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859847
청와대의 '수난'... 윤 정부 홍보 집착이 부른 참극
[인사이드 아웃] 이번엔 보그코리아 청와대 한복 화보 논란
22.08.24 15:34 l 최종 업데이트 22.08.24 17:26 l 하성태(woodyh)
▲ 보그코리아의 화보 "청와대 그리고 패션" 중에서 ⓒ 보그코리아
23일, 하루 이른바 '청와대 한복 화보'가 논란이 됐다. 전날(22일) 오후 보그코리아가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32장으로 구성된 '청와대 그리고 패션'이란 화보를 공개하면서다. 보그코리아는 해당 화보가 문화재청과의 협업으로 이뤄졌고 한혜진 등 국내 유명 패션모델 6명과 함께 본관 및 영빈관·상춘재·녹지원 등 청와대 곳곳에서 촬영을 했다고 밝혔다.
22일 저녁부터 온라인이 들썩였다. 싸늘한 반응이 주를 이뤘다. 이를 바탕으로 23일까지 비판적인 논조의 기사들도 줄을 이었다. 그러자 문화재청이 부랴부랴 해명에 나섰고 "전체를 한번 보셨으면 좋겠습니다"라고 강조했다.
안타깝다. 해명이 무색하게 화보 전체를 보고 싶어도 이제는 볼 수 없다. 23일까지 보그코리아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던 '청와대 그리고 패션'이란 제목의 화보 페이지는 현재(24일 오전 9시) 자취를 감췄다. 보그코리아는 이에 대해 별다른 설명을 내놓고 있지 않다. 문화재청 설명대로라면 영빈관 등 청와대 곳곳의 역사적 의미를 설명하고, 수십 장의 화보 속에 다양한 퓨전 한복에 대한 세세한 설명이 담긴 "좋은 장면"들이 사라진 것이다.
그 사진 전체를 한번 보시면 아시는 게 의자 위에 이렇게 누워 있는 장면도 있는데요. 실제 그거 말고 다른 많은 좋은 장면들이 많이 있습니다. 청와대를 알리는 사진하고 한복을 알리는 사진. 전체를 보시면 또 텍스트가 있습니다. 방문 캠페인도 알리고 청와대 건물에 대해서 일일이 설명하는 그런 게 있는데 사진만 몇 장을 딱 올려놓은 것 같습니다.
- 문화재청 문화재활용국 최영호 활용정책과장, 23일 KBS 라디오 <주진우 라이브>
해당 화보를 둘러싼 논란에 대해 떳떳하고 당당했다면 보그코리아가 온라인 기사 자체를 삭제했을지 의문이다. 문화재청의 선택이 '보그'가 아닌 '보그코리아'라는 점도 도마 위에 올랐다. 한복을 세계에 알리려면 문화재청이 좀 더 공을 들여 보그코리아가 아닌 보그와 화보를 진행하는 게 맞지 않느냐는 중론이었다.
문화재청은 23일 해명 자료를 배포해 "협력 매체인 '보그지'는 130여 년의 역사를 가지고 전 세계 27개국에서 발간되는 세계적 패션잡지로 동 잡지에 한복의 새로운 현대적 해석과 열린 청와대가 함께 소개되는 것도 새로운 시도가 될 것으로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애꿎게도 화보에 얼굴을 내민 모델들이 제일 먼저 비판의 대상이 됐다. 문화재청 청와대국민개방추진단이 자처한 논란인데도 여러모로 납득하기 어려운 상황이 전개된 것이다. 이에 대해 청와대개방추진단은 해당 논란에 대해 "겸허하게 수용하겠다"라면서 "향후 청와대에서의 촬영 및 장소사용 허가의 기준을 엄격히 적용하고 보다 면밀히 검토하여 열린 청와대의 역사성과 상징성이 강화될 수 있도록 신중을 기하겠다"는 입장을 내놨다.
해명 자체도 궁색하지만 더 큰 문제는 문화재청이 내놓은 이러한 해명에도 윤석열 정부 전체의 철학 없는 '홍보 논란'이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는 데 있을 것이다.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처음이 아니었다. 앞서 홍보에 급급했던 나머지 청와대국민개방추진단이 논란을 자처한 일 말이다. 이달 초 iHQ의 OTT 플랫폼인 '바바요'가 청와대를 배경으로 신세계그룹 계열의 브랜드 소파를 홍보하는 영상을 공개했다가 비난이 일자 해당 영상을 삭제하는 일이 벌어졌다. SBS를 비롯해 여러 방송사가 윤석열 정부가 취임 첫날 개방한 청와대를 홍보하는 예능 프로그램을 편성해 곱지 않은 시선을 받았다.
▲ 온라인동영상서비스 iHQ가 유튜브채널에 올린 영상에 "대한민국 최초 청와대를 방문한 소파"라는 자막이 달려 있다. 이 영상은 이후 삭제됐다. ⓒ iHQ
방송 프로그램의 경우 청와대 홍보의 일환일 것이다. 하지만 신세계 계열의 브랜드 상품을 홍보하는 광고 영상은 다르다. 이를 허가한 문화재청은 '상업광고인 줄 몰랐다'는 취지로 해명했다. 몰랐으면 무능이, 알았다면 의도 자체가 비판의 대상일 수밖에 없었다.
문제는 크게 두 가지다. 급할수록 돌아가라고 했다. 윤석열 정부가 빈약한 치적을 홍보하기 위해 일반인과 방송이 관심을 보일 만한 청와대 공개를 앞세우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최근 문화재청이 허가한 일반인들의 '궁궐 웨딩 촬영'에 이어 '청와대 웨딩 촬영'까지 현실화되는 것 아니냐는 볼멘소리가 나오는 배경이다. 그 시급한 홍보를 위해 방송을, 패션 화보를 동원한다. 그 과정에서 준비 부족을 여실히 드러낸다. 졸속이란 표현이 아깝지 않다.
더 큰 문제는 철학이다. 취임 첫날부터 청와대 공개를 강행한 윤석열 정부의 애초 의도는 둘째치더라도, 급하게 이뤄진 공개에 철학이 담길 리 만무하다. 철학이 부재하니 메시지가 담길 리 없다. 그 메시지가 국민에게 가 닿는 것도 어불성설이다.
화보 논란은 곪은 것이 터진 비극적 사례일 뿐이다. 해명에 나선 문화재청은 '한복의 다양화 홍보'나 (중국의) '문화공정'을 들었다. 이 역시 대국민 홍보의 일환일 수 있다. 하지만 직접 확인해 본 화보 속 이미지는 부조화의 미학에 가까웠다.
▲ 모델 한혜진이 청와대 영빈관 안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보그코리아
일반에 공개된 지 이제 100일이 좀 넘은 청와대 곳곳의 역사적 의미는 나열되는 데 그쳤다. 그보다 국적 불명에 가까워 보이는 한복과 모델과 잡지가 제시한 의미불명의 포즈만이 강조됐을 뿐이었다. 일반적인 여성 패션지, 더군다나 보그 특유의 문법이나 이미지가 고려되지 않은 난감한 프로젝트라 할 만했다. 무엇보다 청와대란 공간이 주는 고풍스럽거나 전통적인 이미지와 '퓨전 한복'이란 의상이 뒤섞여 일종의 그로테스크함을 안겨 주기에 충분했다.
온라인 상에서도 같은 반응이 압도적이었다. 일부는 불쾌감과 자괴감마저 호소했다. '청와대는 창경궁이 아니다'는 의견은 예사요, '청와대의 품격'을 일부로 훼손하겠다는 의도를 읽는 이들마저 속출했다. 그 과정에서 화보 속 일부 의상을 일본의 패션디자이너가 디자인했다고 문제 삼는 이들까지 나왔다.
청와대에서 근무했다는 한 사진가도 '납득 불가'란 반응을 내놨다. 일관된 철학의 부재를 인지하기는커녕 입증되지 않은 홍보 효과에 급급한 데서 온 참극이었다. 더 큰 문제는 윤석열 정부의 대국민 홍보 과정에서 빚어지는 참극을 막을 길이 요원해 보인다는 슬픈 예감이이라.
국격을 논할 자리가 없다
광복절 경축식 세부 연출은 제가 뭐 말하기 참담해서 말을 하지 않을 거고요... 한마디로 정리하면 광복절을 용산 이전의 당위성에 이용한 거죠.
탁현민 전 청와대 대통령비서실 의전비서관이 23~24일 양일간 KBS와 TBS 라디오에 출연, 지난 77주년 광복절 경축식 연출에 대해 내놓은 촌평은 이랬다. 실제 그랬다. 두 눈을 의심할 만했다. 용산 대통령실 앞 잔디마당에서 펼쳐진 이번 광복절 경축식은 이전 정부와 비교해도, 선진국 반열에 오른 대한민국의 국격을 감안해도, 볼품없다는 표현조차 무색할 정도였다.
용산 대통령실 앞이란 공간 자체가 그랬다. 다급한 홍보가 최우선이요, 철학의 부재마저 여실히 드러냈다. 규모가 문제가 아니었다. 역대 보수정부가 그렇게 강조해 온 국격은 고려 대상이 아닌 것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 윤석열 대통령이 15일 용산 대통령실 잔디마당에서 열린 제77주년 광복절 경축식에서 경축사를 하고 있다. ⓒ 대통령실 제공
홍보에 힘을 쓰면 쓸수록 자기가 파놓은 수렁에 빠지는 형국이다. 수해 현장을 방문한 대통령의 사진을 홍보용 이미지로 활용한 것이나 최근 국정 과제 홍보물 중 하나로 대통령을 중심으로 참모들이 둘러앉은 연출된 이미지를 공개한 것이나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나름의 철학과 메시지는커녕 공감 부재와 낮은 안목만 노출하는 역효과를 불러일으킨 것이다.
일부 오욕의 기억을 간직한 청와대도, 광복절 경축식도 존중해야 할 역사와 전통의 산물이다. 외국인들도 좋아하는 한복은 말할 것도 없다. 특히 청와대는 문화재청이 관리하는 만큼 문화재로서의 가치도, 그에 따른 국민의 관심도 높다.
이들 모두가 도리어 현 정부의 낮은 안목과 철학의 부재만 노출한 국정 홍보에 이끌려 나와 때아닌 고난을 겪는 중이다. 여기에 국격을 논할 자리는 없어 보인다. 실시간으로 이를 지켜보며 피로감을 겪고 있는 국민이 현 정부의 이러한 '홍보 집착'을 곱게 봐줄지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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