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이 길어 "6) 청산리독립전쟁"의 "(3) 천수평전투" 부분만 가져왔습니다.
6) 청산리독립전쟁
(3) 천수평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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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김좌진이 지휘하는 북로군정서 독립군은 이도구 갑산촌에 도착하여 동포들이 제공하는 차조밥으로 허기진 배를 채우고 있을 때, 촌락민 동포로부터 일본군 1개 기병대가 첸쉐이핑/천수평(샘물골) 마을에 들어가서 머물고 있다는 정보를 얻었다.
북로군정서 지휘관들은 작전회의를 연 결과 천수평의 일본기병대를 선제공격하기로 결정하였다. 북로군정서 병사들은 이 때 치열한 전투와 허기와 100리의 강행군으로 극도로 피곤해 있었으나 그들은 선제공격이 아니고서는 적을 섬멸할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었다.
북로군정서는 병사들을 한 시간 정도 잠을 재우고는 다시 전투 준비에 들어갔다. 북로군정서는 10월 22일 새벽 4시 30분경 연성대가 선두에 서고 본대가 뒤에 서서 천수평을 향하여 진격하였다. 약 1시간의 행군 뒤에 북로군정서 독립군은 천수평의 외곽지대에 도착하였다. 일본군은 도전(島田:시마다) 중대장의 지휘 하에 있던 기병중대 120기로서 독립군이 아직도 100리 밖 청산리 부근에 있다고 착각했음인지 소수외 기병 순찰만 세워 놓고 병력을 촌락 안에 모아 놓았으며 토성 안에 말을 매어 놓은 채 깊은 잠에 골아 떨어져 있었다.
북로군정서 연성대는 김훈중대로 하여금 북쪽 산을 타고 나아가 민속한 행동으로 완치고우/만기구를 점령해서 일본군의 퇴로를 차단하도록 하고, 이민화중대로 하여금 천수평 남방 고지를 점령하도록 하였다. 이범석은 2개 중대를 이끌고 천수평 북쪽 냇물 한 복판을 전진하여 냇물 언덕의 사각(死角)을 끼고 천수평 동쪽에 이르면 즉각 방향을 오른쪽으로 돌려 정면공격을 결행하기로 하였다.
* 민속(敏速)하다 : 형용사 행동이나 일의 처리 따위가 날쌔고 빠르다.
작전대로 이민화·김훈 중대가 지정된 지점에 도달하고 이범석이 이끄는 2개 중대가 냇물을 타고 천수평 동쪽에 이르렀을 때, 일본군 기병중대의 순찰 보초는 독립군을 발견하고 신호 총성을 울렸다. 북로군정서 연성대는 이에 조금도 틈을 주지 않고 10월 22일 새벽 5시 30분경에 일본군 기병중대가 잠자고 있는 촌락과 말을 매어 놓은 토성 안으로 총탄을 퍼부으며 돌격해 들어갔다註 064
일본군은 잠을 자다가 놀라 깨어서 허둥지둥 뛰어나와 응사하면서 말을 찾았으나, 말은 이미 사살되거나 달아나 버린 후였으며, 일본군은 전의를 상실한 상태에서 독립군의 날카로운 공격에 대항할 능력이 전혀 없었다. 한 차례의 혼전이 있은 다음에 일본군은 4명이 용케도 말을 찾아 타고 탈출한 이외에는 116명이 전원 몰살당하였다. 이 때 전멸당한 일본군은 기병 제27연대 소속의 전초기병중대였다. 독립군의 피해는 전사 2명과 부상 17명의 경미한 것이었다.註 065 이것이 천수평전투이다.
주
註 064 이범석(李範奭),『우등불』(사상사, 1971), pp. 56~64 참조.
註 065 이범석(李範奭), 앞 글 : 이범석(李範奭), 앞 책, p. 63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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