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429698

낯선 땅, 우수리스크에서 듣는 역사의 울림
[연해주-동북3성 답사기 5] 그곳에 남은 우리 역사의 흔적들
07.08.21 20:37 l 최종 업데이트 07.08.22 10:26 l 서부원(ernesto)

'늪지대'라는 의미를 지닌 우수리스크(Usurisk)는 사방으로 끝없는 지평선이 펼쳐진 대초원의 한복판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연해주에서 고려인이 가장 많이 거주하는 곳이라는 이유도 있지만, 유난히 우리나라와 관련이 깊은 역사를 지닌 도시입니다.


▲ 발해 성터(외성)에서 바라본 수이푼강의 모습. 오른쪽으로 우수리스크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 서부원

우수리스크의 중국식 옛 이름 '쌍성자(雙城子)'는 본디 방어를 위해 평지성과 산성을 나란히 배치했던 옛 고구려의 도읍 형태에서 따온 지명으로 여겨지며, 고구려를 계승한 발해 왕국의 5경 12부 중 '솔빈부'도 이곳을 중심으로 설치되었습니다. 발해가 멸망한 직후에는 역대 중국 왕조의 관할에 있었으나 1860년 베이징 조약 체결의 결과로 러시아 영토가 되면서 조선인의 이주가 시작된 첫 번째 지역이 바로 이곳입니다.

두만강을 넘은 조선의 가난한 이주민들이 매서운 혹한으로 벼농사가 어려운 지역임에도 벌판을 감싸며 흐르는 수이푼강의 물을 이용해서 벼농사의 새로운 북방 한계선을 개척해 낸 피땀 어린 삶의 현장도 바로 이 우수리스크 지역입니다.

나아가 이곳은 일제강점기 나라 밖 항일 독립운동의 중심지로 반드시 기억해야 할 곳입니다. 일제의 강압에 의해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망명하여 독립운동을 이끈 이상설과 연해주 항일 투쟁의 지도자로 추앙받고 있는 최재형이 활동하고 끝내 숨을 거둔 곳이며, 들불같이 의병이 일어난 일제강점기 저항적 민족주의의 본산이라 할 수 있습니다.

현재도 우리나라 시민단체와 종교단체 등에서 중앙아시아에서 재이주해오는 고려인(까레이스키)들을 위해 농업을 통한 정착 지원 사업을 활발하게 펼치고 있어 이곳은 우리와 뗄 수 없는 이웃 마을이 돼가고 있습니다.

시내 곳곳에 여진족 추정 유물 남아 있어


▲ 발해 내성터에는 아름드리 나무들이 줄지어 자라고 있어, 마치 수문장처럼 느껴진다. ⓒ 서부원

지평선으로부터 떠오르는 아침 햇살을 가슴으로 받으며 옛 발해 왕국의 성터로 추정되는 곳으로 향합니다. 강 이름이 '솔빈'에서 유래되었다는 수이푼강이 해자처럼 감싸며 흐르는 곳, 가파른 언덕에 자리한 천연의 요새입니다. 자연 지형을 그대로 활용한 외성에 오르면 저 멀리 우수리스크 시내가 한 눈에 내려다보이고, 내성 터에는 웃자란 나무들이 수문장처럼 늘어서 있어 옛 발해 왕국의 위용을 뽐내는 듯합니다.

발굴을 진행하다 만 듯 곳곳이 패인 채 잡풀만 무성하고, 만든 지 그리 오래된 것 같지 않은 비포장도로가 성의 허리를 자르고 있는 모습도 눈에 띕니다. 러시아의 입장에서 이 지역은 지정학적인 의미가 있을지는 몰라도, 영토의 끄트머리에 치우친 변방인데다 인구조차 적어 대부분의 땅이 경작지를 찾아보기 어려운 황무지로 버려져 있으니, 어쩌면 옛 성터의 흔적이 남아준 것만으로도 고마운 일입니다.

성을 벗어나 수이푼강을 건너 시내 쪽으로 향하면 절터로 추정되는 넓은 공원이 있습니다. 지금은 아름드리 나무들만 빼곡히 서 있지만, 소박한 연꽃 문양이 희미하게 새겨진 주춧돌이 곳곳에 널브러져 있어 이곳이 앞서 들렀던 발해 성터와 관련된 곳임을 짐작케 합니다. 


▲ 우수리스크 시민공원 한복판에 터줏대감마냥 버티고 앉아 있는 돌거북 모습. 이 유물로 인해 '거북이 공원'으로 불려지고 있다. ⓒ 서부원

성터와 절터에서 친숙함이 느껴졌다면, 시내 한복판에 있는 시민공원에서는 다소 낯선 느낌의 유물을 만날 수 있습니다. 공원의 한 가운데 주인처럼 앉아 있는 돌거북이 그것입니다. 이 때문에 시민공원이라는 공식 명칭보다도 '거북이 공원'이라는 이름으로 더 많이 불리고 있습니다.

우수리스크 인근에서 발견된 것을 이곳에 옮겨놓은 것으로, 세워진 내력을 밝혀줄 비석과 덮개돌(이수)을 잃어버린 채 돌거북 모양의 커다란 받침돌(귀부)만 덩그러니 남았습니다. 뚱뚱한 몸에 기린처럼 늘어 뺀 목, 잔뜩 웅크린 가녀린 다리 등에서 우리가 늘 접해 온 것과는 사뭇 느낌이 다른 유물입니다. 

발견될 당시에 돌거북 두 기가 나란하게 자리하고 있었는데, 옮기는 과정에서 한 기는 이곳 우수리스크의 시민공원에 두었고, 다른 한 기는 이곳에서 650킬로미터나 떨어진 하바로프스크(Havarobsk)의 박물관 입구에 가져다 놓았습니다. 어쨌든 비문이 없어 정확히 밝힐 수는 없지만, 여진족의 근거지로 알려진 지역 곳곳에 이와 유사한 것들이 산재해 있는 것으로 보아 많은 사람들은 여진족이 남긴 유물로 여기고 있습니다.


▲ 하바로프스크 향토박물관 입구에 세워진 돌거북. 시민공원에 있는 것과 한쌍이다. 여진족이 남긴 유물로 여겨지고 있다. ⓒ 서부원

잎이 서로 떨어진 연꽃 문양의 기와 조각, 끝부분에 손끝으로 일일이 자국을 낸 듯한 무늬의 암키와로 구별되는 발해의 문화를 비롯해, 이후 이곳에 터를 잡고 살았던 여진족 등 여러 민족들이 남긴 다양한 문화가 스스럼없이 섞인 채 주변 곳곳에 유물이 되어 남았습니다.

안중근·이상설을 후원했던 최재형의 자취가 남은 곳

시민공원을 나와 울타리를 따라 산책로 같은 길을 5분쯤 걷다보면, 안중근이 하얼빈(合爾濱)으로 떠나기 직전 머물렀던 최재형의 옛집을 볼 수 있습니다. 흉년과 기근을 피해 가족을 따라 두만강을 건넌 후 러시아인으로 귀화하여 견실한 사업가이자 투철한 민족 독립운동가로 활약한 산실입니다.


▲ 연해주 항일 독립운동의 중심축이었던 최재형이 살던 옛집. 100여 년 전에 지어진 것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보존 상태가 완벽하다. ⓒ 서부원

최재형은 모든 사재를 털어 학교를 짓고 독립운동 자금을 조달하였으며, 직접 독립단을 조직하여 무장 투쟁의 선봉에 서서 일제에 맞서다 붙잡혀 처형을 당한 '항일 영웅'으로, 이곳 사람들에게는 뚜렷하게 각인돼 있지만 안타깝게도 우리는 그에 대해 아는 바가 많지 않습니다.

러시아에 있는 모든 항일 의병 세력을 규합시켜 국내 진공작전을 주도했다는 것과 연해주 지역의 망명 정부였던 대한국민의회(大韓國民議會)의 외교부장이었으며 이후 상하이(上海) 임시정부에서 재정총장으로 위촉할 만큼 명망가였다는 사실은 그가 러시아 동포 사회에서 만만치 않은 영향력을 지닌 인물이었음을 증명합니다.


▲ 최재형이 살던 집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곳에 자리한 옛 대한국민의회 건물 전경. ⓒ 서부원

동시대를 살았던 안중근, 이상설, 안창호, 이범윤 등은 중고등학교 교과서에 여러 차례 언급될 만큼 잘 알려져 있지만, 그들의 가장 든든한 후원자이자 중심축이었던 최재형을 선뜻 기억해내지는 못합니다. 그것은 아마도 다른 독립운동가들과는 달리 그가 천출(賤出)이었다는 사실과 일찍이 러시아인으로 귀화한 점, 또 그가 활동하고 묻힌 곳이 이곳 공산주의 국가 러시아였다는 이유 때문일 겁니다.

어쨌든 그가 살던 집은 100여 년 전에 지어진 것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반듯하고 깨끗합니다. 지금은 러시아인이 살고 있어 집 내부를 들여다보기란 어렵지만,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옛 대한국민의회 건물과 함께 당시의 항일 독립운동의 자취가 서린 어엿한 역사 유적으로 마땅히 잘 보존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한산한 시내를 하릴없이 돌아다니다 보니 다시 수이푼강에 닿습니다. 여름날 한낮 동안의 무더위를 피해 나온 사람들이 물놀이를 즐기고 있는 강의 반대쪽 언덕배기에 새뜻한 기념비 하나가 뜨거운 햇살을 받으며 당당히 서 있습니다. 망명한 독립운동가 이상설의 유언을 기리기 위해 몇 해 전에 세운 유허비입니다.

이상설은 1907년 고종 황제의 밀지를 받고 네덜란드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에 참석하려고 했으나 끝내 뜻을 이루지 못한 채, 이곳에서 일제의 국권 침탈에 맞서 대한광복군정부를 세우는 등 활발한 독립운동을 전개하다 병을 얻어 1917년, 마흔 여섯의 나이로 세상을 떴습니다.

변방의 역사가 들려주는 울림 


▲ 남긴 유언에 따라, 유해가 뿌려진 수이푼강 강변 언덕에 이상설 유허비가 세워져 있다. ⓒ 서부원

그가 남긴 유언은 조국 광복을 달성하지 못한 비통함과 국권 회복에 대한 간절한 염원을 담고 있습니다. 특히 혼이라도 조국에 돌아갈 수 없으니 유해를 수이푼강에 흘려보내고 제사도 지내지 말라는 단호함을 통해서 그의 강직한 성품을 엿볼 수 있습니다.

빼어난 풍광과 목가적인 정취를 자랑하는 수이푼강이지만, 어색하게도(?) 자못 비장함이 느껴지는 것은 지금도 이상설의 혼을 담고 흐르는 까닭은 아닐는지.

한나절 동안 불과 10킬로미터 남짓의 우수리스크 언저리만 돌아다녔을 뿐인데, 하루를 정리하려다 보니 고대부터 현대까지 총망라되는 우리 역사의 흐름을 읽어낼 수 있습니다. 비록 우리의 익숙한 역사 속에 또렷하지 않은 낯선 땅의 낯선 기억이지만, 이곳 '변방의 역사'가 들려주는 울림은 결코 작지 않습니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 길거리에서 사람들이 나누는 이야기들이 모두 우리말처럼 친숙하게 들렸습니다. 마치 우리나라의 여느 도시에 온 것처럼.
 
덧붙이는 글 | 지난 7월 22일부터 8월 5일까지 (사)동북아평화연대가 주관하는 연해주-동북3성 답사에 참여한 후 정리한 기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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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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