닥을 드러낸다는 점에서 중요한 지표인데, 이번에는 그런 게 없었다"며 "외국에 비해 검사 기회와 치료에 대한 접근성이 낮지 않다는 평가 때문에 그런 결과가 나온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유 교수는 "공공인프라가 아무리 잘 갖춰져도 시민들의 경각심이 없으면 무용지물이고, 거꾸로 공공인프라가 갖춰지지 않는 상태에서 시민의식만으로 '건강재난'에 대항할 수 없다는 게 이번 사태의 교훈"이라며 "우리나라의 경우 수도권과 비수도권(대구·경북)의 지역 간 불균형을 바로잡아야 하는 숙제가 주어졌다"고 덧붙였다.


☞ 관련기사

[코로나19와 서울의 공공의료 ①] http://omn.kr/1nfh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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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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