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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리장성의 남쪽 거점, 분지의 요새 건안성
이창호 08/10/10


고구려 사람들을 만나고 싶었다. 몇 번씩 지도를 보고, 또 보고. 고구려인들이 축성한 성을 찾아다녔다. 어렵지 않게 다가갈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아니었다. 너무나 긴 세월이 지난 탓일까, 역사책에 남아 있는 흔적들이 미미한 탓일까. 제대로 알고 있는 이들이 드물다. 오늘 요동 땅에 살고 있는 중국의 보통 사람들은 아주 무관심하다. 지도를 펼쳐 한참 물어봐도 고개만 갸우뚱. 몇 번이나 옆 사람에게 되물어야 겨우, 어렴풋이 이야기한다. 현지 가이드 없이 찾아 나선 길이니 모든 게 산 너머 산이다. 초기 천리장성의 남쪽 끝으로 여겨지는 고구려성 건안성(建安城) 가는 길이 만만치 않다. 

열차로 가는 따롄에서 건안성까지 

따롄(大連) 공항에서 역까지 약 11km. 택시를 이용하니 금방이다. 인민폐 27원. 오전 비행기를 타면 역 근처에서 점심 식사를 하기에 충분하다. 역전 분식집에서 만두로 배를 채우고, 오후 2시1분에 따롄을 출발해 까이조우(盖州)로 가는 기차, K368을 탄다. 운이 좋다. 에어컨이 설치된 쾌속 열차다. 차창 밖 햇살은 뜨겁다. 열차 안은 비교적 한산하다. 젊은 남녀들의 왁자지껄함이 정겹다. 이 열차의 종착역은 한커우(漢口), 후베이(湖北)성의 성도인 우한(武漢)의 중앙역이다. 끝까지 가면 무려 27시간17분이 걸린다. 그러나 까이조우(蓋州)는 따롄에서 북으로 210km 떨어진 곳, 2시간49분만 참으면 도착이다. 오후 4시50분. 해는 아직 서쪽 하늘에 걸려 있다. 마음이 바쁘다.

어디나 역전은 분주하다. 열차 도착 시간에 맞춰 광장에는 택시들이 줄지어 있다. 호객을 한다. “건안성으로 갑시다.” “지앤안청(建安城)…” 대여섯명의 기사들이 서로 얼굴을 마주보며 위치를 확인한다. 그리고 서로 시끌벅적하더니 한국인이라 눈치껏 때려잡는 것 같다. “까오리춘(高麗村)을 말하는 것이냐”고 되묻는다. 아, 이들은 ‘건안성’이란 이름조차 모르는구나. “맞다. 옛 고구려성을 찾아간다”고 하니, “알겠다”며 젊은 친구가 나선다. 가격을 흥정한다. “성을 돌아본 뒤 다시 역으로 6시30분까지 돌아와야 한다”고 알려준 뒤 “얼마냐”고 물었다. 한참을 생각하더니 “전부 50원이면 된다”는 것이다. 아주 가까운가보다. 따롄에서 11km를 택시로 이동하는데 27원이었으니, 왕복에 50원이면 대만족이라. 그러나 나중에 딴 소리를 하는 통에 150원을 줘야 했다. 편도 요금이 50원이였고, 대기 요금까지 합해야 한다는 주장에 어쩔 수 없었다. 고려촌은 멀지 않았다. 포장도로를 따라 20여분 달리다 마을로 들어간다. 이 친구도 성의 위치를 제대로 알고 있지 않았다. 그저 고려촌만 알고 차를 몰았다. 

건안성은 지금 '고려성산성(高麗城山城)', 분지 요새 

마을로 들어섰지만 오가는 사람이 없다. 어느 집 앞에 차를 잠시 세우더니 사람을 찾아 성의 위치를 재차 물어본다. 그리고 ‘고려성산성(高麗城山城)’이란 표지석이 있는 곳에 주차한다. 

‘省級文物保護單位(성급문물보호단위) / 高麗城山城(고려성산성) / 遙寧省人民委員會(요녕성인민위원회) / 一九六三年 九月 三十日 公布(1963년 9월30일 공포) / 營口市人民政府(영구시인민정부)’ 

육안으로 고구려성임을 확인할 수 있는 유일한 흔적이다. 창고인 듯 한 건물의 문 앞에, 쓰레기 더미 옆에 덩그러니 자리 잡고 있을 뿐이다. 어느 책엔가 이 곳이 ‘서문지’였다고 하는데 도통 분간할 수 없다. 

도로 옆으로 무너져 내린 흙더미 사이에 돌이 몇 개 보이는 정도다. 이 돌과 이 흙이 옛 고구려성의 흔적이란 말인가. 왼쪽으로 돌아 오르면 완만한 능선이다. 과연 이 능선을 따라 성곽을 만들었을까. 줄 맞춰 드러난 돌만이 옛 성곽이었음을 증명하는 듯 하다. 민둥산 능선을 따라 바쁜 걸음을 재촉했다. 사람도 없고, 숲도 없다. 저 만치 풀을 뜯는 염소 떼와 띄엄띄엄 한두 그루 나무만 있다. 한발 두발 옮기며 발아래 밟히는 흙과 돌을 보고, 뒤 돌아 건너편 능선을 본다. 저 멀리 두 개의 높은 남쪽 능선이 보인다. 

산이 높아 천연 방어선으로 적합한 지형이다. 이 능선은 움푹 파인 곳을 삥 둘러 동으로, 서로 이어가며 북쪽 능선과도 만난다. 건안성은 커다란 분지를 에둘러 싼 요충지다. 가운데 봉분 모양의 산이 있고, 주변은 평지다. 분지 속의 산은 금전산(金殿山), 이 산에 올라서면 성 내부의 평탄한 지역과 성곽이었던 능선을 한눈에 둘러볼 수 있다. 아마 ‘장대’였을 것이다.

건안성의 둘레는 약 5km라 한다. 능선을 이용해 토축, 토석혼축, 석축 등 다양한 방식으로 성을 쌓아올린 고로봉식 산성으로 알려져 있다. 완만한 북쪽 능선에만 서도 멀리까지 훤히 바라볼 수 있다. 

당나라 장검의 군대를 무너뜨리다

고구려와 당나라의 첫 번째 전쟁(645년) 때 당은 가장 먼저 건안성을 공격한다. 당 태종은 요동성, 이세적은 신성, 장검은 건안성으로 진격한다. 한방에 고구려의 천리장성을 궤멸시키려는 것이다. 그러나 건안성은 장검의 부대를 굳건히 막아낸다. 건안성이 무너지면 안시성과 요동성이 위태롭다는 것을 잘 알고 있던 연개소문이 철저한 방어책을 세워놓았기 때문이다. 결국 당나라는 건안성 공략에 실패한데다 태종마저 안시성에서 패해 철수하고 된다.

지금 건안성은 그저 ‘고려촌’이라 불리는 고요한 시골 마을일 뿐이다. 인적조차 드물다. 이곳 저곳 다녀봐도 길을 물어볼 수 있는 사람도 없었다. 마을 청년 두 명이 낯선 사람들이 세워둔 택시에 나타나 운전기사와 잡담을 나눈 것이 전부였다. 세월은 역사까지도 잊혀지게 만드는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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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터
서문터로 추정되는 곳은 고려성산성이란 표지석 바로 옆으로 드러나 있다. 무너진 흙더미 사이로 돌이 보인다. 지금은 이쪽이 마을로 들어가는 입구이다. <김종억 자문위원>

남쪽 능선
서쪽에서 남쪽으로 이어지는 능선은 겹겹이 이어진다. 남쪽으로는 꽤 높은 산이 자리잡고 있다 <浩>

 

 

동쪽 능선 
북쪽 능선에서 본 동쪽 능선은 천연 요새를 만들 수 있는 조건을 갖추고 있다. 능선은 사방으로 이어진다. <김종억 자문위원>

금전산과 마을
북쪽 능선의 초입에선 본 건안성의 가운데 부분에는 장대로 여겨지는 금전산이 있고, 주변은 마을을 형성하고 있다. <김종억 자문위원>

 

 

구릉길
북쪽 능선에서 이어진 구릉을 따라 마을로 내려갈 수 있는 완만한 언덕이 이어진다. <김종억 자문위원>

능선길 
건안성의 북쪽 능선을 따라 길이 나 있다. <김종억 자문위원>

 

 

토석혼축의 흔적
무너져 내린 흙더미 사이로 줄을 맞춰 놓은 듯한 돌이 드러나 있다. 고구려성의 흔적으로 추정된다. <김종억 자문위원>

능선의 나무
석축성의 흔적인 듯한 돌이 드러난 능선 위에 나무가 한그루 서 있다. <浩>

 

 

건안성 능선의 염소떼
건안성으로 추정되는 능선에는 나무가 많지 않다. 민둥산이다. 염소 떼가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다. <김종억 자문위원>

건안성 안의 민가
건안성 안에는 간간히 민가가 있다. 그러나 인기척이 없다. <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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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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