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속 생태 ⑬> 4대강 때문에 ‘저수지의 개들’이 돼 버린 현실 
2013/11/07 11:48  에코씨네

11월에도 녹조 둥둥 썩은 물이 넘쳐나는 저수지 
 
지난달 초 MB의 4대강 자전거 셀프 홍보 이후 일주일 동안 낙동강을 자전거로 다녔다. 막대한 공사 이후 강의 파헤쳐진 모습을 확인하고, 이런 상황 속에서 강 주변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증언을 듣기 위해서였다. 불행히도 마지막 일정을 하루 앞두고 경북 상주시 경천대 인근 급경사 도로에서 넘어져 팔뼈가 부러지고 금이 가는 사고를 당했다. 
 
내가 반대한 사업에 내가 낸 세금을 쓰더니, 이제는 내 팔마저 부러트려 놨다. 나이가 들어 뼈도 잘 안 붙는다고 하는데, 4대강 사업을 강행하신 MB 덕분에 그야 말로 매일 같이 ‘개고생’하고 있다. 가장 고달픈 것은 한 손으로 컴퓨터 자판을 쳐야 한다는 점이다. 다른 것이야 어떡해서든 미룰 수 있는 원고지만, 월간지에 고정적으로 연재하고 있는 것은 분량도 상당해서 일주일 밤을 꼬박 새우고도 부족했다. 그야말로 ‘개 같은 내 인생’이다. 
 
개인적으로 4대강 사업 하면 떠오르는 영화 중에 하나가 <타이타닉(1997년 작)>이다. 절대 침몰 하지 않는 배라는 환상에 사로잡혀 유빙 경고를 무사하다 침몰한 타이타닉 호와 실패가 뻔히 예상됐음에도 권력의 오만함을 믿고 밀어붙이다 대형 사고를 일으킨 4대강 사업은 그 속성이 유사하기 때문이다. 
 
2008년 SBS에서 방영된 ‘아내의 유혹’도 있다. 드라마에서 버림받은 아내 구은재는 복수를 꿈꾸며 눈 밑에 점하나 찍어서 민서희로 변신을 하는데, 아무도 못 알아본다는 황당한 설정이 등장한다. 한반도 대운하로 시작된 4대강 사업도 백두대간에 터널만 없을 뿐 내용 상 같은 사업이었지만, 당시 정권과 보수 언론은 4대강 사업은 대운하가 아니라고 강변하는 황당함을 보였다.  
 
‘4대강 사업’ 하면 떠오르는 영화 
 
 re_dogs_2.jpg
▲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데뷔작 <저수지의 개들>. 1992년 제작된 이 영화에서 쿠엔틴 타란티노는 극본, 주연, 감독 등 1인 3역을 수행했고, 평론가들은 90년 대 영화 스타일을 창조해 냈다고 평하고 있다. <저수지의 개들>은 지금 다시 봐도 갱스터 무비의 긴장감이 그대로 드러난다.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 특유의 시간을 넘나드는 편집에 주연배우들의 명연기가 빛을 발한다 ⓒ <저수지의 개들> 포스터
 
요즘 4대강 때문에 벌어진 개고생과 최근 4대강 상황을 보면서 떠오르는 영화가 바로 <저수지의 개들 (Reservoir Dogs)>이다. 이 영화는 <펄프픽션>, <킬빌>의 감독 쿠엔틴 타란티노의 1992년 감독 데뷔작으로, 쿠엔틴 타란티노는 극본, 주연, 감독 등 1인 3역을 맡았다. 영화 평론가들은 당시 이 영화를 두고 90년 대 영화 스타일을 창조했다는 평을 하기도 했다.  
 
<저수지의 개들>은 지금 다시 봐도 갱스터 무비의 극적 긴장감이 느껴지는데, 그만큼 주연 배우들의 소름 돋는 연기력이 살아 있는 영화다. <저수지의 개들>은 다이아몬드 강탈을 계획하는 8명의 일당 중에 위장 잠입한 형사 때문에 작전이 실패로 돌아가고, 서로 누가 경찰인지 의심하다 비참한 최후를 맞는 내용을 그리고 있다. 개인적으로 마지막 장면에서 살아남은 네 명이 서로에게 총구를 겨누는 장면은 이 영화의 백미로 꼽고 싶다. 
 
감독이 제목을 <저수지의 개들>로 잡은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아마도 범죄를 양상 할 수밖에 없는 현대 사회를 물이 고여 썩어가는 ‘저수지’로 표현 한 것은 아닐까? 그리고 그런 저수지에서 범죄를 저지르는 이들과 황당한 죽음을 맞는 경찰(황당한 죽음을 방치한 경찰들도 포함해서)들을 ‘개들’로 표현한 것으로 해석된다. 어쩌면 범죄를 유발할 수밖에 없는 ‘저수지’ 주변에 살고 있는 우리 모두가 ‘개들’이라고 말하는 것은 아닐까 싶다. 
 
 re_dogs.jpg

 ▲ 저수지의 개들의 최후. 영화의 마지막, 갱단에 잠입한 경찰이 누구인지 밝히는 과정에서 살아 남은 네 명의 남자는 서로에게 총을 겨눈다. ⓒ <저수지의 개들> 스틸 컷
 
2010년 우리나라에서 제작된 동명의 뮤직비디오가 있다. 최근 개봉한 스릴러 영화 <소녀>를 연출한 최진성 감독이 인디 그룹 윈디시티와 함께 4대강 공사가 한창이던 남한강을 배경으로  만든 10분짜리 뮤직 다큐로서, 정식 명칭은 ‘생명의 강을 위한 영상 프로젝트’ <저수지의 개들 take 1. 남한강>이다. 최진성 감독은 2011년 <저수지의 개들 take 2. 낙동강>도 연출한 바 있다. 
 
<저수지의 개들 take 1. 남한강> 촬영을 위해 여주군 금당천 부근 남한강 공사 현장 찾았었던 2010년 3월 13일, 나 역시 현장에 동행했다. 공사 관계자들은 윈디시티와 촬영팀을 욕설과 함께 막아섰고, 일행이 탄 버스의 통행을 차량을 가로 막기 까지 했다. 뮤직 비디오에는 당시의 다급한 상황과 생생한 욕설이 그대로 드러나고 있다. (내 모습과 내 목소리도 일부 나온다)  
 
4대강 공사 관계자, 촬영 방해 위해 허리우드 액션도 
 
가까스로 공사 현장이 보이는 한편에서 드럼 및 음향 세팅을 마치고 윈디시티의 ‘위하여’ 공연 및 촬영이 시작됐다. 그곳까지 쫓아온 공사 관계자들은 어떡해서든 촬영을 막으려 사소한 시비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던가, 아니면 지나가다 살짝 스친 것을 폭행당했다며 바로 드러눕는 허리우드 액션을 펼치기고 했다. 그들은 뮤직 비디오의 제목을 듣고서는 더욱 길길이 날뛴다. 자신들을 ‘개들’이라고 표현한 것으로 받아 들였기 때문이었다. 
 
최진성 감독은 연출의 변에서 뮤직비디오 제목을 <저수지의 개들>이라 잡은 이유를 설명했다. 최 감독은 “환경운동연합에서 연출 제안을 받았을 때 제일 처음 떠오른 단어가 <저수지의 개들>이었다”면서 “잘 흐르고 있는 강을 굳이 파헤치고, 막은 뒤에, 마치 '저수지'처럼 만들어가고 있는 현실이 이상하고, 무서웠다”고 말했다. 

windy1.jpg
▲ 윈디시티 뮤직비디오 촬영. 2010년 3월 남한강 공사 현장이 보이는 여주군 금당천 부근에서 <저수지의 개들 take 1 남한강>이 촬영됐다. 윈디시티는 이 날 '위하여'라는 곡을 통해, 파헤쳐지는 강들의 모습과 인간의 그릇된 탐욕을 짚어냈다. ⓒ 환경운동연합 한숙영

이어 “커다란 포클레인에 의해 마구잡이로 파헤쳐진 강물과 더불어 그 속에서 집을 잃어버린 나무와 물고기와 새들의 모습은 지금 대한민국의 도시 곳곳에서 개발에 의해 쫓겨나는 힘없는 '우리들'의 모습이기도 하다”라고 지적했다. 감독이 말하는 ‘개들’은 4대강 사업을 지시한 이들과 강을 파헤치는 이들, 그리고 어쩔 수 없는 파헤쳐진 강 옆에서 살아 갈 수밖에 없는 우리 모두를 지칭하는 것이다.  
 
4대강 사업으로 가장 크게 훼손된 낙동강은 금관가야의 전신인 가락국의 동쪽에 흘렀다고 해서 이름 붙여진 강이다. 그러나 8개의 ‘보’라고 불리는 댐이 들어서면서, 흐르지 않는 호수가 됐다. 아니 정확히 표현하자면, 흐르지 못해 썩은 물만 가득한 저수지가 되어 버렸다. 날씨가 쌀쌀한 11월에도 녹조가 확인되는 것은 이 물이 썩은 저수지라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지금 ‘저수지의 개들의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다. 
 
녹조2.jpg

▲ 11월에도 확인된 녹조. 지난 11월 2일 낙동강 합천보 상류 고령군 우곡교 부근의 녹조. 강은 사라지고 썩은 물의 저수지가 됐다는 것을 말한다.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지난 10월 국회 국정감사 기간 동안 4대강 사업의 부정적 실체가 연이어 드러났다. 그럼에도 우리 강을 ‘썩은 저수지’로 만들고, 우리 국민을 ‘저수지의 개들’로 만드는데 가장 크게 앞장선 이들은 황당한 발언을 쏟아냈다. MB는 ‘녹조가 생긴 것은 수질이 개선됐다는 의미’라는 식의 발언을 해서 또 다시 국민의 공분을 야기 시켰다.  
 
개만도 못한 인간이 넘치는 세상 
 
전직 국토부, 환경부 장관들은 4대강 사업에 부끄러움이 없으며, 운하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주장했다. 국감 증인으로 참석했던 민간단체 한 인사는 이들의 뻔뻔함에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고 말하고 있다. 새누리당 의원들과 보수언론은 감사를 통해 4대강 사업의 실체를 드러낸 감사원을 두고 정치적 감사라면서 막말을 쏟아냈다. 
 
4대강 핵심 찬동 전문가들도 반성은커녕 여전히 4대강 사업은 잘 된 사업이며, 좌파들이 4대강 사업을 정치적으로 반대하고 있다는 낡은 색깔론을 펼치고 있다. 어디 그뿐인가. 4대강 사업으로 훈·포장 및 표창장을 받은 공직자들은 정부 부처의 핵심 요직을 꿰차고 있는 상황이다. 더욱이 현 정권은 4대강 문제를 자신들의 권력 안위용으로 계산할 뿐, 4대강 사업에 따른 심각한 부작용은 해결할 마음이 없어 보인다. 
 
녹조.jpg
▲ 간장 빛 물. 10월 30일 구미보 상류에서 발견된 녹조 띠. 물은 간장 빛이었다.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새삼 느끼는 것이지만, 못된 인간들 때문에 애꿎은 개들을 빌어 말하는 것이 못내 미안하지만, 정말 개만도 못한 인간이 참 많다. 아마도 이들 때문에, ‘저수지의 개들의 시대’가 오래 갈 듯하다. 그리고 이들을 심판하지 않으면 우리 사회에는 또 다른 저수지가 수 없이 만들어지게 될지도 모른다. 
 
4대강 범대위 등이 4만 여 명의 고발인단을 모아 지난 달 중순 MB를 비롯해 4대강 사업 추진의 핵심인사들은 법적으로 고발했다. 환경운동연합은 명예훼손 혐의로 박석순 전 국립환경과학원장에게 민사 소송을 제기했다. 일제 강점기 징용 피해자들의 소송이 활발해지는 상황을 보면서, 4대강 사업 역시도 끝까지 책임을 물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그것이 우리 사회의 상식과 이성을 회복시키는 방법이기 때문에 말이다


Posted by civ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