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kids.hankooki.com/lpage/study/200510/kd2005100616315145730.htm


[민족의 혼, 고구려 여행] <26> 오회분 4호묘

고구려인들의 신앙 세계 벽면에 '가득'


오회분 4호묘 널방 동벽의 청룡과 신선


지난 1998년 고구려 역사 유적을 답사하면서 중국 장춘시 길림성 박물관에 있는 오회분 4호묘의 모형 전시실에 들른 적이 있었습니다. 당시 함께 갔던 사람들이 관람을 다 마치고 나올 때에도 나는 쉽게 그 전시실에서 발걸음을 뗄 수가 없었습니다. 고구려 사람들의 신앙 세계가 마치 한 편의 영화처럼 벽화 속에 가득 펼쳐져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현재 이 모형 전시장은 없어졌으며, 그 대신 집안시 오회분 4ㆍ5호묘 곁에 벽화 전시장을 만들어 놓고 4호묘 내부를 찍은 비디오를 보여 주고 있습니다.


벽마다 신선 그려져 있어


오회분 4호묘는 5호묘와 달리 사람들의 방문을 막아 벽화 상태가 좋은 편입니다. 1500 년 전의 그림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아름다운 채색을 아직 간직하고 있지요.


무덤 안 널길에 들어서면 좌우 벽면에 2 명의 무사가 섰습니다. 널방 안에 들어서면 사신(청룡ㆍ주작ㆍ백호ㆍ현무)을 만나 볼 수 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벽마다 그려진 신선입니다. 동벽에 1 명, 남벽에는 2 명, 서벽에는 3 명, 북벽에는 4 명 등 모두 9 명의 신선이 그려져 있지요.


남벽에는 흔히 주작이 2 마리 그려지기 마련인데, 오회분 4호묘는 무덤 입구가 남벽 중앙이 아닌 동쪽으로 치우쳐 있기 때문에 주작이 한 마리만 그려져 있습니다. 이렇게 입구가 한쪽에 치우친 것은 오회분 5호묘와 다른 점입니다.


그리고 널방 네 벽의 모퉁이 아래에는 괴수, 위에는 용 두 마리가 교차해 있습니다. 또 네 벽의 윗부분에는 용이 서로 몸을 꽈서, 천장과 아래 공간을 구분 짓고 있습니다. 이것은 5호묘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하지만 천장 네 벽의 고임돌 아래에는 5호묘가 연꽃 문양이 있는 것과 달리 용이 그려져 있습니다. 더욱이 천장 맨 위 덮개 돌에는 황룡이 그려져 있어요. 이 4호묘의 황룡은 빨강과 노랑이 강렬하게 대비되어 강한 인상을 줍니다.


대장장이 신·수레바퀴 신도 섬겨


수레바퀴신                                                  숫돌가는 신


오회분 4호묘는 5호묘와 달리 해신과 달신이 서로 다른 돌에 그려져 마주보고 있습니다. 또 아래 고임돌 벽면 가운데에는 용을 그려 넣어 두 신을 떨어뜨려 놓았고, 위쪽 고임돌 가운데에는 해ㆍ달ㆍ북두칠성 등을 그려 신들을 떼어 놓았습니다.


이처럼 오회분 4호묘는 5호묘와 비슷한 소재를 벽화에 그렸지만, 화가들이 다르게 그림을 그리려 한 흔적이 아주 뚜렷합니다. 유행만을 따르지 않고 자신만의 개성을 살리려고 노력했던가 봐요.


위쪽 고임돌에 그려진 9 명의 신선은 거문고ㆍ소ㆍ횡적ㆍ뿔피리 등의 악기를 연주하고 있습니다. 이 가운데 남쪽에 그려진 신선은 약단지를 들었고요.


아래 고임돌에는 8 명의 신이 그려져 있는데 이 또한 오회분 5호묘와 닮았습니다. 동남쪽 고임돌에서부터 살펴보면 불꽃을 든 불의 신, 대장장이 신, 수레바퀴를 만드는 신, 숫돌에 쇠붙이를 가는 신, 용을 타고 모자를 쓴 신, 달을 든 달신, 해를 든 남자인 해신, 소머리를 한 농사의 신이 그려져 있습니다.


이 신들을 보면, 그리스 신화에서 대장장이 신인 헤파이스토스가 12 신의 하나였던 것처럼 고구려인들도 대장장이ㆍ수레바퀴 신을 해신ㆍ달신처럼 중요한 신이라고 보았던 것을 알 수 있지요.


조선 시대에는 대장장이를 농민보다 못한 신분으로 여겼지만, 고구려는 달랐습니다. 대장장이들을 우대했기에 대장장이 신도 함께 섬겼을 테니까요.


고구려가 수공업이 발전하고 부유해진 이유를 이와 같이 고구려인의 신앙 세계를 통해서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김용만(우리역사문화연구소장)


입력시간 : 2005-10-06 16:34



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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