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녹조라떼’의 귀환
안병옥 | 기후변화행동연구소 소장  입력 : 2013-08-06 21:28:54ㅣ수정 : 2013-08-06 21:28:54

그가 돌아왔다. 보를 세운다고 수질이 나빠지지 않는다며 목숨 걸고 내기해도 좋다던 ‘그때 그 사람’들을 조롱하듯이. 지난 6월 초 낙동강 중류 대구 달성군 박석진교 부근에서 처음 관찰된 녹조는 7월을 지나면서 낙동강의 거의 전 구간으로 확산되고 있다. 본격적인 더위가 시작되는 이달에는 어떤 일이 벌어질지 가늠조차 어렵다.

그런데 더 끔찍한 것은 보를 만들거나 준설을 해서 저수량이 더 늘어나 거꾸로 녹조를 감소시킨다는 궤변이다. 그것도 조류경보가 발령된 창녕함안보 인근 지역구 의원의 입에서 나온 것이라니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그는 수온 상승과 부영양화 물질 등을 거론하면서 “4대강 사업과 관련 있는 게 있다면 보 때문에 유속이 느려진 것밖에 없다”고 말했다 한다.

정치인이야 그러려니 넘길 수도 있다. 자신도 모르게 공범의식을 내비친 것일 수도 있고 자신을 키워준 주군에 대한 의리의 발로일 수도 있다. 이해할 수 없는 건 환경부의 태도다. 국토교통부에 수문 개방을 요청하면서도 녹조 확산의 책임이 4대강 사업으로 번지는 것만은 차단하고 싶어 하는 눈치다. 하지만 이상하지 않은가. 녹조 확산이 4대강 사업과 무관하다면 합천보와 함안보의 수문을 개방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4대강 사업의 일환으로 5000억원을 투입해 총인처리시설을 설치하면 수질이 좋아진다고 호언장담했던 것이 바로 엊그제다. 하지만 환경부는 작년에 이어 올해에도 변변한 원인 분석 하나 내놓지 않는다. 기가 막힐 노릇이다.

담수생태계에서 조류의 대번성은 국내외를 통틀어 호수, 댐으로 막힌 강, 갑문으로 물이 정체된 운하에서 발생했다. 아무리 폭염이 기승을 부려도 막힘없이 흐르는 강에서는 물속을 부유하는 조류가 증식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을 갖지 못한다. 따라서 국토부가 남강댐과 농업용 저수지의 물 2100만t을 긴급 방류하고 합천보와 함안보 등의 수문도 개방하기로 한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최근 감사원의 4대강 비밀문서 공개로 궁지에 몰린 국토부가 결국 수문 개방을 결정한 것을 보면, 녹조의 원인은 물론 대책까지도 이미 답은 나와 있는 셈이다.

하지만 일시적으로 수문을 개방했다 해서 안심할 수는 없다. 남조류는 수백개 이상의 단위세포가 모여 무리를 형성한다. 세포 내에 기포를 갖고 있어 주로 물의 표층에 분포하는데, 바로 이런 특성 때문에 낙동강처럼 거대한 호수로 변한 강에서 많이 번성한다. 문제는 마이크로시스티스라는 남조류의 대량 증식이다. 이들이 분비하는 독성물질인 마이크로시스틴은 간세포 생리과정에서 중요한 구실을 하는 포스파타제라는 효소의 작용을 억제한다. 동물들이 다량 섭취하면 소화불량, 호흡곤란 등의 증세를 보이며 심하면 사망할 수도 있다.

환경부가 미덥지 않은 건 그래서다. 지방환경청들은 보도자료를 통해 수돗물은 안전하니 안심하라며 수상레저 활동과 가축 방목 등을 자제할 것을 요청했다. 국민들의 불안감을 덜어주려면 클로로필-a 농도와 유해 남조류 세포수는 물론 수돗물 수질 측정 결과를 실시간으로 공개해야 한다. 선진국들처럼 강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활동을 ‘금지’해야 옳다.

2008년 5월 한 언론은 당시 이명박 대통령이 측근들을 불러 대운하 반대 여론 극복을 위한 방안을 논의했다고 보도했다. 이 기사는 한 참석자의 말을 인용해 “낙동강과 금강, 영산강을 지금의 한강처럼 만들되 ‘땅을 판다’는 내용은 뺀다는 것이 4대강 사업의 요지”라고 전했다. 이제 진실의 순간이 다가오고 있다. 보가 있는 한 해마다 녹조는 여름이면 되풀이될 것이다. ‘녹조라떼’의 귀환이야말로 온갖 사실왜곡과 편법으로 파헤쳐진 강을 되살릴 것을 재촉하는 자연의 마지막 선물일지도 모른다.


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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