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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조선혁명군과 자위군 여부(餘部)의 연합작전
한국사총설DB > 국사관논총 > 國史館論叢 第44輯 ? 9·18事變後 東北義勇軍과 韓國獨立軍의 聯合抗日述略 > [국문] 9·18事變後 東北義勇軍과 韓國獨立軍의 聯合抗日述略 > Ⅲ. 朝鮮革命軍과 遼寧民衆自衛軍의 연합항일 > 3. 주요한 전투성과 > 3) 조선혁명군과 자위군 여부(餘部)의 연합작전
* 여부(餘部) : 남을 여 + 거느릴 부
중조련군(中朝聯軍)이 어깨걸고 항일하여 부단히 승리하고 있을 때 자위군총사령 탕쥐우/당취오가 통화에서 군사회의를 소집하였다. 8월 9일 회의를 시작하여 5일 걸렸다. 회의에 참가한 대표들로는 각 로(路) 군사령(軍司令) 및 총사령부처 이상 군사간부였는데 양세봉은 조선특무대 총대표의 신분으로 회의에 참석하였다. 자위군의 수월에 달하는 악전고투로 하여 활동범위가 대체로 결정되고 있는 정황에 비추어 회의에서 수요에 따라 각 로군을 다시 지구별로 7개 방면군으로 편성시켰다. 리춘룬/이춘윤, 순슈엔/손수암, 왕펑거(王鳳閣/왕봉각), 부티에메이(部铁梅/部鐵梅), 장충저우(張崇周/장숭주), 궈징샨/곽경산, 류징원(刘景文/劉景文/류경문) 등을 각 방면 군의 총사령으로 위임하고 조선특무대는 계속 부근 각 방면군과 각 로군과 배합작전하기로 결정지었다.
* 배합작전 : 협동작전
원래 진저우(錦州/금주)에 설치한 요녕성정부는 당시 금주가 함락된 연고로 하여 다시 통화에 항일하는 요녕성정부를 성립하고 당취오를 대리성 정부주석(代理省 政府主席)으로 할 것을 국민정부 및 장학량에게 청구하였다. 회의에서 요녕민중자위군은 주요한 도시를 탈취하고 적들의 교통 운수를 파괴하고 선하이(瀋海/심해)철도를 점령하는 등 일본침략군과 괴뢰군에 대하여 재빨리 새로운 진공을 진행할 것을 결정지었다. 이 회의가 있은 후 조선혁명군의 각 특무대들은 요녕민중자위군의 여러 부대와 배합하여 주동적으로 출전하여 푸순/무순, 지안/집안, 콴덴/관전, 환런/환인 등 지역의 전투 가운데서 중요한 돌격대적 작용을 하였다.
* 배합 : 협동
그러나 바로 이때 일본 관동군도 대량적으로 병력을 집거시켜 동변도에 대하여 토벌을 실시하였다. 1932년 9월부터 일본 관동군은 점차적으로 일본군 다카나미(高波)여단, 핫토리(服部)여단, 모테기(茂木)여단과 같은 강대한 부대와 랴오비첸(廖弼宸/료필신), 장취안워(姜全我/강전아), 동궈화(董國華/동국화) 등 괴뢰군부대 그리고 비행대대, 야포대대 까지 3만 이상을 헤아리는 병력을 집거하여 동북도지구의 중조항일군에 대하여 ‘포위토벌’을 가하였다. 동년 10월 상순 일본침략군과 괴뢰군은 동변도에 대한 포위를 끝내고 10월 11일부터 공격을 가하였다. 적들의 행동이 비밀적이고 신속한 탓도 있지만 자위군 각 부대에서 방어를 소홀히 한 탓으로 일본침략군과 괴뢰군의 여러 부대들은 아주 빨리 항일유격구에 돌진해 들어왔다. 비록 자위군이 창졸하게 응전했지만 많은 진지를 잃게 되었다. 자위군 6로 중조항일지사들이 피로써 탈취한 신빈성은 10월 13일 또 적들에게 빼앗겼다. 6로 사령 리춘룬/이춘윤은 힘이 모자라서 펑청(鳳城/봉성)으로 후퇴하였다. 15일, 일본군이 통화에 들어서자 자위군총사령 탕쥐우/당취오는 총부의 관병을 거느리고 푸송(抚松/撫松/무송)으로 후퇴하였다. 후에 당취오는 화장(化裝)하여 베이핑(北平/북평)에 잠복해 들어가 장학량에게서 술직(述職)을 하였고 나머지 각 방면군과 각 로군의 주요한 지도자 장종저우(張宗周/장종주), 순슈엔(孫秀岩), 바우징화(包景華/포경화), 린전칭(林振靑/림징청), 궈징샨(郭景珊/곽경산), 리춘룬/이춘윤 등은 한달좌우 견지하였지만 작전의 실책으로 하여 선후로 부대를 떠나 북평 혹은 러허(热河/熱河/열하)로 떠났다. 제11로사령 왕통쉬안/왕동헌은 전패한 후 포로당하고 그 부대는 뿔뿔이 흩어졌다. 오직 덩티에메이/등철매, 왕펑거/왕봉각, 쉬다산(徐达三/徐達三/서달산), 류징원(劉景文)의 각 로가 아직 원래의 건제(建制)를 보존하였는데 분산하여 유격전하는 전술을 실시하여 항일 투쟁을 견지하였다.註 037
* 화장(化装/化裝) : 변장하다
* 술직(述職) : 직무 상황을 아룀
* 장종저우(張宗周/장종주) ? / 장충저우(張崇周/장숭주) ?
* 한달좌우 : 한달쯤
* 건제(建制) : 편제
자위군이 엄중한 실패를 당한 사실과 투쟁환경이 극히 악화해진 정세는 부대 관병들의 사기에 영향을 주었다. 양세봉은 군심(軍心)을 안정시키고 계속 항일하기 위하여 1933년 1월 왕칭먼/왕청문 이무슈춘(依木树村/依木樹村/의목수촌)에서 군사회의를 소집하고 친히 회의를 주최하였다. 이 회의에서 다시 조선혁명당과 국민부, 조선혁명군의 관계를 천명하고 고이허(高爾虛)를 계속 조선혁명당의 수령으로 받들 것을 확인하고 김동산(金東山)을 국민부총사령(國民府總領)으로 임명하였다. 회의에서 조선혁명군 칭호를 회복시키고 양세봉이 계속 총사령으로, 박대호(朴大浩)는 부총사령으로 결정지었다. 총사령부 밑에 3개 방면군을 설치하고 한검추(韓劍秋), 최윤구(崔允龜), 장명도(張明道) 등을 각 방면군 사령으로 결정했다. 회의에서 조선혁명군과 중국항일의군(中國抗日義軍)은 계속 연합하여 항일하는데 다만 연합작전의 방식상 더욱 활성할 뿐 즉 배합적(配合的) 작전의 방식을 더욱 많이 취할 것을 다시 천명하였다.
* 고이허(高爾虛) = 고이허(高而虛) ?
이무슈(依木树/依木樹/의목수)회의 후 양세봉은 본부 조선혁명군에서 여러 곳으로 간부를 파견하여 자위군의 여부(餘部)와 연락을 하였다. 동년초부터 동년 8월동안 조선인민혁명군과 자위군의 여부와 연합작전한 주요한 승리는 다음과 같다.
① 4월 8일, 일본주재 둥펑/동풍현 경무지도관(東豊縣 警務指導官)인 요코야마 테이조(橫山貞三/횡산정삼)이 괴뢰경찰들을 거느리고 현(縣) 경내에 있는 호시전(猴石镇/猴石鎭/후석진)을 포위토벌하려 했는데 자위군 6로(路) 제7려(旅) 저우바오셩(周保升/주보승), 19로 제3려 수즈위(蘇子餘/소자여), 조선혁명군 한검추(韓劍秋)부대 등 약 3,000여 명의 연합반격으로 하여 요코야마(橫山)부대 60여 명을 소멸하고 괴뢰경찰대의 잔여부대는 망칙하게 뿔뿔이 도망쳤다.
* 요코야마 테이조(橫山貞三) ? 요코야마 테이산(橫山貞三) ?
② 동년 5월 10일, 조선혁명군 한검추(韓劍秋)부대와 저우바오셩(周保升), 소자여부대의 일부 사람으로 모인 천여 명이 동풍현 스핑지에(四平街/사평가)를 습격하여 일본군 소대장 키모리(木森) 등 관병 10여 명을 소멸하였다.
③ 7월 8일, 자위군의 여부와 조선혁명군이 신빈현성을 포위하고 공격하였는데 다음과 같은 기재가 있다.
자위군 왕봉각의 소속부대 제19로 제(第)2지대(支隊) 사령(司令) 자오진샨(赵金山/趙金山/조금산)과 혼성(混城) 제(第)3려(旅) 여장(旅長) 스즈위(蘇子餘)는 한국동지(韓國同志) 양서봉(梁瑞奉) 등과 같이 신빈(新宾/新賓)을 공격하여 탈취하였다. 그들은 하루동안 깃발을 꽂은 후 다시 퇴각하였다.註 038
* 양서봉(梁瑞奉) = 양세봉(梁世奉)
④ 7월 하순, 조선혁명군 조화선(趙化善)부와 자위군(自衛軍) 신편(新編) 제4로 리춘광(李春光)부의 특무단(特務團)이 연합하여 펑청 롱왕먀오(凤城 龙王庙/鳳城 龍王廟/봉성 용왕묘)에 있는 일본군과 괴뢰군을 습격하여 심한 타격을 주었다.
이와 동시에 조선혁명군은 또 소부대를 파견하여 압록강을 건너 조선경내의 일본군 거점과 군사설치를 습격하게 하여 항일의 영향을 확대하였다. 이에 대하여 일본 침략당국은 당황하였다.
……革命軍總司令梁瑞奉等與匪首 王鳳閣 李春芳(光) 鄧鐵梅等人合作 正瘋狂進行反滿抗日活動目前奉天省內的國民府革命軍爲300∼400名 他們不斷派遣數名至數十名不等的小部隊出沒各地 並窺伺國境一圖一逞 故我目前應加强國境警戒.註 039
註) 037 : 탄이 주편(谭译/譚譯/담역 主編), 《구일팔항전사(九一八抗戰史)》 (랴오닝인민출판사(遼寧人民出版社), 1991).
원용루(溫永錄)·탄이(譚譯)·루오잔위안(羅占元) 주편(主編), 《동북항일의용군사(東北抗日義勇軍史)》 상책(上册), 제456엽(第456頁) 지(至/까지) 471頁(헤이롱장인민출판사/黑龍江人民出版社, 1987).
註) 038 : 《왕펑거부위습격현(王鳳閣部圍襲各縣), 리부대파안동경찰서(李部大破安東警察署), 양부생력군인수지위대(兩部生力軍人數之偉大)》 일문소재(一文所載), 《흑백반월간(黑白半月刊)》 第1卷 第6期.
註) 039 : 조선총독부경무국당안(朝鮮總督府警務局檔案), 《재외불령선인상황(在外不逞鮮人狀況)》(《昭和 8∼13年 조선치안상황(朝鮮治安狀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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